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남기는 짤막한 감상.
처음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한 상태로 보았다. 정보가 있었다면 줄거리 정도? 줄거리를 바탕으로 나는 이 영화를 스릴러 장르로 인식했는데 완벽하게 빗나갔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와 장면들을 봤을 땐 화면이 이쁘다고 생각했고, 어쩐지 스팀펑크의 느낌을 받았다. 물론 스팀펑크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무래도 최근에 했던 <바이오쇼크:인피니트> 같은 게임의 영향일지도. 장르를 스릴러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상당한 몰입도의 줄거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첫 장면에서 작가가 나레이터가 되어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하는 액자식 구성이라 더욱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증폭되었다. The Stanley Parable 같은건가? 나레이터의 영국식 억양이 더욱 분위기를 맞춘다.
그렇지만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오히려 포스터에서 받았던 이미지대로 이 영화는 1930년대 풍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최선을 다한 영화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화면비가 계속 달라진다는 점인데, 이야기 속 시대의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화면비를 채용한 것이다.(1930년대 이야기는 아예 4:3 비율로 나온다.) 영상미, 화면 구성, 연출 등 모든 부분이 예술적이다. 현실과는 너무 이질적이라 동화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다만 스토리는 영상에 비해 밋밋했다. 첫 장면에서 작가가 나와 이야기를 한보따리를 풀어놓을 것 같이 말하지만 이야기는 플랫하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의 이야기가 더욱 동화속 이야기 같다. 아마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것이고, 포스터와 영상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흠뻑 느끼고 싶었던 사람들은 호평했을 것 같다.(그래서 평이 극단으로 나뉜다)
앞에서 영화를 보기 전엔 바이오쇼크:인피니트의 이미지를, 영화 첫장면에서는 The Stanley Parable 같은 최근에 했던 게임들의 이미지를 받았다고 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가 생각났다. 이야기는 동화적이고,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며 시대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영상의 분위기가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붉은 돼지>는 훌륭한 이야기도 갖고 있었다는게 차이점이랄까.
훌륭한 영상에 매우 좋은 분위기, 그 시대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연출까지. 마치 호텔 모양의 금속 박스에 들어 있는 유럽 쿠키를 먹는 느낌이 드는 영화. 하지만 일반 관객이 몰입할만한 "이야기"가 조금 약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평을 양 극단으로 나뉘게 만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