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선배, 저에요.. 이제 조금만 있으면 올해도 이렇게 끝나네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2006년이었으니까.. 선배를 처음 만나서 미래를 꿈꾸고 사랑을 약속했던 나날들도 어느덧 2년이 되어가고 있어요. 2년전의 우리, 그때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 기억나세요?처음 우린 같은 수업에서 만났어요. 선배는 1학년 수업을 재수강하고 있었던 복학생이었고, 저는 대학에 막 입학한 철 모르는 새내기였었죠. 처음 우리는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선배는 오랜만에 다시 하게된 대학생활에, 저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그날도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던 것 같아요. 버스안에서 갑자기 어떤 남자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었죠.”저기.. 혹시 학교가 어디세요?”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을때 거기엔 한참을 머뭇 거렸던 것 같은 한 남자가 있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를 얘기하자 그 남자는 “아 역시 그렇구나.. 수업 시간에 본 기억이 있어서..” 라며”제가 복학하고 나서 학교를 오랜만에 나가는거라 적응이 잘 안되서 그런데 혹시… 과제 언제까지인지 아세요?”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어요. 서로 ‘수업 시간에 보는 사람’들로서 스쳐 지나갔던 순간은 몇번 있었지만,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알게되고 서로의 인생이란 연극에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던건 그 순간이 처음이었어요. 우리의 처음, 그 순간은 굉장히 설레고 가슴 따뜻했던 시간이었어요. 그 이후로도 처음의 순간에 항상 선배는 저에게 먼저 다가와주었고, 그게 항상 고마웠어요. 항상 ‘처음’이라는 순간의 힘든 부분은 선배가 대신 해주었고, 저에겐 설레임과 따뜻함이라는 선물을 남겨 주었으니까요.처음 사랑을 고백했던 순간, 처음 손을 잡았던 순간, 처음 데이트를 했던 날, 처음 우리가 같이 저녁을 먹었던 장소, 처음 우리가 봤던 영화, 처음 우리가 같이 불렀던 노래, 처음 같이 지하철을 탔던 날 그리고 처음 입을 맞췄던 순간.. 우리가 함께 했던 수많은 ‘처음’의 순간들..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처음 이별하는 순간.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선배가 항상 처음의 힘든 과정을 겪게 하는거.. 이제는 안하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처음으로 이별을 말할께요. 우리 둘 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이별을 말하는 것. 그 힘든 과정을 이제는 제가 대신할께요. 이별의 고통에 정도가 있을 순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조금이라도 선배가 덜 힘들도록.. 제가 먼저 돌아설께요. 선배, 모든건 처음이 제일 힘든거래요. 지금의 우리가 이토록 힘든 이유도 우리의 이별이 처음이기 때문에 그렇겠죠..?행복하세요, 선배. 선배는 분명 우리가 했던 사랑보다 더 좋은 사랑을 만나실 수 있을꺼에요. 꼭..inspired by 015B – 처음만 힘들지(Song by 요조)연말.. 그래. 어느덧 거리에서는 캐롤이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빨간색 초록색 불들이 나무를 괴롭히기 시작했지. 그래. 이제 요란했던 2008년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너랑 헤어지고 힘들어했던 지난 날, 나는 어떻게 살았었는지..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오직 기억할 수 있었던건 우리가 처음 함께 했던 순간들 뿐이었어. 그리고 그 추억들의 끝자락엔 우리가 처음 이별했던 그 날의 기억도 함께하고 있었어. 이렇게 너와의 추억을 떠올리곤 했던 날이면,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 한구석에 앉아 슬픔을 삭여야만 했었어. 그리고 그런 날은 거의 매일이었지. 하지만 그런 나날들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더라.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아무렇지 않은 듯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어. 그런데 말야. 그 수많은 만남 중에 슬며시 너의 안부가 들려올 때가 있더라. 그럴때마다 나는 어느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면서 힘들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어.”그래.. 이제 괜찮아.”그렇게 살아가던 날들.. 그리고 이제 끝나가는 2008년. 오늘은 송년회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시내에 나왔어. 우리 만나던 그땐 우리끼리 만나느라 많이 나가지 못하던 자리였는데. 정말 오랜만에 나왔다고 선배님들한테 한소리 듣기도 했지.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익었을 무렵, 내 친구들이 웃으면서 네 얘기를 꺼냈어. 그리고 그 얘기를 웃으며 받고 있는 나를 보았어.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로 이별을 할 순간이 다가 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너와 처음 이별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너를 보내주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 겉으론 너와의 이별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으로는 그 사실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있었어. 너를 놓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 조금의 희망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때의 그 시간도 그만큼 힘들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웃으며 네 얘기를 할 수 있는 지금, 나는 너를 보낼 준비가 된 것 같다..너와 한번 더 이별 하는 지금, 나는 힘들지 않아. 네가 언젠가 그랬었지? 처음이 언제나 힘든거라고. 그래.. 네 말대로 우리의 두번째 이별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지금처럼 여기서 웃으면서 너를 배웅할께. 너는 이미 멀리 떠나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이제 마음속의 너도 흘려보낼께.우리의 두번째 이별은, 힘들어서 아픈게 아니라, 홀가분했기에 더 아팠다.안녕. 이젠 너라고도 부를 수 없는 사람..inspired by 성시경 – 한번 더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