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

1.
그에겐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여느 때와 똑같이 회사에 출근을 했고, 점심을 먹으며, 동료들과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는 그런 일상이 참 좋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푸른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들이 함께 하고 있었고, 공기에서는 맑은 여름의 냄새가 풍겨왔다. 남자는 여름이 참 좋았다.
그날도 오늘과 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여름 날이었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서 푸른 미소를 가진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마치 눈부신 어느 여름 날 같았다. 언제는 무더위로 괴롭히다가도 어느덧 단바람으로 땀을 식혀주며 더위를 달래주기도 하는 그런 여름 날. 쨍쨍하게 밝다가도 어느 덧 한차례 소나기를 내려버리는 그런 여름 날. 바람이 불면 기분좋게 웃는 얼굴에서도, 나무의 잎새 소리를 닮은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그는 여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여느 때와 똑같은 시간에 회사를 나섰다. 아직 하늘은 밝았지만 거리의 간판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밝아보였다. 저녁 약속이 있어 빠르게 걷던 그의 맞은편으로 그녀가 보였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다가왔던 거리만큼이나 그들은 다시 멀어졌다.
남자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그토록 기다리지 않았던 가을이 어느덧 다가왔다고.
노래 : 유희열 – 여름날(feat. 신재평 from 페퍼톤스)
2.
그녀에겐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반가워요. 잘 지내나요. 요즘은 바쁜가요. 또 만나요. 다음 번엔 맛있는 밥을 먹어요. 전화할께요. 가끔 연락해요. 안녕.
늘 같은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하고, 그리곤 다시 아무렇지 않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인사를 하고. 그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 고된 몸을 기댄 채 그녀는 하루 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그녀에겐 너무도 지겨운 나날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를 만난건 뜻밖의 일이었다.
그녀는 그와 만나면서 다른 사람과 똑같이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약속을 할 필요가 없었다. 말 한마디, 눈 짓 하나, 표정 하나에도 그와는 말이 잘 통했고, 그녀는 그런 그가 참 좋았다. 항상 똑같은 일상 속이었지만 그와 만나는 동안 그녀는 일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덧 일을 마치고 그녀는 집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에서도 두사람이나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해야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 순간 맞은편에서 그녀는 그를 보았다.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다가간 거리만큼 그는 다시 멀어졌다.
그녀는 그에게 하고싶은 말들이 많았다.
반가워요. 오랜만이에요. 얼굴 좋아졌네요. 하는 일은 다 잘되나요. 건강한가요. 다음 만날땐 꼭 술 한잔해요. 안녕, 안녕.
그렇지만 그녀는 문득 깨닫는다. 이제 그는 일상적인 인사도 건넬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노래 : 유희열 – 즐거운 나의 하루(feat. 신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