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닌텐도 에뮬레이터 델타(Delta) 사용기

애플이 EU와 미국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여러가지 정책 제한을 풀고 있습니다. 대부분 EU 사용자에게 해당하지만, 딱 하나 전세계 사용자에게 적용되는 규칙이 있었는데 바로 게임 에뮬레이터 앱의 허용입니다.

안드로이드와 달리 그동안 아이폰에는 게임 에뮬레이터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아무래도 저작권의 보호라는 명목이었겠지만, 지금와서 델타 같은 앱이 앱스토어에 버젓이 올라가 있는걸 보면 뭔가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델타는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앱으로 원래는 허용되지 않는 Xcode를 통한 사이드로딩이나 탈옥폰 앱스토어인 Altstore에서 올라와있던 앱입니다. 정책이 풀리자마자 고퀄리티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저도 정책이 풀리자마자 델타를 받아놓긴 했는데 귀차니즘에 잊고 있다가 최근 갑자기 생각나서 고전 게임 몇가지를 돌려봤습니다. 참고로 델타는 닌텐도 게임만 지원하는 에뮬레이터입니다. 패미컴부터 게임보이, 닌텐도 DS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닌텐도 게임을 지원합니다.(현세대 콘솔인 스위치는 제외)

게임 플레이

아이폰용이라 ROM 파일을 어떻게 넣을지 걱정을 많이했는데, 파일 앱 API와 통합되어있어 생각보다 엄청 쉬웠습니다. 에어드랍으로 넣을 수도 있고 iCloud를 통해 동기화할 수도 있습니다.

역시 닌텐도하면 가장 전설적인 게임을 돌려봐야겠죠.

인상적인 점은 세대에 따라 터치 컨트롤러의 모양이 바뀐다는 겁니다. 슈퍼마리오의 경우 패미컴 게임이었기 때문에 패미컴 컨트롤러 디자인 그대로 나옵니다.

2x년째 클리어를 못하고 있는 명작 파이널판타지 6(슈퍼패미컴). 에뮬 게임의 장점은 한글을 지원하지 않는 게임도 한글판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거죠.

닌텐도 DS도 잘 돌아갑니다. 터치나 마이크도 잘 인식되어 할 맛이 납니다. 닌텐도 DS는 워낙 다양한 기믹을 쓰다보니 컴퓨터에서는 거의 못할 정도였는데 아이폰에서는 최적이더군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건 게임보이 버전 포켓몬스터였습니다.

게임보이 인터페이스 그대로 플레이할 수 있어서 그때 그 시절의 향수가 묻어납니다. 정작 저는 게임보이를 소유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죠. -_- 특히 포켓몬스터는 원래부터가 게임보이를 위해 만든 게임이라(이름부터가 “포켓” 몬스터죠) 포켓몬스터를 진짜 주머니에 들어가는 디바이스로 플레이하는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화면이 너무 작을 경우 가로 인터페이스도 지원합니다. 실제로 플레이할 때도 가로가 좀 더 편하긴 하지만 세로로 플레이할 때는 한손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터치 기반 인터페이스라 조작의 제약이 있지만 파이널판타지나 포켓몬스터, 슈퍼로봇대전 같은 RPG 게임은 아무 문제 없이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원할 경우 이렇게 컨트롤러를 연결해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우연찮게도 컨트롤러도 조이콘이네요.

델타 플레이한 후기

전 아이폰에서 모바일 게임을 안합니다. 아이폰 초창기에도 유료 게임 중심으로 했었고 게임 내 아이템을 돈주고 사야하는 게임은 거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정신차려보니 그 기준에 맞는 모바일 게임이 하나도 없더군요. 자연스럽게 점점 모바일 게임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애플 아케이드가 있긴 하지만 애플 아케이드도 거의 아이패드나 맥에서 하고 아이폰에서는 거의 안합니다.

그런데 델타는 잊었던 모바일 게임의 즐거움을 다시 저한테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델타로 플레이하는 포켓몬스터는 진짜 “포켓”에서 하는 포켓몬스터라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항상 갖고 다니는 디바이스에서 게임을 하는 즐거움은 스팀덱이나 스위치 같은 휴대용 게임기로는 채울 수 없더군요. 간편함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경험입니다. 이 좋은걸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은 진작에 경험하고 있었던거죠.

물론 델타 같은 에뮬레이터는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제가 위에서 플레이한 게임들도 제가 실제로 소유했었던 게임들도 있지만 실물 카트리지를 잊어버린지 오래거든요. 애플도 이번에 정책을 풀면서 이런 저작권 문제는 앱 개발자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닌텐도가 현세대 콘솔이 아닌 게임들을 언제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는거죠.

한편으로, 왜 애플이 그동안 에뮬레이터를 막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와서 아예 앱 개발자에게 책임을 돌릴거라면 애초에 아이폰에서 에뮬 게임을 막고 있었던 이유가 뭐였을까 싶은거죠.

애플은 에뮬레이터 게임을 허용하면서 클라우드 게임 앱도 허용했는데, 에뮬 게임이야 저작권 때문이라고 쳐도 클라우드 게임은 막을만한 정당한 이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애플은 개별 게임에 대한 심사를 못한다는걸 이유로 들었는데, 상당히 궁색한 변명이었죠.

애플이 클라우드 게임을 막은 이유는 사실 애플 생태계 내에서 게임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는게 두려웠을 뿐입니다. 델타를 해보니 게임 에뮬레이터도 마찬가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저작권은 허울 좋은 핑계였을 뿐, 사실은 애플이 모바일 게임 생태계에서 주도권이 뺏기는 것이 싫었을 뿐인거죠.

그렇다고 하면 애플이 이제와서 클라우드 게임을 열면서 함께 게임 에뮬레이터를 허용한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애플이 저작권에 대한 생각이 갑자기 바뀐게 아니라 규제 기관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단단히 닫아 걸고 있던 모바일 게임의 빗장을 푼 것입니다.

결국 애플의 빗장은 애플의 사용자보다 애플 자신을 위한 빗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손해는 사용자가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EU의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 이런 것이 정부 규제의 순기능이겠죠. 자의든 타의든, 앞으로 애플이 좀 더 개방적인 방식으로 생태계에 접근하길 바라봅니다.

델타 후기를 쓰다가 삼천포로 빠졌지만(…) 모쪼록 아이폰 생태계가 좀 더 개방되어 좀 더 다양하고 건강한, 양질의 모바일 게임이 많아지길 바라며, 델타 플레이 후기는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