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편지(애니메이션)

이번에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연의 편지>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원작 웹툰은 꽤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잘 안는데 지브리 스타일의 작화를 갖고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작 웹툰을 봤을 때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애니메이션이 개봉했을 때도 극장에서 볼까 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서 넷플릭스에서 보게 되었네요.

작년 말쯤에 개봉한 영화라서 생각보다 빨리 넷플릭스에 들어왔다 싶었는데 롯데에서 배급한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중에 나오는 롯데 계열 제품들(칠성 사이다, 아이시스 등)은 상표 그대로 나오는데 다른 브랜드(삼양 라면이라든지)는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나오는게 재미있었습니다.

“풋풋함”. 이 작품을 한단어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집단 괴롭힘 등 현실적인 소재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조금의 판타지가 섞인 10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연애 감정도 끼어있지 않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시간적 배경은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핸드폰이 없는 시대라는 겁니다. 애초에 제목처럼 편지가 주요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다보니 여기에 만약 핸드폰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많이 썰렁해집니다. 주인공들이 전화로 이야기하는 부분도 공중 전화와 집 전화를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센치미터>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 세대에게는 공감하기 어렵거나 그저 판타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약간 추리 소설 같은 면모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호연”이 남긴 편지들을 찾아가며 호연이의 흔적을 찾아가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웹툰 같은 경우 일주일에 한번씩 연재되다보니 이 추리소설로서의 호흡과 완급 조절이 꽤 자연스러운 편이었는데 애니메이션은 러닝 타임 내에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다보니 좀 다급하게 진행되는데, 이 부분은 약간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원작에 비해 캐릭터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인데 원작은 상당히 지브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화였습니다. 정호연은 뭔가 전형적인 지브리 만화의 병약한 남자 주인공 같은 느낌이고, 마녀가 기르는 고양이 “부하”는 분명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귀를 기울이면>의 ‘부타’) 느낌이 강했죠.

원작 웹툰의 정호연

반면 애니메이션은 지브리보다 신카이 마코토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습니다. 뭔가 유행이 반영된 거겠지만 원작과 작화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다보니 많이 아쉬웠습니다. <연의 편지> 웹툰을 읽었던 사람들이 기대했던 애니메이션 화는 이런 결과물은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뭔가 스타일이 바뀐 호연이

신카이 마코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작중 잠깐 등장하는 서울의 풍경과 기차의 디테일이었습니다. 인공물이 대부분인 도시의 풍경도 아름답게 바꾸는 신카이 마코토처럼 서울도 꽤 아름답게 나오거든요.

특히 위의 무궁화호처럼 기차 디테일을 꽤 잘살렸다고 생각했는데 기차역과 기차 디자인 등에 코레일의 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쩐지 로고가 당당히 나오더라구요. 기차와 도시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만해도 이 애니메이션이 어떤걸 지향하는지 잘 알 수 있죠.

다만 작중 배경이 “청산”이라는 시골이다보니 신카이 마코토 작화 특유의 아름다운 도시 배경은 초반 말고는 볼 수 없다는게 좀 아쉽습니다. 원작은 자연이 많이 등장하는 지브리 스타일의 이야기였다보니 어쩐지 뭔가 계속 두 가지 세계가 충돌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작이 “왜색”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보니(현관문에 있는 전화기 위치, 철길 건널목, 옥상에서 점심 먹기 등) 애니메이션에서는 꼼꼼히 이런 왜색들을 지웠습니다. 전화기 위치를 장식장으로 바꾸고, 전화기 옆에 아로나민 골드 스틸 케이스가 있는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많이 신경 썼습니다. 철길 건널목도 뭔가 시골 어딘가에 있을만한 풍경으로 바꾼 것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야기에 중요한 부분들(특히 옥상에서 점심 먹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사용했는데다 애니메이션 스타일 자체가 신카이 마코토에게 영향을 진하게 받은 스타일이다보니 여전히 어디에선가 본 일본 애니메이션 같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기왕 이럴거면 그냥 원작 웹툰 스타일로 끝까지 밀고 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이야기도 충분히 아름답고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완급 조절도 무난합니다. 다만 원작의 팬들이 기다려온 애니메이션 화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으셨거나 무난한 애니메이션을 보고자 하신다면 충분히 재밌게 보실 수 있을만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덧. 주인공 “이소리” 역할은 성우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악동 뮤지션의 이수현이 더빙했더군요. 연예인 더빙인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