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야, 지금 뭐하니?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4의 후속 모델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세대 아이폰과 똑같은 디자인에 성능만 약간 향상시키고 새로운 기능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아이폰3gs 출시 이후 아이폰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우리나라에서 “아이폰 혁신이 사라졌다”는 레파토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습니다.후속 아이폰이 아이폰4와 달랐던 점은 딱 하나, 시리(Siri)라는 이름의 음성 비서였습니다. 시리의 앞 글자를 딴 S가 붙으면서 아이폰4S로 이름 붙여진 이 폰은 본격적으로

시연 영상

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명령을 수행하며, 심지어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농담도 할 줄 아는 이 스마트폰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시리는 기술 업계 뿐 아니라 대중 문화에도 영향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말하는 스마트폰과 연애하는 영화

가 있었죠. 그만큼 말하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비서 시리의 존재는 특별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결정적으로 시리는 SF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인 “인공지능”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시리 출시 이후 많은 후발 주자들이 음성 비서 개발에 열을 올렸죠. 구글은 Google Assistant라는 시리와 조금 다른 접근법을 지닌 음성 비서를 선보였고, 삼성과 LG는 애플과 비슷한 음성 인식 비서를 선보였습니다. 비록 그 수준은 시리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말이죠. 그 외에도 MS의 코타나, 아마존의 알렉사 등 많은 후발주자들이 시리에 영향을 받았습니다.이렇듯, 2011년 10월 4일에 처음 등장한 시리는 6년 동안 우리에게 인공지능의 신선한 충격을 알려주었고, 이후 애플에서 만든 모든 기기에 실행되면서 애플 사용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친구나 부모님에게 문자를 전송해주고, 음악을 재생해주기도 하였습니다.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는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시리를 이야기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적으로 구글의 “알파고”가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인공지능 시장은 아마존의 알렉사와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가 나눠먹고 있습니다. 그건 올해 2018년에 열린 CES에서도 두드러집니다.일반적으로 CES에서 소개되는 스마트한 신제품들의 중심에는 아이폰이 있었습니다. 아이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방석, 아이폰을 이용한 드론 쿼드콥터, 아이폰을 이동중에 충전할 수 있는 이동식 배터리 기기 등 CES에서 소개되는 단골 주제였죠. 물론 올해 CES에도 아이폰을 위한 제품이 많이 있지만, 아이폰은 한쪽 구석으로 물러난 느낌입니다. 이번 CES는 유독 인공지능을 활용한 제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존의 알렉사와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가 있었죠.

알렉사를 사용한 기기 또는 알렉사와 연동이 되는 기기들이 많았습니다.

시리는 찾아볼 수 없었죠.그러고보면 6년전의 시리가 하는 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옆집 알렉사는 말 한마디면 아마존에서 장을 봐서 집까지 배달해주기도 하고, 또 옆집 구글이는 스타워즈에서 자자 빙크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몇번째에서 등장했는지 알려주지만 시리는 그저 “웹에서 검색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반복할 뿐입니다. 다른 음성 비서보다 한참 먼저 등장했던 시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애플의 통제 본능

일단 시리가 이렇게 된데에는 애플의 통제 본능을 이유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 음성 비서의 핵심은 사실 음성인식 기술이 아닙니다. 음성을 인식해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바로 “스킬”이라고 일컬어지는 이것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쇄된 생태계로 유명한 애플의 통제 본능은 시리가 이런 “스킬”을 늘리는데 악영향을 주었습니다.스티브 잡스는 매우 유명한 통제광(Control Freaks)이었습니다. 애플 컴퓨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운영체제 개발부터 하드웨어 공정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들기를 선호했습니다. 잡스가 인용하기 좋아했던 앨런 케이의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하드웨어도 같이 만들어야 한다.”란 말도 잡스의 통제 본능을 잘 설명합니다.애플의 통제 본능은 꽤 괜찮았습니다. 애플의 맥 컴퓨터는 하드웨어에 미리 OS와 필요한 기능들이 설치되어있었고 별도의 설정 없이도 하드웨어를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윈도우즈를 사서 소프트웨어 호환성에 대해 신경써야하고 추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했던 PC와 달리 이런 부분은 맥의 장점이었습니다. 또한 아이폰부터 도입이 시작된 레티나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들지 않는다면 사실 도입되기 어려운 기술이었습니다.하지만 이런 애플의 통제 본능은 애플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애플 컴퓨터는 초기에 너무 강한 통제로 인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망가뜨렸습니다. 애플 컴퓨터는 그 자체로 뛰어났지만, 애플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가 남아있지 않았죠. 애플은 이로부터 데스크탑 PC 시장의 주도권을 잃게 됩니다.지금 시리가 처한 상황은 이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애플에 의하면 올해 출시 예정인 홈팟은 50개의 파트너 브랜드가 함께한다고 합니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실행되는 기기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연동되는 서비스도 많아 “스킬”이 2만개가 넘어가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애플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애플의 통제 정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홈킷과 홈팟의 경우 MFI 인증된 칩을 사용한 하드웨어만 연동이 가능하기도 했죠. 이후에는 전용 칩 없이도 개발이 가능하다는 정책으로 선회하긴 했지만 초기의 저런 통제적인 정책은 파트너들이 애플의 생태계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물론 애플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애플은 맥에서 소프트웨어 부족 사태를 겪었지만 플랫폼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여 “앱스토어”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어냈죠. 앱스토어는 그 어떤 경쟁자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애플은 이 앱스토어를 이용해 시리를 강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iOS11에서부터는 앱스토어에 올라온 앱들에 시리를 개방하여 앱스토어 앱들도 시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능면에서는 아마존을 따라가기엔 아직 역부족인 느낌이 듭니다.

인공지능과 개인정보에 대한 전략

시리 부진의 이유 또 하나는 애플의 인공지능에 대한 전략에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핵심은 기계 학습이죠. 음성비서 인공지능은 기계학습을 통해 음성인식을 스스로 더 정교화시키고 사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수행할 확률을 높입니다.이러한 기계 학습은 데이터 수집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양질의 많은 데이터가 인공지능의 품질을 결정하죠. 물론 데이터 없이 스스로 학습하여 고수들을 이기는 경지에 이른 “알파고 제로”라는 녀석도 있지만 결국 알파고 제로의 기반도 기존 알파고가 수없이 쌓아온 데이터에 기반합니다.양질의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보다는 실제 사용자의 데이터를 추출하는게 가장 좋습니다. 이런 사용자의 데이터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클라우드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일 것입니다. 그래서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기업은 사용자 정보를 이런 기계 학습에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구글 같은 경우는 이미 유명한 사례가 되었죠. 구글은 Gmil이나 구글 포토 등으로 사용자 데이터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집하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데이터는 익명화되어 기계 학습에 사용되고 인공지능을 정교화하는데 사용합니다.이 분야의 선구자(?)인 아마존도 유명하죠. 아마존은 쇼핑몰에서 사용자의 사용 데이터를 수집하여 사용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합니다. 그 뿐 아니라 Ubuntu와 제휴하여 Unity 인터페이스의 검색 데이터를 수집한 적도 있었습니다.에버노트도 비슷한 것을 시도했는데 그 방법이 약간은 어설펐는지 기계학습에 사용자 데이터를 쓰겠다고 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고 후퇴한 전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사용자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던 적이 있죠.애플은 이런 기업들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애플의 인공지능 기술은 주로 로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진” 앱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여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이 데이터는 온라인으로 공유 되지 않습니다. 구글 포토는 사진을 클라우드에 있는 구글의 컴퓨터가 분류하여 서비스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아이폰의 “사진”앱은 이런 작업을 로컬에서 사용자의 스마트폰의 프로세싱 파워로 진행합니다. 그렇게하여 민감하고 중요한 데이터가 온라인을 통해 공유되지 않도록 합니다.애플도 iCloud라는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iCloud는 어디까지나 동기화와 저장의 목적일 뿐 애플은 사용자의 정보를 보호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건 애플이 경쟁사에 비해 양질의 데이터를 얻기 힘들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 안에는 상당히 민감한 내용의 정보가 저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인상을 준다면 사용자들은 정보 보호에 불안함을 느낄 것입니다.즉 애플의 인공지능 정책은 크게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사용하지 않는다”와 “모든 것은 로컬 기반에서 이루어진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은 사용자들에게는 안심을 주었지만 이로인해 인공지능 시장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애플의 인공지능 기술들을 보면 간단한 길도 실제로 돌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느낌 때문인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애플”이라는 이름은 잘 언급되지 않습니다.

마무리

제 생각엔 애플이 시리를 살리고자 한다면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리를 살리고자 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생태계를 오픈하거나 인공지능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먼저 생태계를 좀 더 오픈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는 MFI 같은 인증을 받은 파트너만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을 좀 더 오픈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오픈해야할 것입니다. 알렉사처럼 서드파티 기기에서도 실행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보다는 연동할 수 있는 파트너를 늘려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스킬 자체를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행히도 애플은 이런 방향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iOS는 안드로이드에 비해서는 아직 멀었지만 많은 부분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iOS11에서 앱스토어에 등록한 앱들에 시리를 개방한 것으로 볼 때 시리는 점점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6년간의 변화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지요.인공지능과 사용자 정보에 대하여도 좀 더 적극적인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상대는 사용자 정보를 상대적으로 잘 이용하는 아마존과 구글이기 때문이죠. 애플의 방식을 지지하지만 이래서는 속도면에서 경쟁이 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가뜩이나 양질의 정보를 수집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말이죠.) 애플이 시리를 향상시키려한다면 사용자 보호와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 수집이라는 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FaceID를 개발하기 위해 애플은 10억개의 얼굴 이미지를 학습시켰다고 합니다. 사용자 정보 수집을 제한하고 있다는 애플이 10억개의 얼굴 이미지를 어디에서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플은 이 부분에 있어서 나름의 방법대로 해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시리는 거의 초기에는 인공지능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던 시리. 지금은 인공지능을 언급할 때 경쟁자로서 언급되지 않는 위치가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용자 정보 보호에 신경쓰면서도 천천히 발전해나가는 애플의 방식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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