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장거리로 비행기를 타면서 아이패드 프로에 볼 것들을 저장해서 갔습니다. 대부분 장거리 비행기에서는 비행기 자체에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있지만 제가 탔던 비행기는 티웨이라서 VOD는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에 스크린이 있긴 했지만 그냥 먹통이더군요. -_- 그래서 볼거리를 준비하는게 거의 필수였습니다.
현재 구독중인 OTT가 디즈니 플러스 밖에 없어서 대부분이 디즈니 작품으로 받아갔는데, <전부 애거사 짓이야>랑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 <데드풀과 울버린> 요렇게 세가지 정도 준비하니 시간이 어느정도 맞더군요. 그 중 올 때 비행기에서 몰아봤던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에피소드 7, 8, 9)>에 대한 후기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6까지는 모두 봤지만,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는 웬지 정이 안가서 따로 보고 있진 않았습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에서 인기 있던 캐릭터들의 마지막을 웬지 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영화 자체의 평가도 미묘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최근에 로그원을 보고 난 뒤 생각이 바뀌어서 시퀄 시리즈도 이번에 시도해봤습니다.
보고 난 후기는 ..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워낙 대작의 뒤를 잇는 작품이다보니 감독과 제작진의 부담이 느껴지는건 사실이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같은 이야기를 또 한번 되풀이할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플롯이 너무 별로
영화의 배경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6의 반란 연합의 승리 후 30 여년 후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반란 연합이 승리한 후 신공화국이 들어서며, 은하계는 잠시 평화를 찾았지만, 제국의 잔당인 “퍼스트오더(Order;실제 히틀러의 친위 부대의 명칭에서 유래)”가 그동안 몰래몰래 세력을 키워서 신공화국을 한방에 무너뜨리고 다시 은하계를 장악하게 됩니다. 반란 군의 정신을 이은 저항군이 퍼스트오더에 대항해 싸움을 이어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플롯 자체가 너무나도 별로였습니다. 굳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4,5,6의 구도를 따라오기 위해서 다시 “퍼스트오더“와 ”저항군“의 대결로 너무 억지스럽게 이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국이 몰락한 이후 들어선 신공화국은 제국의 함대 대부분을 그대로 흡수해서 엄청나게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게 퍼스트오더의 레이저 한방(스타킬러 베이스의 레이저)에 모두 전멸해버립니다. -_- 위에서 한방에 무너졌다고 했는데 정말 한방에 무너집니다. 제대로된 싸움도 못해보고 말이죠.
차라리 공화국이 마음대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소수 정예의 “저항군”이 제국 잔당인 퍼스트오더를 소탕하는 이야기였거나, 퍼스트오더가 모르는 사이 외곽 은하를 모두 장악해버려서 제국 잔당과 공화국이 힘겨루기를 하는 내용이었다면 좀 더 새로운 이야기도 가능했을 것 같은데, 시퀄 시리즈는 스타 킬러 베이스의 레이저 한방으로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서 다시 “제국”과 ”반란군“의 구도를 다시 답습합니다.
사실 이 구도 때문에 처음부터 삐딱하게 보게 되었지만, 그 것 외에도 중간중간 몰입을 깨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합니다. 빈틈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이 빈틈을 다른 영화나 매체에서 채우는 중이죠. 예를 들어 <만달로리안>은 왜 공화국이 퍼스트오더의 존재를 몰랐으며 대처를 못했는지에 대한 빈틈을 메꾸고 있고, 2017년에 출시된 EA의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2>의 캠페인에서는 저항군이 왜 퍼스트 오더 전함의 설계도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는 식입니다.
저는 시퀄시리즈보다 <만달로리안>과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2>를 먼저 접했지만 그래도 플롯의 구멍은 정말 몰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너의 이름은
로그원 후기에서도 제다이가 나오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는데, 시퀄 시리즈의 저항군은 정말 당하기만하고 아무것도 못하다가 레이라는 갑툭튀한 제다이 기사로 인해 모든 전황이 뒤집힙니다. 레이 캐릭터도 평가가 별로 좋진 않지만, 그것보다 답답했던건 레이와 카일로 렌이 포스로 펼치는 “너의 이름은”의 전개 방식이었습니다.
레이와 카일로 렌은 작중 어느 시점부터인가 포스로 연결되어 서로 원격으로 대화도 하고 대립도 하고 토론도 하고 손도 잡고 하면서 원거리 연애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작의 다스베이더 포지션인 카일로 렌은 사실은 계속 흔들거리는 사춘기 소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선생님에게 삐져서 결국 생전 본적도 없는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다는 명목으로 흑화(다크사이드)한 중2병 캐릭터이지만 레이라는 운명의 단짝을 만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라이트 사이드로 전향하게 됩니다.
결국 시리즈가 모두 <너의 이름은>처럼 남녀 캐릭터가 포스라는 운명의 실로 연결되어있고, 이를 서로 대립해야할 레이와 카일로 렌이 연애하면서 풀어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랑의 힘으로 은하계가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는 느낌이랄까요? -_-
저는 제다이 이야기를 너무 평평해서 싫어하지만, 이렇게 제다이 개인의 개인사가 은하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는 정말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멸당한 로그원 특공대나 만달로어인 같은 외곽 은하의 현상금 사냥꾼 등 은하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다니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제다이로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충분히 구성이 가능할텐데, 제다이는 너무 세상의 구원자 느낌이라 조심스러운걸까요.
설정 파괴
개인적으로 최악의 장면을 꼽자면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의 저항군의 라더스 순양함의 자폭 장면이었습니다. 한명의 숭고한 희생으로 하이퍼스페이스 도약으로 제국의 함대를 전멸시키는 장면은 단연 클라이막스였지만 사실 말도 안되는 설정 구멍이었거든요.
스타워즈의 설정이야 워낙 이랬다저랬다하고 디즈니로 인수된 이후에는 폐기된 설정들이 많지만 이 하이퍼스페이스 도약을 이용한 자폭 장면 만큼은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스타워즈 세계관에서도 우주에는 빛보다 빠른 물체는 없습니다. 스타워즈의 우주선에도 아광속 추진기가 달리긴 하는데, 어디까지나 “아광속”, 즉 빛의 속도보다 조금 느린 정도의 추진기입니다.
하지만 은하계가 배경인 스타워즈에서 광속으로만 움직여도 다른 행성을 가는데 너무 오래걸릴겁니다. 그래서 도입된게 하이퍼스페이스 추진기죠. 하이퍼스페이스는 우주선을 일종의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킵니다.(웜홀?) 이 공간에서는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스타워즈의 우주선들은 하이퍼스페이스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별과 별 사이를 이동합니다. 즉 하이퍼스페이스는 겁나 빠르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공간 이동에 가까운 방식이라는거죠.
근데 전함 한대가 하이퍼스페이스 도약을 통해 제국 함대를 궤멸시킨다.. 스타워즈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장면에서 확 깨버릴겁니다. -_- 만약 이런 방식이 통한다고 하면 앞으로 스타워즈의 함대전은 레이저 포 같은건 필요 없이 하이퍼스페이스를 통한 충각전으로 가면 되겠죠.
라스트 제다이에서 가장 최악의 장면은 이 장면 전에 계속 나오는 16시간에 걸친 추격전입니다. 퍼스트오더 전함의 사정거리보다 미묘하게 멀리 떨어져서 도망치는 저항군의 순양함을 16시간 동안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추격하는데, 이 영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_-;;
전함의 규모로 봤을 때 타이 전투기와 타이 폭격기 한 다섯대만 보내도 전함 하나 정도는 충분히 궤멸 시킬 수 있었을건데(전투기가 전함보다 당연히 빠를거기 때문에) 퍼스트오더는 참을성 있게 연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16시간 동안 착실하게 추격합니다. 퍼스트오더가 순식간에 공화국을 엎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인내심에서 온것인지 경이롭습니다.
마무리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표정이었습니다. 일단 시작했고, 다른 할 일이 없는 비행기여서 끝까지 본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중간에 관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퀄 시리즈가 개봉했던 시기에 영화를 봤다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그런 평을 많이 들었던 것 같구요. 진짜 <만달로리안>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스타워즈 시리는 시퀄을 마지막으로 다 끝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퀄 시리즈 이후 여태까지 좋은 평을 들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 로그원>, <만달로리안>, <안도르> 등을 보면 모두 스타워즈 세계관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다이는 스쳐 지나가거나 아예 안나오기도 하죠. 반면 최근에 평이 좋지는 않았던 <아소카>, <오비완>, <애콜라이트> 등의 시리즈는 모두 제다이가 주연이죠.
최근 시리즈의 반응들처럼 개인적인 생각에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제다이가 아닌 좀 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제다이가 나오면 이야기가 너무 평평해지고, 스케일이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뭐 물론 제다이와 광선검이 안나오면 그게 무슨 스타워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작중 루크 스카이워커가 했던 말 대로, 극단적으로 보자면 세계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제다이는 다 없어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에서 봤던 것 중 의외로 가장 좋았던건 <모두 애거사 짓이야> 였는데, 이건 다른 글에서 후기로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