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얼마 전 <스킵과 로퍼>라는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얼마 전 영등포 역 알라딘에 갔다가 코너 한켠에 이 만화로 도배되어있는 팝업 스토어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국내에서는 꽤 인지도가 있는 만화책이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다가 우연찮게 그때봤던 만화가 애니메이션으로 있어서 봤습니다. 그러고보면 넷플릭스에서는 요즘은 거의 애니메이션만 보는군요. -_- 사람 취향이 어디 안가는듯.
포스터에서도 느껴지지만 상큼한 학생물입니다. 거의 왕도라고 할 정도로 전형적인 일본 학생물인데, 입학식, 축제, 동아리 활동 등 일본 학생물 만화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든 소재가 다 나옵니다. 오히려 너무 전형적이라 신선할 정도.
일단 주인공, 미츠미는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고 고향에서 소문난 수재입니다. 본인도 공부를 잘하고 고위 관료가 되어 돌아와 나중에 고향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시장이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에 대해 겸손하거나 숨기지 않고 심지어 자기소개 때도 “나는 남들 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물론 농담이었지만)
전 이게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학생이 공부를 하는게 당연하지만, 학생물에서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예전 만화(90년대나 2000년대 쯤)에서는 별로 내세울 것은 못되었습니다. 일단 그 만화를 소비하는 학생층부터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별로 인기가 없으니까요. 대신 주인공은 운동을 잘하거나 다른 쪽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나오죠. 근데 학생물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주인공이라니.. 역시 시대가 변한걸까요.
공부를 잘하는 주인공보다 특이한건 미츠미의 캐릭터 디자인인데, 눈에 띌 정도로 평범한(?) 디자인입니다. 다른 만화라면 주인공 일행의 반 친구 1 정도 되는 디자인이랄까요. 보통 ‘평범한 여고생’이라고 나오는 캐릭터들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갖고 있는걸 생각해보면 꽤 독특한 선택입니다.

만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가 다 이렇게 생겼으면 미형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캐릭터들 중 이쁘다고 나오는 캐릭터는 확실히 이쁘게 나오기 때문에.. 의도적인 디자인인듯.
같은 학생물이면서도 뭔가 어두웠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같은 90년대 순정만화에 비교한다면 <스킵과 로퍼>는 그냥 눈이 부신 이야기입니다. 물론 아예 갈등이 등장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 당시에만 할 수 있는 고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학생들이 고민할만한 그런 이야기랄지.
순정만화이긴 하지만 마냥 연애물도 아닌데,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와 비슷한 것들이 그려지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정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적어도 애니메이션 1기까지는) 그보다 도쿄로 상경한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이야기가 더 비중이 높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장르가 장르인지라 남자 주인공은 인기인에다 얼굴도 잘생겼고 귀여운 강아지 상인데다 어쩐지 품어주고 싶은 아픈 과거가 있는 인물입이긴 합니다만.(이것마저 왕도적인..)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 외에는 사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정석을 따라가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달까요. 사실 제가 이제까지 봐왔던 같은 장르들의 이야기들은 학생물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어둡고 나사 빠진 이야기들이 많았거든요.(<그남자 그여자>, <꽃보다 남자> 등등..) 오히려 아예 왕도를 걸음으로써 오랜만에 “이게 청춘물이지!” 싶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힐링한 작품입니다. 요즘은 판타지고 애니메이션이고 영화고 뭔가 비틀거나 삐뚤어진 이야기가 많다보니 이렇게 왕도를 걸어가는 이야기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애니메이션 좋아하신다면 한번쯤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 다만 이야기 전개가 느려서 애니메이션 1기가 끝났는데 이제 1학기가 끝났습니다(…) 이대로면 최소 6 시즌까지는 나와야 주인공이 졸업하는걸 볼 수 있겠네요.
덧2. 제목에서 ‘로퍼’는 일본 여학생들이 많이 신고 다니는 구두 형태의 신발을 의미합니다. 주인공들도 초반에는 로퍼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후반부 쯤에는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운동화를 많이 신고 다닙니다.
덧3. 그럼 ‘스킵’은 무슨 뜻이지 싶어서 찾아보니 스킵은 영어의 Skip 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Skip이 가지는 어감이 시원하고 청량해서 그냥 붙인거라고. 전 이것도 무슨 신발이나 옷인줄 알았네요.
덧4. 위에 비교한 만화들이 다 90년대 만화들인데 그 이후 만화들은 안봐서 비교가 불가합니다. -_- 제가 그때 이후로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을 잘 안보긴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