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내는 리뷰 – Nokia Lumia 710

무릇 만남에는 이별이 있고, 이별에는 또한 만남이 있으니, 지름이 있으면 필시 떠나 보내는 기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보통은 지름 리뷰를 많이 하지만 떠나보내는 기기를 돌이켜 보는 리뷰도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리뷰(Review)라는 말 자체도 다시(Re) + 보다(View)의 합성어이니까요.

무려 한달전에 올린 아래 포스팅에서 보이듯 드디어 12월 7일에 아이폰5를 지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물건이 오면 대체되는 물건이 있기 마련이죠. 그게 제 경우에는 루미아 710과 아이팟 터치 4세대였습니다. 각자 전화기와 음악 + 게임 플레이어의 역할을 잘해왔었으나 두개를 들고다니는 번거로움도 아이폰5를 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이 두개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다가 떨어뜨린적도 참 많았었죠. -_-

그 중 루미아 710은 지난 루미아 대란(?) 때 할부원금 없이 위약금 4만원에 업어온 폰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노후화를 견디지 못한 5800을 대체하고, 다음 세대 아이폰이 나오기까지 버티기 위한 용도였지요. 보통 저는 블로그에 쓰는 리뷰에서 혹평을 잘 쓰지 않습니다. 특히 그게 제가 사서 썼던 물건이라면 더더욱 혹평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일단 저는 물건을 한번 사면 잘 쓰자는 주의인지라..=_= 어떤 물건이든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과 달리 정말 극한으로 잘 썼던 물건이라면 지금도 그리운 p1510과 5800이 있었겠지요. 지금도 저는 저 두 물건을 시대에는 안맞을 지언정 나쁜 기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쓰는 내내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던 기기가 두개 있었는데요, 하나는 아이리버의 LPlayer였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이 루미아 710이었습니다.

사실 루미아 710은 그다지 나쁜 기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기름 바른듯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터치감과 물흐르듯 막힘 없이 펼쳐지는 UI의 향연,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 한번 켜면 두달은 재부팅 없이도 버티는 극강의 안정성까지. 사실 스마트폰이라는 속성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훌륭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출시 초기 걱정을 많이했던 디자인도 생각보다는(..) 훌륭했고 내구성도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사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폰임에는 분명했지요.

하지만 이 폰은 모든 장점을 다 잡아먹는 치명적인 단점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그건 많은 매체에서 지적하는 앱 부족이나 UI 공간 낭비 따위의 소프트웨어 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하드웨어적인 문제였습니다. 바로 화이트 노이즈와 액정이었죠. 정말 이 두가지 결함(!)은 710을 쓰는 내내 절 괴롭혔습니다.

사실 앱이 부족한 것은 알고 샀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선택할 때 앱보다는 안정성이나 속도 쪽에 더 중점을 두는지라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죠. 하지만 화이트 노이즈는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화이트 노이즈가 음악을 재생할 때만 문제가 되면 모르겠는데 통화를 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었습니다. 이어폰에 따라 특성이 다르긴 했지만 거의 대부분 비슷했죠. 노이즈가 얼마나 심한지 통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도 그 노이즈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전화기 명가 노키아로서는 굴욕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문제입니다. 5800 같은 폰은 비록 엄청나게 느리고 쓸만한 앱도 별로 없었지만 통화라는 전화기의 핵심 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건 아무리 저렴한 노키아폰을 써도 다 마찬가지였죠. 710으로 첫 통화를 걸었던 그 순간은 그동안 제가 갖고 있던 노키아 제품에 대한 믿음이 대부분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710은 보급형이라 그런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800이나 900 같은 폰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보고 되었던 것을 보면 문제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710을 처음 개통하고 지하철에서 IE를 열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리 저가형이라고 해도 -_-;; 이 정도였을 줄은.. 그동안 아이팟 터치를 통해 레티나 디스플레이에 눈이 익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했습니다. 누런 액정에 흐린 폰트.. 710에 탑재된 Clear Black 디스플레이는 검은색을 잘 표현해주는 디스플레이지만 흰색이나 다른 색의 표현은 최악이었습니다. LED를 탑재하고 있던 800이나 900은 사정이 좀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디스플레이는 사실 사용자가 디바이스를 사용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이 경험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애플도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것을 소개했고, 삼성도 AMOLED 부터 디스플레이를 많이 강조하고 있는 편이죠. 그런 의미에서 710의 노랗고 흐린 액정은 쓰는 내내 저한테는 괴로움이었습니다.

710을 통해서 처음 써본 윈도폰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마소가 만드는게 뭐 다 그렇지”라는 심정으로 흠을 찾아내려고 애써봐도 흠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운영체제임에는 분명해보입니다. 타이포 그래피를 이용한 유려한 인터페이스와 막힘 없이 흐르는 인터페이스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앱은 안드로이드와 아이폰에 비해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다 갖춰져 있는 편이었지요. 처음에 710을 사면서 “노키아의 뛰어난 하드웨어가 마소의 소프트웨어 때문에 가려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히려 “윈도폰이라는 뛰어난 소프트웨어가 루미아라는 저질 하드웨어에 갇혀 있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Zune 플레이어의 깔끔한 인터페이스

다만 역시 아쉬운 점은 스크린샷 기능의 부재와 업데이트 과정의 번거로움이었습니다. 스크린샷 기능은 사실 필수 기능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블로그나 트위터에 리뷰를 올리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였죠. 5800에서도 스샷 기능은 잘 썼기 떄문에 참 아쉬웠습니다. 업데이트 과정의 경우 iOS를 쓰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새버전이 발표된 후 동시에 딱 하고 업데이트 되는 것도 아니고 사용자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다가 그동안 출시된 업데이트를 차례대로 설치하죠. -_- 업데이트를 하면서 재부팅을 3~4회 정도는 실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업데이트의 이해 안되는 프로세스는 “역시 마소…”라는 말이 절로 나오긴 합니다.

루미아 710을 약 8개월 써보면서 제 소감은 “미고와 N9를 돌려줘!” 였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현재의 노키아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좀 지켰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외로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의 마감 문제가 무수히 많은 장점을 다 잡아먹는 폰이라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아무리 급했어도 이런 기본적인 부분을 잘 챙겼다면 노키아의 상황은 지금보다는 많이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아이폰5와 710의 두께 샷을 올리면서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