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씹어보고.
고작 100페이지밖에 안되는 이 책은 쥐스킨트의 단편중에서도 아주 짧은 단편만을 모아놓은 책이다. 좀 더 많은 단편이 모여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여기에 실린 세가지의 단편들 만으로도 벅차다.’깊이에의 강요’는 소위 평론가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의미 없는 것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림을 보는 사람들과 화가 자신까지도 그 말에 얽매이게 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알아낸것은 여기까지다. 이외에도 ‘스캔들을 좋아하는 언론’에 대한 언급도 있고, 프랑스 예술계의 문란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내가 알아낸것은 바로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진정으로 읽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95페이지에서 100페이지에 걸쳐있는 짧은 글이다. 그 글의 제목은 ‘옮긴이의 말’이다. 그 글은 소설의 무한한 날개를 무참히 잘라버린다. 100페이지이상의 의미를 가진 이 소설을 고작 5페이지짜리로 만들어버린다. 이 ‘옮긴이의 말’은 책을 5번 씹어본다음에 읽어야 한다. 음식맛을 아무리 씹어도 모른다고 다른 사람에게 그 맛을 물어봐서는 그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상상하는 것이거나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을 주장하고 있다고 여기에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해가 거듭될수록 네 몸이 화석처럼 굳어 가고 무감각해지며 육체와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너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가? 어린시절에는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구부렸으며, 하루에 열번 넘어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열번 일어났던 사실을 이제 잊었는가?..
지금 네 모습을 한번 보라! …
네 육신은 뻣뻣하게 굳어 신음 소리를 낸다.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고 한 걸음이라도 내딛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다. 바닥에 쓰러져 오지 그릇처럼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한다. 너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
그것은 벌써 네 심장의 반이나 에워싸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