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가 발표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2018년 아이패드 프로를 6년이 다 되어가도록 쓰고 있는 입장이라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상황이라 이번 아이패드 프로를 상당히 기다렸더랬습니다. 원래는 올해 3월에 발표된다고 했었는데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WWDC 한달 전인 5월에 발표되었습니다.
엄청 기다렸던 모델이긴 한데 막상 발표하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안그래도 아이패드 이야기 밖에 안하는 블루스카이에서 이런 생각들을 이야기했다간 다른 사람들의 타임라인을 오염시키게 될 것 같아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주의! 이 글은 제 생각이 워낙 복잡해서 정리하기 위해 두서 없이 쓴 글이라 너무 개인적이고 시시콜콜합니다.
M4 아이패드 프로
이번 M4 아이패드 프로는 2018년 아이패드 이후 처음으로 디자인 리프레시 된 모델입니다. 2018년 이후로 세 개의 아이패드 프로가 출시되었지만 모두 디자인이 동일한 성능 업데이트였습니다. 5~6년만의 의미 있는 업데이트죠.
특히 엄청나게 얇아진 두께가 눈에 띄는데, 이는 새로운 디스플레이인 OLED를 탑재한 덕이 큽니다. OLED 디스플레이는 소자 자체에서 빛이 나는(자체발광..) 디스플레이라 백라이트가 불필요해서 LCD보다 디스플레이를 더 얇게 만들 수 있죠.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이런 특징을 한껏 살려서 11인치가 5.3mm, 13인치가 5.1mm라는 엄청난 두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두께는 아이팟보다 얇아 애플이 만들어낸 기기 중 가장 얇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썼던 기기 중 가장 얇다고 생각한 기기가 에어팟 터치였는데, 에어팟 터치의 두께가 7.1 mm 였으니.. 엄청나게 얇은 두께입니다.(근데 생각해보면 2018 아이패드 프로가 5.9mm로 더 얇았네요.)
OLED 디스플레이는 장점이 많지만 밝기가 LCD만큼 밝지 않고 수명이 짧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OLED 패널 두개를 겹치는 Tendum OLED 공법을 이용해 수명과 밝기 두개를 모두 향상 시켰다고 합니다. 거의 새롭게 시도되는 기술로 원가가 상당히 비싼 공법입니다.
무게도 가벼워졌는데, 특히 13인치는 100g이 가벼워져서 13인치 아이패드 프로가 400g 대에 진입했습니다. 11인치도 20g 정도 더 가벼워졌습니다. 애플은 맥북은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아이패드 프로에는 온갖 신기술을 다 때려넣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 아이패드 프로도 애플의 하드웨어 기술력을 여지없이 과시한 결과물입니다.
M4 프로세서
여기까지도 상당한데,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는 M4 프로세서가 탑재되었습니다. M3 프로세서가 맥북 에어에 탑재된지 두달이 되지 않았고, 모든 맥 라인에 업데이트 된 것도 아닌데 M3를 건너 뛰고 M4를 탑재한 것이죠.
사실 M3 를 건너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애초에 M3가 3나노 수율이 별로 나오지 않는 공정이었기 때문에 공정을 조기에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M4는 아이패드 프로를 특별히 위해서 만든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빨리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거죠.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맥용 애플 실리콘 M 프로세서를 그 어떤 맥북보다 아이패드 프로에 먼저 넣었다는게 중요합니다. 여기에서도 애플이 기술 과시용으로 아이패드 프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M4 프로세서는 NPU를 특히 강화한 모델로서, 애플도 “AI” 광풍에 참여했습니다. 그동안 “머신 러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던 애플이지만 이 거대한 흐름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애플은 뉴럴엔진이라는 NPU를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탑재하고 있었는데, AI 시장에서 인텔 등보다 뒤쳐졌다는 인상을 받는게 상당히 억울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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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프로세서의 파워는 같이 발표된 소프트웨어에서 여실히 나오는데, 파이널컷 프로 2와 로직 프로 2에 탑재되어있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은 정말 인상적이고 빠르더군요.(동영상에서 누끼를 따는 것은 감탄했습니다.) 단지 전원 조정과 화상 회의 배경 제거에 AI 기능을 쓰면서 AI PC라고 부르는 컴퓨터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입니다.
파이널컷과 로직 프로는 애플이 그리는 AI의 미래를 살짝 보여준건데, 다음달에 열리는 WWDC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가격
이렇게 신기술을 때려박은 것치고는 가격이 “생각보다는” 괜찮게 나왔습니다. 달러상으로 봤을 때, 동일 용량 가격은 동결이었고, 한국은 M2 아이패드 프로 가격이 1400원대 환율 적용이었다가 1360원대로 조정되면서 약간만(?) 상승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 256기가 끼리 비교하면 10만원 정도만 올랐거든요. 다만 함정은 256기가부터 시작한다는거지만요.
M2 아이패드 프로 256기가 가격 : 1,399,000 원
M4 아이패드 프로 256기가 가격 : 1,499,000 원
많은 사람들이 M4 아이패드 프로의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걸 예상하고 M2 아이패드 프로를 구매했는데,(사실 저도 구매했다가 반품했습니다.) 이정도 가격 상승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악세사리 류가 호환이 안되기 때문에 매직키보드와 애플 펜슬을 새로 구매해야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한 비용이 소모되는 것 맞습니다.(다행히 매직키보드와 애플 펜슬 가격 변동은 없었습니다.)
매직키보드와 애플 펜슬
매직키보드의 경우에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실망스럽게 나왔습니다. 기존에는 맥북과 비슷한 형태로 나올거라는 루머가 있었는데 형태는 오히려 기존 매직키보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아이패드 프로가 가벼워지면서 무게 중심이 약간 뒤로 가게 되어 드디어 기능키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가벼워진만큼 키보드 자체 무게도 가벼워졌다고 하는데, 이는 아직 자세한 리뷰가 없어서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론 매직 키보드가 아이패드 프로의 많은 장점을 갉아 먹는 악세사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좀 많이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발표에서도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던 매직키보드와 달리 애플 펜슬은 꽤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받았습니다. 이름도 “애플 펜슬 프로“.. 원래 프로 악세사리였던 애플 펜슬에 프로가 또 붙을 줄은 몰랐습니다. 스퀴즈 액션이나, 배럴롤 등의 제스쳐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와 아이패드 에어 모두 애플 펜슬 프로랑만 호환됩니다. 구버전 아이패드 프로는 애플펜슬 프로와 호환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카메라 위치를 가로로 변경하면서 자석 충전의 위치가 변경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아이패드 프로로 뭐하게?
애플이 이렇게 온갖 기술을 다 때려박은 아이패드 프로이고,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고, 아이패드 프로를 업그레이드할 때가 된 저이지만, 아이패드 프로가 새로 나온 지금, 저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유는 많은 분들과 같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아진 하드웨어로 나는 뭘할 수 있을까요?
MKBHD를 비롯해 많은 테크 유투버, 테크 매체에서도 이번 새로 나온 아이패드 프로에 대해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드웨어가 좋아진건 알겠는데, 기존에도 충분했잖아? 그래서 아이패드로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테크 리뷰들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는데, 애플 펜슬보다 매직 키보드의 언급이 더 많고, 모두 공통적으로 아이패드에 맥OS가 설치되거나 맥 앱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iPadOS의 부족함에 대해 평가하고, 맥OS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죠. 또 공통적으로 “나는 예술가가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며 제대로된 애플 펜슬 리뷰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애초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디바이스가 아닙니다. 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하고 포스팅에 첨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맥북의 사용성이 10배는 더 나으니까요. 아이패드 프로를 보고 왜 더 완벽한 노트북이 되지 못하는지 묻는 것은 맥북을 보고 왜 화면이 분리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똑같습니다.(그리고 전자에 비해 후자는 놀라울 정도로 적습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한 사람들은 애초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좋아진 하드웨어는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해줍니다. 이런 사용 사례는 이미 애플이 키노트에서 잘 보여주고, 많이 보여줬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할 뿐이죠.
다만 문제는 저도 그런 사람이라는 겁니다. 위의 테크 리뷰어처럼 컴퓨터로 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하고 보정하며, 파일 작업을 하는 부류의 사람이죠. 저한테도 맥북 에어가 10배는 더 좋은 사용성을 갖고 있습니다. 메인 컴퓨터로 맥북 에어를 들고 다니며 이 글도 맥북 에어로 쓰고 있죠. 말했던 것처럼 아이패드 프로는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디바이스가 아닙니다.
달라진 상황
2018년 아이패드 프로를 살 때만 해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그냥 사야한다는 생각 뿐이었죠. 하지만 2024년인 지금에 와서 고민하는 이유는 맥북 에어의 존재 때문입니다. 2018년 아이패드 프로를 살 때 맥북 에어는 배터리도 금방 닳고 속도도 느린 물건이었지만, 지금의 맥북 에어는 애플 실리콘 덕분에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물건이되었죠.
2018년 아이패드 프로를 살 때만해도 메인 랩탑의 자리를 차지할 용도였기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M1 맥북 에어가 나오기 전까지 제 메인 랩탑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지금의 아이패드는 2018년의 아이패드 프로와 포지션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 비용을 들여서 구매를 해야할지 망설일 수 밖에 없는거죠.
얼마 전, 아이패드 프로만 들고 지방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블로그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아이패드 프로에서 워드프레스 포스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첨부랑 글 형식이 계속 깨졌습니다. 심지어 워드프레스는 아이패드 프로용 Jetpack 앱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맥북 에어에서 였다면 금방 썼을만한 글인데, 아이패드 프로로는 전용 앱이나 사파리나 둘 다 초안 외에는 작업이 어려웠습니다.(물론 제 아이패드 프로가 낡은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현실이 M4 아이패드 프로라고 크게 다르진 않아보입니다.
고민하는 이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 프로를 놓고 고민하는 이유는 반은 단순히 갖고 싶기 때문이고(아이패드 병이라고 부르죠) 반은 아이패드 특유의 노트북과 휴대폰 사이의 포지션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맥북 에어를 들이고 난 다음에 원래 쓰던 아이패드 프로는 팔려고 했는데 결국 팔지 못한 것도 이 특유의 포지션 때문입니다.
회사 업무용 맥북과 개인용 맥북 에어를 동시에 들고 다니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고 무겁지만, 아이패드 프로와 같이 들고 다니는 것은 할만합니다. BYOD 정책 때문에 개인용 노트북을 업무에 사용할 수는 없지만,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폰과 같은 운영체제를 쓰고 있어서 슬랙 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OTT 같은 서비스도 맥북에서는 다운로드해서 오프라인에서 보는게 불가능하지만, 아이패드에서는 가능합니다. PC가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로 분류되기 때문이죠.
맥북 에어를 메인으로 쓰면서도 2018 아이패드 프로가 나름의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패드 프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은 매직키보드까지 더하자면 맥북 에어 가격(512기가)을 훌쩍 넘어버리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판단 보류
결국 결론은 돌고 돌아 “나에게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한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부터가 아이패드 프로에 적합하지 않은 사용 패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 프로 구매를 고민하고 있으니 위 질문에 합리적인 답변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저는 현재로서는 판단보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맥북 에어를 메인으로 쓰면서 지금의 아이패드 프로를 서서히 퇴역 시킬 생각입니다. 2018 아이패드 프로가 완전히 리타이어 되면 그때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나 아이패드 에어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고, 아예 아이패드를 쓰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일단은 아이패드의 미래가 제 사용 패턴에 적합해질 때까지, 새로운 아이패드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잠정 보류하려고 합니다.(WWDC가 뭔가 새로운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
덧. 이래놓고 또 나오자마자 지르는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ARM 맥북도 안쓴다고 해놓고 거의 출시되자마자 샀던 이력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