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요즘 화제라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를 봤습니다. 전혀 볼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잘 나왔다는 평가가 많아서 한번 봤습니다.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있으니 유행에 편승하기 좋다는 건 나쁘지 않네요.

아이돌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도저히 볼 생각이 안들었지만 두가지 이유로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한국 자본이 아닌데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만든 곳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만들었던 소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는 점이었죠.

작화는 디즈니 스타일과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합쳐놓은 것 같은 스타일입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프레임이 떨어지는게 특징인데, 이 부분 때문에 이 애니메이션도 스파이더맨 같은 코믹스 스타일의 느낌이 납니다. 오히려 그래서 만화(책) 같은 연출이 더 자유롭게 나옵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나왔을 때는 이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지만 지금은 별로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생각보다 잘 나왔습니다. 솔직히 전 약간 유치할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동안 넷플릭스 제작 영화는 그냥 취미로 만드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꽤 볼만했습니다. 몰입도도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작화랑 액션도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KPOP 팬들을 위한 콘서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한 왕도적인 스토리입니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컴플렉스를 극복해야한다는 디즈니 프린세스 같은 이야기입니다. 다만 여기에 KPOP이라는 소재를 끼얹고 배경을 한국으로 하면서 특별해졌습니다. 디즈니의 <라이언킹>이 성경 속 이야기에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면서 특별해졌던 것처럼 역시 새로운 소재에 왕도적인 이야기를 더하는 것만큼 정석적인게 없죠.(스타워즈, 라이언킹 등등)

할리우드에서 만든 한국 배경의 영화들은 어딘가 고증이 엉성한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고증의 디테일이 남다른 것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건 김밥을 담은 플라스틱 그릇. 그 외에도 한국에서 평생을 산 제 눈에도 고증에 거슬리는건 별로 없었습니다. 아, 한가지 뽑아본다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김밥”을 외치고 다닌다는 점 정도?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긴 합니다. 왕도적인 스토리라서 그냥 그렇게 넘어갔지만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넷플릭스 영화가 전체적으로 갖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들이죠. 스토리는 볼거리와 소재, 액션을 위한 보조 수단이라는거요. 이야기의 고비마다 왜? 하는 것들이 불쑥불쑥 나오는데 어쩌면 좀 더 긴 호흡의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깊은 스토리를 기대하고 보면 안되는 영화이긴 하지만요.

한국인으로서는 확실히 국뽕이 차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디즈니가 “심청전”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 만들어낸 현대의 컨텐츠와 문화가 소재가 되어 하나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죠.

(요즘 여러모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백종원씨가 예전에 “한식의 세계화”라는 주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자기들만의 스타일로 한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할 때, 그때가 진짜 한식이 세계화된거다”라고 말이죠. 이 영화를 보고 KPOP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계화된 문화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한류 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한국인으로서는 공정한 평가가 어렵지만, 국뽕의 관점을 제외하고 봐도 나쁘지 않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개봉한 지금, 오히려 이 애니메이션이 폭발적으로 바이럴 되는거 보면 극장용 애니메이션 주도권이 슬슬 디즈니에서 소니로 넘어오는건가 싶기도 하네요.

덧. 영화에 나오는 호랑이와 까치(작호도에서 따온)가 귀엽지만 생각보다 비중이 적어서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