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모양의 컴퓨터, HP 엘리트보드 G1a

예전에 컴퓨터의 본질은 키보드인가 디스플레이인가 하는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요즘이야 디스플레이와 일체화된 컴퓨터인 태블릿 PC나 아이맥 같은 일체형 PC들처럼 디스플레이와 통합된 컴퓨터가 더 많지만 퍼스널 컴퓨터의 여명 시기만 해도 컴퓨터는 키보드와 통합되어있었습니다.

애플 II

초기의 PC들은 위 사진처럼 키보드와 본체가 통합되어있고 모니터를 따로 연결하는게 일반적이었죠. 생각해보면 초기의 컴퓨터는 디스플레이보다는 컴퓨터에 더 가까웠던 셈입니다.

그렇게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한건지, HP에서 이상한 컴퓨터가 하나 나왔습니다. 바로 키보드에 모든 본체가 통합되어있는 엘리트 보드 G1a입니다.

보기엔 그냥 키보드처럼 보이지만 내부에 CPU, GPU, 메모리, 냉각팬, 배터리가 달려있고 윈도우 11이 탑재된 진짜 PC입니다. 이 자체로도 부팅이 가능합니다. 물론 제대로 쓰려면 디스플레이가 따로 있어야 하지만요. 디스플레이 연결과 전력은 USB-C 케이블을 통해 가능합니다.

무선 키보드가 대세가 된 세상에서 키보드를 유선으로 연결한다는게 좀 어색해보이기도 하네요.(옆에 마우스는 무선이라 더더욱) 하지만 선 연결을 하지 않으면 전력을 받지 못하니 선 연결은 필수입니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연결하려면 USB-C 충전과 입력을 동시에 지원하는 디스플레이여야 할 것 같습니다.

키보드 자체에 배터리가 있어서 위 사진처럼 휴대용 디스플레이를 연결해서 노트북처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 노트북처럼 배터리 용량이 넉넉한 것은 아니라 배터리로는 두시간 ~ 세시간 정도 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본체의 무게는 750g이라고 합니다.

디스플레이 없는 노트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들고 다니면서 쓸 일이 있을까 싶긴 합니다. 배터리 사용 시간이 너무 짧아서 배터리는 그냥 갖고 다닐 수 있다는데 더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등 쓸데 없는 물건 같지만 의외로 매니악하게도 이런 키보드 일체형 컴퓨터에 대한 수요가 있긴 합니다. 아예 맥북 에어에서 디스플레이를 떼어낸 Headless 맥북 같은 것들이 있죠. 이게 또 나름의 매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디스플레이가 없는 컴퓨터의 장점은 휴대성과 생산성을 타협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맥북 프로 14인치와 16인치를 생각해보면, 디스플레이 크기가 커질 수록 컴퓨터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생산성을 생각하면 휴대성을 희생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물리적 세계의 한계에 갇혀 있는거죠.

하지만 노트북에서 디스플레이를 제거한다면 이런 제약이 사라집니다. 집에서 작업할 때는 대형 모니터에 연결하고, 이동 중에는 휴대용 디스플레이에 연결하면 됩니다. 여기에 나중에는 비전 프로나 스마트 글래스 같은 가상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면? 휴대용 컴퓨터의 물리적 한계가 사라집니다.

이런 데모를 보면 미래의 컴퓨터에 디스플레이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렇게까지 생각해줘도 여전히 아쉬운 컨셉이긴 합니다. 일단 휴대용 컴퓨터라고 하기에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지 못한 폼팩터라는게 아쉽습니다. HP 엘리트보드 G1a는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마우스도 지고 다녀야 합니다. 위의 헤드리스 맥북 에어를 보면 키보드와 포인팅 장치가 같이 있죠.

지금 폼팩터에서는 따로 본체가 필요 없어서 책상이 깔끔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조차 무선이 아니라 유선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맥미니 같은 작은 본체를 쓰는 것에 비해 과연 깔끔하다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상한 폼팩터의 제품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응원하고 싶어지는 컨셉의 제품입니다. 그것도 HP 같은 기업에서 이런 시도를 하다니.. 이런 재미난 시도가 좀 더 많아져야 시장의 다양성도 생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