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울 푸드는 카레돈가스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엄마 따라 갔던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어린 시절에도 새로운 카테고리의 음식을 통해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카레라이스 아니고 카레 라이스에 돈카츠가 추가된 돈카츠카레도 아닌, 카레가 소스로서 돈가스 위에 얹어져있는 카레돈가스입니다.
수능 날에도 도시락으로 카레돈가스를 싸갔을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나 약간 상처 받은 날에도 치유를 위해 먹는 진짜 소울 푸드라고 할 수 있죠.(물론 대표적인 가속 노화 식단이라 자주는 못 먹습니다만..)
문제는 요즘 카레 돈가스를 제대로 본적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돈가스가 일본식 돈카츠로 고급화되면서 예전 방식의 돈가스는 거의 사라졌고, 카레도 한국식 노란 카레가 아닌 일본식 검은 카레로 바뀌면서 예전의 ‘카레돈가스’는 사라지고 돈카츠 카레가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돈카츠 카레도 카레 라이스에 돈카츠가 사이드로 들어가는 느낌이구요.
20대 시절 고시 공부를 위해 다니던 학원 근처의 일식 체인(미다래였던가)에서 먹은 이후로 제대로된 카레 돈가스를 만난적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다 돈카츠카레거나, 카레돈가스라고 하더라도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늘 같이 비오는 주말에도 굳이 밖에 나가서 점심으로 카레 돈가스를 먹었는데, 제가 찾던 이상적인 카레 돈가스에 거의 근접하긴 했는데, 카레가 너무 아쉬웠습니다. 비쥬얼로 봤을 땐 맞다고 생각했는데..(카레 맛 자체가 너무 약한 느낌)

그러고보면 제 기준의 이상적인 카레돈가스를 찾기 위한 여정도 벌써 10년 째로 꽤 오래되었네요. 이 글은 제가 그동안 이상적인 카레돈가스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던 여정 중 기억에 남았던 곳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전 성심당 “테라스키친”
성심당은 당연히 빵사러 가는 곳이지만 본점 위쪽에 ‘테라스 키친‘이라는 경양식 레스토랑이 하나 있습니다. 빵 구매하는 줄이 길어도 여기는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금방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거지 여기도 요즘은 웨이팅이 생기긴 하더군요.
성심당에 들를 때마다 가는 곳인데, 여기에서 제가 자주 먹는 메뉴는 카레 치킨 가스입니다.

치킨가스는 돈가스보다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죠. 오므라이스 스타일로 밥을 감싼 계란도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마음에드는 것은 그레이비 보트 그릇인데 카레가 부족하지 않게 충분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경양식 카레 치킨 가스지만 어쨌든 돈가스는 아니고, 카레라이스에 가깝다는게 아쉬운 점입니다. 일단 밥의 비중이 크고 치킨 가스는 사이드 같은 느낌이죠. 원래 메뉴 이름도 ‘치킨가스 카레라이스’ 입니다.
돈가스 카레라이스도 있지만 돈가스는 치킨보다 더 아쉬웠어서 개인적으로 카레에 먹으려면 치킨 가스가 더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가격이 요즘 기준으로 정말 착한 편인데 8,000원입니다.
서울 동작구 “양식당”
그 다음은 저희 동네 근처에 있는 “양식당”이라는 곳입니다. 여긴 배달로 자주 먹는 곳인데 맛 자체로 따진다면 제 원픽 중 하나입니다. 여긴 진짜 맛있는 카레돈가스가 있는 곳이거든요.

일단 이곳 돈가스는 엄청난 고기 두께가 매력적이죠. 고기 두께가 두꺼운데 질감은 폭신폭신하고 구름 같은 전형적인 일본식 돈카츠입니다. 두께에서 오는 부담스러운 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두께만큼 양이 많아서 솔직히 혼자 먹기엔 좀 많긴합니다.

또 하나의 킥은 카레인데, 카레가 상당히 진하고 맛있습니다. 양파를 오랫동안 볶은 맛이 납니다. 맛있는 카레와 맛있는 돈가스가 만났으니 카레 돈가스가 맛이 없을 수 없죠.
사실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카레돈가스 여정은 끝나야 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돈가스는 이런게 아니었거든요. 일본식 돈카츠가 아니라 한국 경양식 얇은 돈카츠(그렇다고 분쇄육은 아닌)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가장 맛있는 카레돈가스이긴 하지만 제가 원하는 기준에서는 약간 지나친(?) 느낌이라 95점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 원픽이라 지치고 힘들 때 먹는 메뉴입니다.
제주 중문, “연돈”
완벽한 카레돈가스를 찾는 여정은 당연히 돈가스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정과 같기 때문에 안갈 수 없는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 현재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돈가스 집 중 하나인 “연돈”입니다.
방송의 여파가 있은 뒤 한참 후인 지금도 여전히 줄이 엄청 긴 곳입니다. 저 같은 경우 오전 10시에 대기를 걸어서 오후 4시에 먹었으니까요. -_- 원래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 서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여기라면 완벽한 카레돈가스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여긴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카레 특유의 진한 향이 들어옵니다. 카레를 많이 먹어본 입장에서 한방에 제대로된 카레라는걸 알 수 있는 냄새에요.(누군가는 화장실 냄새라고도 하겠지만)

돈가스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기대를 상회하는 맛이었습니다. 진짜 지금까지 먹었던 돈가스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돈가스 꽤 많이 먹었는데, 거기까지 포함해도 가장 맛있었던 돈가스였습니다.

카레는 생각했던 카레와 약간 다른 카레였지만 양파향이 진한, 정성이 들어간 카레였습니다. 저도 양파 오래 볶아본 적이 있어서 이 정도 맛을 내려면 정말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게 느껴지는 양파 단맛과 감칠맛으로 승부를 보는 카레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연돈도 제 카레돈가스 여정을 멈추진 못했습니다. 카레돈가스는 카레와 돈가스가 맛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둘이 어우러지면서 나는 시너지 맛(튀김 옷에 카레가 베면서 나는)이 중요한데, 연돈의 카레 돈가스는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맛있는 돈가스와 맛있는 카레였습니다.
카레돈가스로만 따지면 오히려 집 근처의 “양식당”보다 못한 느낌. 사실 다행이죠. 여기가 진짜 원픽이었다면 힘들고 지칠 때 제주도로 와야 위로 받았을테니까요.
마무리
결국 아직도 제가 원하는 카레돈가스를 찾지는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꼽은 곳은 세 곳이었지만 거의 웬만하면 어느 동네에 가든 돈가스가 유명하다고 하면 한번씩은 먹어보는 편이라 지난 10년 동안 정말 엄청나게 먹은 것 같습니다.
예전만해도 한국 경양식 돈가스에 한국 가정식 카레가 얹어져있는 카레돈가스는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아예 유행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랄까요. 어디에서 먹어도 그 맛이 안나는 느낌이라 아쉽습니다.
오늘 먹었던 카레돈가스는 동네에 있는 오래된 가게였는데 분명 장르 자체는 거의 근접했는데 맛 자체가 너무 깔끔해서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오래된 가게에서는 제가 원하는 장르의 돈가스들이 아직 있으니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카레돈가스 여정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