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에서 소설 <초속 5센티미터>를 읽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소설로 원작 애니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썼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엄청 오래 전에 봤던 기억이 있는데, 먹먹한 엔딩이 당시엔 꽤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지금은 <너의 이름은>으로 더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본 것도 초속 5센티미터를 통해서였죠. 제 생각에 가장 신카이 마코토 다움이 묻어있는 애니메이션이 초속 5센티미터였던 것 같습니다.
감독이 직접 쓴 소설이다보니 장면장면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애니메이션을 먼저 봤기 때문에 그런걸 수도 있겠지만)
눈 내리는 지하철에 갇혀서 애절함이 가득했던 1부와 서핑하는 소녀 스미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2부는 애니메이션과 유사하게 흘러가는데, 애니에서는 뮤직비디오로 대충(?) 떼웠던 30대의 타카키의 이야기가 소설에는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3부에서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지만, 소설을 읽어보니 이 소설이 배경으로 했던 90년대의 통신의 속도를 묘사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 내용의 핵심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같이 멀어지는 마음의 거리,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너무 느려서 제대로 전할 수 없는 답답함과 애절함이거든요.
생각해보면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PC통신으로만 알고 지내던 소녀를 크리스마스 이브에 처음 만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니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물건을 지니고 만나기로 했더랬습니다.
당시에는 구 서울역에 기차가 서던 때였는데 서울역 광장에서 서서 기다렸습니다. 눈이 많이 내렸던 날이었는데, 결국 소녀는 약속 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눈 내리는 서울역에서 하염없이 계속 기다릴 수 밖에 없었죠.
세시간 정도 기다린 뒤 나중에 집에서 오늘 약속 못 지키게 되었다는 메일을 뒤늦게 보았습니다. 사실 메일은 전날 왔는데 제가 확인을 못했던거였어요.
아마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건 이제 적어도 30대 후반이나 40대 부터이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손 안에 있는 장치의 통신 속도가 그걸 앞지르고, 소통 비용도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들었으니까요. 소설의 1부처럼 기차에 갇혀서 약속 시간에 늦는 답답함이나, 얼굴도 모르는 상대가 올지 안올지도 모르면서 하염없이 기다려야했던 이야기는 요즘 세대에게는 그저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레트로한 이야기나 판타지 정도의 이야기로 들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속 5센티미터>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요즘 10대, 20대는 느낌으로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 경험해본 사람들에게는 3부의 마지막 먹먹함이 더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아쉬웠던 건 내용보다 번역의 퀄리티였는데, 번역이 약간 일본어 직역체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문가의 번역이라기보다 기계 번역과 사람이 번역한 사이 어딘가 같은 느낌? 안그래도 묘사와 독백이 많은 신카이 마코토의 문체에 이런 번역 이슈가 겹쳐지니 같은 문장을 계속 읽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절정은 3부에서 나온 편지 번역인데, 여자친구에게 받은 편지임에도 존댓말로(일본은 편지에 아무리 친해도 존댓말을 사용) 번역했는데다가 정말 그냥 일본어 표현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또 어떤 편지는 반말로 잘 번역하기도 해서 번역 퀄리티가 좀 의아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후로도 본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소설을 몇 권 더 냈는데, 번역 이슈가 계속 있을 것 같아서(…) 신카이 마코토 소설은 아쉽지만 이게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덧.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들은 먹먹하게 끝났지만, 제 경험담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지금도 제 앞에 그 소녀가 앉아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