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애거사 짓이야(Agatha All Along)

이번 장거리 비행에서 봤던 여러가지 중 가장 재밌게 봤던 시리즈입니다. 드라마 <완다비전>의 악역이었던 마녀 애거사 해크니스가 주인공인 시리즈입니다.

이 드라마는 <완다비전>의 스핀오프라서 전작인 <완다비전>과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른 마블 시리즈는 안봐도 <완다비전>은 반드시 봐야 이해가 가능한 드라마죠. 제목인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완다비전에서 애거사 해크니스가 정체를 드러내면서 나왔던 뮤지컬(?) 음악의 제목입니다.

보기 전에는 무슨 애거사 해크니스의 개인 시리즈까지 만들어주나 싶어서 전혀 볼 생각이 안들었는데, 의외로 최근에 본 마블 영화와 드라마 중에 가장 재밌게 본 것 같습니다. 덕분에 비행기 타고 가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올 때 봤던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는 반대로 최악이었던)

애거사 해크니스는 전작 <완다비전>에서 스칼렛 위치의 정신을 흐트러놓았던 마녀입니다. 코믹스에서는 스칼렛 위치의 스승 포지션인데, <완다비전>에서는 악역이긴 하지만 본의든 아니든 완다에게 “스칼렛 위치”라는 개념과 마녀에 대한 지식을 심어주는 역할로 나왔죠. 어떻게 보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원흉이기도.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처음에는 미국 삼류 경찰 드라마처럼 시작합니다. 오프닝부터가 경찰 드라마 같이 나와서 드라마를 잘 못 틀었나 싶을 정도. 근데 이건 <완다비전> 마지막화에서 스칼렛 위치가 건 마법 때문으로, 애거사는 일종의 개인용 포켓 디멘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딴 세상. 경찰 드라마 자체가 아직 애거사가 완다의 마법 안에 갇혀 있다는 증거죠.

전 이 연출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완다비전>에서도 완다가 갇혀 있는 세상을 미국 옛날 시트콤처럼 연출했죠. 1화, 2화 전체를 오프닝과 엔딩까지 완벽하게 시트콤처럼 연출했는데, <전부 애거사 짓이야> 1화도 비슷한 연출입니다. 영화에서는 불가능한, TV 시리즈라서 가능한 연출이겠죠.

본편은 2화부터 애거사가 우연한 계기로 이 마법에서 깨어나면서(정확히는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에서 완다가 사망하면서) 시작합니다. 애거사는 이미 모든 마법의 힘을 잃은 상태로, 미지의 존재가 위협하는 상황 속에, 마녀의 힘을 되찾기 위해 ‘마녀의 집회’을 열어 전설로만 내려오는 ‘마녀의 길’을 떠납니다.

의외로 반전도 꽤 많이 있고 몰입도도 높은 드라마였습니다. 마블 시리즈 중 가장 최저 예산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꼭 높은 제작비와 CG들이 재미와 몰입도를 보장하는건 아니라는 것을 또 한번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CG는 거의 쓰이지 않은 것도 재밌습니다. 특수효과랑 카메라 트릭이 거의 대부분. 극 중 차원 이동을 하는 장면도 세트의 배경을 찢어버리는(…) 연출로 해결했는데 신기하게도 이게 몰입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블 시리즈 답게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는 CG를 아낌없이 쓰긴 하는데, 전 오히려 여기에서 살짝 깨더군요. 지금까지 풀어왔던 이야기대로라면 레이저 빔이나 번개 같은걸로 대결하는 장면 없이도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마지막 대결 장면이 좀 별로이긴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활발한 분위기에 적당히 공포 요소도 들어있는 할로윈에 어울리는 드라마 시리즈입니다. 미국에서 완결도 할로윈에 맞춰서 끝났었죠. 아무래도 전통적인 마녀가 주인공이다보니 애초부터 할로윈을 노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다 보면 <전부 애거사 짓이야>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어쩌면 제목 자체가 초강력 스포일러일지도. <완다비전>에서 애거사가 등장하면서 부른 노래 ”전부 애거사 짓이야“를 생각해보면, 사실 대부분은 완다가 저지른 짓이었죠. 그럼에도 애거사는 ”전부 애거사 짓이야“라고 스스로 노래하면서 등장합니다. 이게 참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한 장면이었네요.

어쨌든 오랜만에 추천할만한 마블 시리즈입니다. 최근 침체기인 마블이나 스타워즈 같은 프랜차이즈는 이런 기대하지 않은 스핀오프 드라마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네요.

덧.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완다(스칼렛 위치)가 부활하는 단초를 마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도 완다는 완전히 죽은건 아니라고 했었는데 그냥 멀티버스의 완다가 나오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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