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바보로 만드는 기술들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여행할 때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 포토스트림으로 동기화하여 아이패드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할 때 큰 사진을 보기 위해 굳이 무거운 노트북을 지고 아이폰을 케이블로 연결해 사진을 뽑는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아이패드와 포토스트림 조합이라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무선으로 아이패드에서 간편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갔던 여행지는 인터넷 환경이 잘 안되어있었다. Wifi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와이브로도 겨우 잡히거나 아예 안잡히는 환경이었다. 포토스트림은 두 장비가 모두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있어야 하는데 아이패드는 Wifi 버전이고, 핫스팟을 연결하기엔 데이터가 아까웠다.

와이브로를 통해 사진을 몇 장 동기화해서 보긴 했지만 너무 느려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냥 아이폰의 작은 액정으로 여행 중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왜 아이폰에서 아이패드로 직접 전달할 방법은 생각을 안하고 무조건 포토스트림 같이 클라우드로 동기화하는 방법만 생각했을까? 이미 iOS7부터 Airdrop으로 두 장치가 컨텐츠를 주고 받을 수 있었는데! 그냥 아이폰에서 Airdrop을 켜서 아이패드로 그 날 찍은 사진을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왜 포토스트림을 통해 자동으로 동기화 되는걸 반나절 동안 기다리고만 있었을까? 애플이 만든 광고 때문에 Airdrop은 어디까지나 친구들끼리 사진을 주고 받는 용도의 기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폰이 출시되기 3년전에도 나는 블루투스로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컴퓨터로 전송했었다. 다만 예전에는 조금 더 느리고, 불편했을 뿐이다. 애플과 구글이 우리의 정보를 자기네 서버에 올려두기 전에도 우리는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하고, 업무를 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 없이는 어떤 일도 못하는 지경이다.

이런 사례를 겪고 나니 니콜라스 카의 주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온라인이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만들고 있다. 불과 몇년전에 했었던 일도 이젠 클라우드나 스마트폰 없이 다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내가 겪은 일은 간단한 사례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한 사이 비슷한 일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종이로 된 책이 LCD에 있는 정보보다 월등히 뛰어나며, 인터넷에 있는 정보들은 도서관에 있는 정보보다 못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식을 담는 그릇은 달라져도 지식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적어도 디지털에 한해서는) 구글과 애플이 설계해놓은 대로 사용하고 있고 그 방법으로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이 모든 기술을 버리고 서랍속의 노키아 5800을 꺼내들고 인터넷이 안되는 안데스 산맥 밑으로 이사갈 생각은 없다. 이 편리한 기술을 누리지 않기엔 이미 늦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이런 기술의 홍수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기술을 쓴다면 어느정도 내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분명히 큰 차이가 있으니까.

덧. 이 글을 쓰고 여행 당시 가장 용량이 컸던 동영상 하나를 Airdrop으로 아이패드에 전송해보았다. 불과 5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걸 동기화하려고 두시간 가까이 에그를 붙들고 있었던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니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