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vs 애플 : 애플의 패배(feat. 자업자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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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시작된 에픽 게임즈와 애플의 앱스토어 소송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다루었던 이야기죠.

2020년부터 거의 5년 동안 이어져온 소송이라 잊어버리셨거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 에픽게임즈가 포트나이트에 에픽게임즈의 자체 결제로 이동하는 링크를 추가함.
  2. 애플의 앱스토어 정책은 앱에서 외부 결제로의 연결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포트나이트를 앱스토어에서 삭제함.
  3. 에픽게임즈는 애플이 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고 캘리포니아 법원에 소송 진행(구글에게도 비슷한 소송을 걸었음)
  4. 1차 판결 : 앱스토어는 독점이 아니라고 평가, 포트나이트의 삭제는 에픽이 먼저 그럴만한 이유를 자초했다.
  5. 다만 애플의 앱스토어 운영 방식은 문제. 결제 수단을 독점하여 개발자가 자체적인 결제수단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법.
  6. 캘리포니아 법원은 5번의 사유로 애플에게 앱스토어에서 외부 결제 사용을 허용하고 앱에서 외부 결제로의 링크를 허용하라고 명령.

여기까지가 2021년에 나왔던 1차 판결의 결과였습니다.

이후 애플이 했던 짓을 생각해보면, 애플은 외부 결제 정책을 오픈하긴 했습니다. 다만 앱스토어 외부에서 결제할 경우 27%의 “핵심 기술 수수료”를 개발사에 부과합니다. 또한 앱 내에서 외부 결제수단으로의 링크로 연결하는 방식과 디자인도 규정하여 외부 결제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해했습니다.

이건 누가봐도 명령을 따르는 척 하면서 엿 먹인거죠. 외부 결제의 사유가 앱 수수료 경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 30%에 준하는 수준의 “핵심 결제 수수료”를 부과하고 외부 링크로의 이동도 어렵게 만들어 법원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에픽은 2024년에 애플이 의도적으로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있다고 민사 소송을 진행했고, 2025년 4월 30일 판결 결과가 나왔습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애플이 법원의 명령을 악의적으로 어기고 있다고 봤고, 당장 애플스토어에서 외부 결제를 조건 없이 승인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꽤 강경한 어조로 말이죠.

이것은 명령이지 협상이 아닙니다. 한쪽 당사자가 법원의 명령을 고의로 무시하면, 다시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법원은 더 이상의 지연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미국 앱스토어에서는 게임이나 앱들이 외부 결제 수단을 통해 수수료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린겁니다. 5월 1일에 애플은 앱스토어 규칙을 업데이트해 더이상 미국 애플스토어에서는 외부 결제 연결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수정했습니다.

이미 이 변화에 대응해 스포티파이는 외부 결제를 사용하는 업데이트를 제출했고, 소송의 당사자인 에픽도 미국 앱스토어에 결제수단 변경이 포함된 포트나이트를 다음주 중 재등록할거라고 예고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는 미국 앱스토어에서만 진행됩니다. 물론 애플은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지만 동의하지 않으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애플의 이러한 행보는 법원에 제출된 내부 문건에 의하면 애플 서비스 부문 고문인 필 쉴러는 법원 명령을 이행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팀 쿡은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재무부서 부사장 알렉스 로먼을 통해 필 쉴러를 설득하도록 했고, 법원 명령을 교활하게 무시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법원은 알렉스 로먼이 법원 명령을 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위증했다고 봤고 캘리포니아 주 검찰은 알렉스 로먼을 입건했습니다. 앱스토어 정책으로 인해 애플 임원이 형사 재판까지 받게된 셈이죠.

개인적인 생각

전 위에 링크한 글에서도 보이듯 처음엔 에픽의 주장을 비판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키아 시절의 스마트폰에서의 앱 구매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애플스토어의 통합된 방식의 앱 구매는 강압적이지만 분명 사용자 입장에서 편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 애플이 보인 행보는 매우 실망입니다. 앱스토어의 정책 변경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안적이라고 했을 때도 어느정도 믿었고, 결제 수단 변경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핵심 기술 수수료”부터는 애플빠인 저로서도 선을 넘었다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앱스토어의 정책은 사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애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뮬 게임이나 클라우드 게임 등 선심 쓰듯 몇가지 정책을 풀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앱들을 허용하면 사용자들에게 해가 될거라고 했던 애플의 이전 주장을 뒤집을 뿐입니다.

팀 쿡 시절의 애플을 나름대로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스티브 잡스 시절과 비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애플의 방향이 과연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데 있는지, 사용자 경험 향상이라는 일관된 가치가 유지되고는 있는건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애플스토어의 규칙이 필 쉴러 때문에 유지되고 있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팀 쿡이 법원 명령을 무시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뭐가 됐든 분명한건, 이런식의 법정 다툼과 애플의 교활한 짓은 사용자의 경험을 향상하는데는 하등 도움이 안된다는 겁니다. 최근 애플이 AI에서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혁신을 방해하고 저해할 뿐이죠. 제가 지금 아이패드 프로에서 하고 있는 여러 삽질들도 결국 애플이 걸어놓은 제한 때문이라는걸 볼 때, 어쩌면 이제 슬슬 애플 플랫폼을 떠날 때가 된건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