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게임즈의 찬란한 도전

어두운 방, 청중 앞에 커다란 스크린이 있습니다. 청중은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고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한 남자가 청중들에게 무어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들을 세뇌하는듯 보이죠. 청중 중에는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한 여인이 청중 사이에서 뛰어나옵니다. 뒤에는 총을 든 병사들이 여인을 뒤쫓고 있죠. 여인은 거대한 스크린에 다가가 들고 있던 망치를 거대한 스크린에 던져버립니다. 거대한 스크린은 폭발하며 강한 빛을 내뿜고 청중은 그 광경을 놀란듯이 바라봅니다. 망치를 던진 여인은 유유히 그 사이를 빠져나갑니다.

어디에서 많이 보신 장면 같죠? 애플이 1984년에 방영했던 매킨토시 광고냐구요? 아닙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감독했던 전설적인 광고 아니냐구요? 아닙니다. 제가 묘사한 영상은 2020년에 에픽 게임즈에서 내놓은 새로운 포트 나이트(Fortnite) 광고입니다.

이 광고는 애플이 1984년에 제작했던 전설적인 맥킨토시 광고의 패러디입니다. 자세히 보면 거대 스크린에서 말하고 있는 남자는 한 입 베어물은 사과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에 망치를 던지는 여인은 포트 나이트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하나죠. 맥킨토시 광고에서 거대 기업 IBM을 상대로 애플이 망치를 날렸듯, 에픽 게임즈는 빅브라더 애플을 향해 망치를 날리고 있습니다.

이 광고가 원본입니다.

에픽 게임즈는 갑자기 이런 광고를 왜 했을까요? 이런 일련의 과정은 오늘 하루에 일어난 일인데요, 워낙 재미있어서 한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읽으시기 전에 제 블로그에서 애플의 플랫폼 횡포(?)를 다루었던 글을 보시면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전쟁의 서막

이미지 출처 : Unsplash.com

전쟁은 오늘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에픽 게임즈는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자사의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새로운 버전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하지만 업데이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게임은 곧 바로 삭제되었습니다. 삭제된 이유는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애플과 구글은 스토어에서 발생하는 수익(앱 가격, 앱 내 결제 모두 포함)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갑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앱 장터의 운영 비용과 앱을 검사하고 리뷰하는 인력의 인건비 등이 명목이죠. 사실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가 그냥 공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수료가 존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근데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의 새로운 업데이트에서 앱내 결제를 없애버리고 자체 결제 수단을 탑재하는 업데이트를 진행합니다. 자체 결제 수단을 탑재하면 애플과 구글에 내는 30% 수수료를 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애플과 구글은 이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업데이트가 나온 직후 포트나이트는 앱스토어와 플레이스토어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이미 사용자의 디바이스에 설치된 게임은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새로 설치하는 것은 현재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자 에픽 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을 고소합니다. 애플과 구글이 독점력을 이용해 불합리하게 인앱 결제를 게임과 앱에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죠. 최근 애플, 구글, 아마존 등 거대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EU와 미국에서 독점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히 묘한 타이밍입니다.

에픽 게임즈는 위에서 말한 광고를 공개하며 거대 빅브라더인 애플에게 지지 않을 것임을 플레이어들에게 공지했습니다. iOS 디바이스 사용자들은 포트나이트의 새로운 시즌을 플레이하지 못하지만 엑스박스나 PC 등 다른 플랫폼에서는 플레이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이는 포트나이트 플레이어들을 통해 애플을 압박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오늘 하루에 벌어졌습니다. 마치 준비된 각본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에픽 게임즈는 골리앗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싸우는 작은 다윗 같은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에픽게임즈의 (유치)찬란한 도전

그럼 과연 에픽 게임즈는 정말 빅브라더 애플에 도전하는 용감한 작은 다윗일까요?

일단 에픽 게임즈는 애플보단 작아도 다윗만하진 않습니다. 에픽 게임즈는 언리얼 엔진으로 유명한 회사죠. 많은 게임들이 에픽 게임즈에서 만든 언리얼 엔진을 탑재하여 개발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포트 나이트라는 배틀로얄 게임을 만들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에픽게임즈는 PC에서는 에픽게임 스토어라는 자체 플랫폼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전 글에서 앱스토어의 30% 수수료에 문제를 제기하는 개발사는 대부분 자체적으로 앱과 게임을 전세계에 배포할 수 있는 개발사들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에픽게임즈도 그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한마디로 내가 직접하면 되는데 왜 애플과 구글에게 돈을 줘야하느냐하는 것이죠.

이번 사태는 바로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한 에픽게임즈의 잘 짜여진 쇼에 가깝습니다. 에픽게임즈는 업데이트하기 전에 이미 해당 업데이트를 하면 게임이 삭제될 것이라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애플에게 해당 업데이트가 삭제되지 않기 위한 가이드도 받고 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즉, 삭제될걸 알고도 일부러 업데이트를 감행한 것입니다. 업데이트를 감행함으로써 공은 애플과 구글에게 돌아간 것이죠. 애플이 게임을 삭제해버리는 과정은 마치 컨텐츠 회사에 대한 거대 기업의 횡포로 보이니까요.

앱이 삭제되자마자 바로 소송을 시작하고, 애플의 광고를 패러디한 포트나이트 광고를 올렸다는 것은 적어도 에픽게임즈가 이런 과정을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다가 Hey 메일 앱 사건, 마이크로소프트의 xCloud 사건 등 독점 논란으로 인해 애플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타이밍에 맞춰 준비해놨던 시나리오를 실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쇼로 인해 상황은 에픽 게임즈에 좀 더 유리해보입니다. 이미 애플은 계속되는 앱스토어 독점 논란으로 인해 코너에 몰리고 있습니다. 아마 에픽 게임즈의 이번 사례는 애플의 앱스토어 독점 논란에서 또 하나의 사례로써 애플을 압박할 것입니다.

에픽 게임즈는 현재 모바일과 PC에 걸쳐 전방위적인 플랫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픽 게임즈는 플랫폼 시장으로 따지면 진출이 한창 늦은 후발 주자입니다. PC에서는 스팀과 경쟁해야하고 모바일에서는 구글과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에픽 게임즈는 포트나이트를 통해 PC게임에서 스팀에게 했던 것처럼 애플과 구글에 플랫폼 기업으로서 도전장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다만 그게 정당한 경쟁 수단이 아니라 ‘쇼’와 ‘소송’으로 말이죠. 에픽 게임즈는 스스로를 다윗으로 포지셔닝하고 싶었겠지만 제 눈에는 거인을 때리려하는 또 하나의 거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포트나이트가 실행되는 게임 콘솔 플랫폼(Xbox, PS, Switch)도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와 비슷한 수준의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에픽 게임즈는 이런 게임 콘솔 플랫폼에서는 여전히 콘솔 자체 결제를 태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콘솔 플랫폼도 외부 결제를 허용하지 않고 있음) 이런 콘솔 플랫폼들에게는 독점이라고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iOS 사용자들에게 콘솔에서 계속 플레이할 수 있다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아이폰과 게임 콘솔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마무리

저도 애플이 비합리적으로 앱스토어에서 독점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앱스토어가 아니면 앱을 설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애플의 독점력이 상당히 인정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인앱결제 이슈에 대해서는 약간 생각이 다릅니다.

앱스토어는 앱을 전세계에 배포할만한 역량이 없는 개발사들에게는 좋은 기회의 장이었습니다. 앱을 홍보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앱을 내려받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기존에는 퍼블리셔들이 하던 일을 앱스토어가 해주는 격이니 30%의 수수료가 오히려 저렴하다는 개발사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자체적으로 앱을 마케팅하고 배포할만한 역량이 있는 큰 회사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앱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은 개발사들이 해당 개발사들의 앱을 배포하는 비용을 대신 부담하게 되는 셈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무임승차’ 문제죠.

게다가 소비자들은 각 앱마다 서로 다른 결제수단으로 결제하게 될 수 있습니다. 벌써 넷플릭스에 결제할 때, WAAVE에 결제할 때 사용자들은 각 회사들의 홈페이지에 가서 구독권을 결제해야합니다. 앱을 살 때마다 이 과정을 되풀이한다면 어떨까요? 우린 심비안과 윈도 모바일 시절의 불편함을 다시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PC 게임은 스팀(밸브)과 에픽게임 스토어(에픽게임즈), 오리진(EA), Uplay(Ubisoft)로 나누어진지 오래입니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도 윈도 앱스토어와 게임패스로 가세하기 시작했죠. 전부 다 스팀에 수수료를 내기 싫은 경쟁자들이 난립해서 만든 플랫폼입니다. PC 게이머는 좋아하는 게임을 실행하려면 적어도 서너개의 플랫폼을 왔다갔다 해야합니다. 모바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죠. 결국 사용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흘러가진 못할겁니다.

이번 일련의 사건은 결국 애플이 이기긴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외부 결제를 허용하진 않더라도 수수료를 인하하는 방향으로 일단락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픽게임즈가 벌이는 쇼가 너무 얄미워서 오히려 애플을 응원하고 싶을 지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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