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제품의 끝판왕, 애플 TV 4k 3세대 사용기

오늘은 애플 TV 4k 3세대에 대한 한참 늦은 사용기입니다.

집이 거의 애플 스토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어쩌다보니 많은 애플 기기를 갖고 있지만 가장 구매하지 않을 것 같은 애플 제품 중 하나가 바로 애플 TV 였습니다. 집에 이미 스마트 TV가 있는데다 애플 TV가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은 맥북을 연결해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발단은 최근 집에서 쓰는 스마트 전구들의 상태였습니다. 저는 스마트홈 제어를 위해 아이패드 미니4를 홈 허브로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iOS16에 이르러 아이패드를 홈 허브 제어 기기에서 제외시킴에 따라 더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 환경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기존 기능 전부 사용 가능하긴 했지만 조금씩 느려지고, 제어가 가끔 안되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홈 킷을 사용하는 가전들이 일으키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플 TV 4k 3세대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홈 허브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기는 이제 애플 TV와 홈팟 뿐인데 홈팟은 국내에 판매하지 않으니 결국 애플에 상술에 굴복하여(…) 애플 TV를 구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용기

사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에게 애플 TV는 가장 마지막에 구매할만한 애플 제품이었지만 실제로 약 한달 정도 써본 결과 이걸 왜 이제야 샀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른 사용기를 살펴보면 애플 기기가 많은 사람일 수록 장점이 많은 기기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애플 TV를 써보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봤습니다.

장점 1. 빠른 프로세서

애플 TV 4k 3세대는 아이폰 14에 들어간 A15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신 아이폰 프로세서와 동일한 프로세서를 갖고 있다보니 거의 모든 작업에서 압도적인 속도를 보여줍니다. 사실 TV 셋탑 박스에서는 이 정도 프로세서가 과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스마트 TV나 셋탑 박스는 주로 동영상을 재생하는 목적이다보니 프로세서 성능이 좋지 않은게 일반적이거든요.

저희 집 스마트 TV(LG)만 해도 WebOS 기반인데 성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겨우겨우 유투브가 재생되고, 겨우겨우 OTT가 재생되는 수준이랄까요. 물론 TV라는 자체의 목적에는 충실한 정도의 성능이지만, 스마트 TV 세상이 오면서 이미 TV도 컴퓨터와 같은 반열이다보니 무조건 빠른 성능이 이득입니다.

애플 TV의 빠른 성능은 그냥 앱을 실행할 때도 느껴집니다. 유투브 동영상의 실행 속도 자체가 두배 정도는 빨라진 느낌입니다. 스마트 TV에서는 조금 한바퀴 돌고 재생된다면 애플 TV는 누르는 것과 동시에 재생됩니다. 앱 자체의 안정성도 높은 느낌입니다.

속도가 빨라서 생기는 가장 의외의 장점은 OTT의 화질 좋아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OTT는 화질이 나빠졌다가 좋아지는 방식으로 재생하는데 애플 TV는 LG 스마트 TV에 비해 화질이 좋아지는 속도가 월등히 빨랐습니다.

LG 스마트 TV는 약 1분정도는 일반 화질로 재생되다가 고화질로 바뀌는데 애플 TV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화질로 바로 재생됩니다. 만약 디즈니+에서 5분 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하면 스마트 TV는 25% 정도는 저화질로 보게되는 셈이지만, 애플 TV는 그런 시간이 없다는게 의외의 장점이었습니다.

장점 2. 안정적인 Airplay

애플이 Airplay 의 스펙을 개방함에 따라 많은 스마트 TV가 자체적으로 Airplay 미러링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TV나 제조사마다 조금씩 구현 수준이 다릅니다. 저희집 스마트 TV도 Airplay 기능이 있긴 하지만, TV 자체의 성능 탓인지 매우 불안정하게 동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프레임이 떨어진다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연결이 끊기는 등의 증상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애플 TV에서는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써본 Airplay가 가능한 기기 중에 가장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Airplay를 지원하는 맥이랑 비교해봐도 애플 TV쪽이 더 안정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맥에서 실행하는 게임을 Airplay를 통해 TV로 스트리밍을 해도 입력 지연 같은 부분을 느기기 어려운 정도로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장점 3. Siri Remote

애플 TV를 사도 원래 리모컨은 거의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아이폰으로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고, 심지어 아이폰 쪽이 기능이 더 많거든요. 근데 의외로 Siri Remote의 마감과 사용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반 리모컨이랑 비교해보면 단출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지만, 일반 리모컨의 기능을 모두 커버하고, 그 이상을 커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단에 있는 방향키 부분은 사실 터치패드처럼 동작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빨리 감기나 뒤로 감기, 심지어 게임 제어 등 정밀한 조작이 가능합니다.

처음에는 가운데 동그란 부분만 터치패드라고 생각했는데 테두리의 방향키 부분도 터치를 인식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부분을 동그랗게 돌리면 역시 빨리 감기나 뒤로 감기 등의 제어가 가능합니다. 예전 아이팟의 클릭휠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데 단단한 알루미늄 외장으로 되어있는 깔끔한 디자인이 미래의 리모컨 같은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충전 방식은 라이트닝이 아니라 USB-C라는 점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버튼이 적어서 어른들도 사용하기 쉬울거라고 생각했지만 터치패드의 조작이 생각보다 쉽지 않고 여러가지 기능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적응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터치 조작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점. 게임

애플 TV는 일단 셋탑박스임에도 불구하고 아이폰 14와 동일한 프로세서를 쓴 이유는 역시 ‘게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애플TV는 다양한 게임 컨트롤러를 지원하고 있고 일부 아이폰 게임을 실행할 수 있으며, 애플 아케이드 게임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 TV에서 게임은 여전히 구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시리 리모트에서 모션 인식 센서가 빠지면서 일부 게임들의 조작 체계가 꼬였다는 점입니다. 애플 TV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일부 게임들(Just Dance)은 시리 리모트로는 더이상 플레이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게임이 리모트로 조작 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어떤 게임은 게임 컨트롤러가 있어야만 제대로 실행됩니다. 문제는 사용자가 이걸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거의 대부분의 게임이 컨트롤러를 요구한다는 것이죠. 하나의 일관된 기준이 없습니다.

물론 애플 TV에서 스팀링크나 문라이트를 실행하면 데스크탑의 게임을 스트리밍해서 쓸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게임 데스크탑은 방에 있기 때문에 거실에서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컨트롤러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데, 애플 TV는 애플 운영체제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데드존 문제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컨트롤러의 조작 범위 중 먹히지 않는 부분이 넓다는 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아, 물론 애플 아케이드 게임은 애플 TV에서도 즐길만합니다. 하지만 애플 아케이드도 최근에는 모바일 중심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어서 애플 TV로 플레이하기 어려운 게임들이 많습니다. Cut the Rope를 애플 TV에서 플레이 해봤는데, 플레이 난이도가 급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애초에 터치를 우선으로 고려했는데 억지로 TV로 이식한 것 같은 게임들도 많습니다.

이런저런 이슈로 본격적으로 게임 콘솔처럼 쓰려면 좀 부족하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도 많이 보입니다. 애플이 애플TV에서 게임을 확대하는데 크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당분간 애플 TV는 이런 상태일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근데 그러면 이렇게 빠른 프로세서는 뭐하러 넣은걸까요?

결론

애플 TV 4k는 홈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되었어야할 제품이고 일부 영역에서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TV에서 구현할 수 있는 온갖 신기술이 들어가 있어서 영상 같은 컨텐츠는 그야말로 즐길 맛이 납니다. 그리고 에어플레이 미러링이나 홈 허브 기능 같이 애플 제품과 관련 생태계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기능도 많이 지원하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애플이 만드는 제품 중 가장 사치품에 해당하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일단 대부분의 경우에는 필요가 없거든요. 그냥 TV를 보는 목적으로는 국내 케이블 TV 회사에서 주는 셋탑박스가 훨씬 쓰기 편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SKT에서 Btv를 애플 TV에 서비스하고 있긴 하지만, 애플TV에서 Btv로 TV를 보는건 애플 생태계에 익숙하지 않으면 정말 어렵습니다.(Btv 신청시 애플TV를 셋탑으로 신청하면 ‘TV 보는 법’이 스티커로 붙어서 온다고 합니다.)

OTT를 TV로 많이 본다면 고려해볼만합니다. 온갖 신기술을 지원하는 덕분에 큰 최신식 TV와 돌비 비전,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환경, 그리고 최상급 요금제를 쓰고 있다면 정말 눈 돌아가는 영상을 볼 수 있거든요. 다만 애플 TV 구매 이전에 이런 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게 문제겠죠.

애플TV 4k의 프로세서 선택은 분명 게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게임은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게임 목적으로 이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스위치 같은 게임 콘솔을 사시는게 100배는 나은 선택입니다. 일단 게임 자체가 없고, 애플 아케이드 게임들도 애플TV에서 실행되는 게임이 적기 때문입니다.

즉 이 제품은 결국 애플 제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애플TV가 지원하는 에어플레이를 통한 미러링, 스피커 연결, 홈 허브 등은 기존에 애플 중심으로 생태계를 꾸민 경우에만 큰 장점이 됩니다. 연동성이 뛰어난 애플 기기들의 연결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애플TV에 ‘애플 제품의 끝판왕’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플 제품 중 애플TV부터 구매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