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시계의 정점은 가죽 시계줄이지만 좀 특이하게도 전 가죽 시계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었어요. 친척 어른이 무려 이탈리아에서 사온 아르마니 가죽 시계를 받아들고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친척 어른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기억도 있죠.
가죽 손목 시계는 클래식한 매력이 있지만 제 취향에는 너무 무겁고 답답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관리를 잘 해주지 않으면 내구성이 크게 나빠진다는 점도 한 몫합니다. 여름에는 특유의 냄새(?)가 나고 방수가 안된다는 문제도 있죠.
애플워치에도 여러 밴드를 써왔지만 가죽 밴드는 한번도 구매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애플워치 가죽 밴드의 끝판왕(?)인 에르메스와는 별 다른 인연이 없을 줄 알았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번에 애플 이벤트 직후 추가된 애플워치 밴드 하나가 제 마음에 꽂혔습니다. 봄을 맞아 새로 추가된 에르메스의 스포티 라인업인 점핑 싱글 투어 시리즈였습니다. 특히 느와르 / 블루 사피흐 색상이 너무 강하게 다가 왔죠.
가죽으로 유명한 에르메스지만 이 밴드는 특이하게 나일론 재질입니다. 재질은 나일론인데 가격은 가죽 밴드보다 3만원 정도 밖에 싸지 않은 449,000원(…) 가성비와는 담을 쌓은 물건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제 안 어딘가의 비합리성이 이 시계를 계속 찾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밴드를 선물로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한국에 출시된 첫날에 말이죠. 누군가 말하길 가장 좋은 선물은 갖고 싶지만 제가 사긴 좀 그런 것이라고 했던가요. 가성비와는 담을 쌓은 물건이지만 갖고 싶었던 밴드를 누구보다도 일찍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개봉기
에르메스 브랜드의 애플워치와 밴드는 모두 이 주황색 상자에 담아서 옵니다. 브랜드의 특징이 잘 살아나는 박스죠.
열어보면 이렇게 가죽 천의 포장이 있습니다. 이 가죽 천 안에 시계 밴드와 보증서 등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도 45만원 가까이 하는 밴드인만큼 티를 팍팍 내줘야죠.
안쪽엔 보증서도 들어있습니다. 몰랐는데 애플워치 밴드도 에르메스 매장에서 2년 보증과 서비스가 가능하다는군요.
밴드는 이렇게 들어있습니다. 유난한 패키지에 비하면 단촐한 구성이네요.
바로 결합해봤습니다.
조금 확대해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애플워치의 나일론 밴드를 좋아합니다. 무게가 가볍고 소재도 산뜻한 편이라서요. 하지만 스포츠 루프도 그렇고 이전에 우븐 나일론 밴드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지만 이 밴드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기왕이면 티가 좀 나면 좋겠는데.. 아마 이 밴드를 보고 에르메스 브랜드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질적인 디자인입니다. 다만 시계를 들었을 때 보이는 앞면에 “H”가 약간의 티를 내주고 있습니다.
착용감
그동안 차고 있던 밀레니즈 루프에서 갈아타니 일단 매우 가볍습니다. 점핑 싱글 투어라는 이름대로 막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블루 사피흐(사파이어) 컬러는 밝은 곳에서 보면 생각보다 쨍한 색감입니다.
시계를 들었을 때 보이는 앞면에 H가 보이도록 포인트를 주고 있지만 역시 아무도 못알아 볼 것 같습니다.
에르메스라는 브랜드는 시계 체결하는 부분에 작게 새겨져 있습니다.
애플 홈페이지에 보면 이 디자인은 말 안장을 고정하는 뱃대끈에 달린 버클에서 왔다고 합니다. 시계 면보다 계속 이 뒷면을 더 보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눈치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 애플워치는 애플워치 알루미늄 스페이스 그레이 모델입니다. 다행히도 스페이스 그레이 색상은 알루미늄이어도 검은색 계열의 밴드와 이질감이 크지 않습니다.
여러 워치 페이스와도 매치해봤습니다. 근데 에르메스 버전이 아니라 그런지 어울리는 페이스를 찾기가 어렵네요. 다음은 정말 에르메스 버전으로 가야하려나요(…)
간략한 사용기
첫인상에서 40mm 밴드는 좀 얇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0mm 에르메스 가죽 디자인과 동일한 디자인이지만.. 나일론이라서 그런지 더 가벼워보여 그랬을까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반적인 38mm ~ 40mm 짜리 시계 밴드 정도의 두께입니다. 하지만 두꺼운 시계 줄을 선호하신다면, 40mm 버전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에르메스라서 탐이 났던게 아니라 알고보니 에르메스였던 경우라 가격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죽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일론 재질의 밴드에 이 정도 가격이라는건 쉽게 납득되진 않습니다.(하지만 에르메스 시계 들은 러버밴드도 천만원이 넘어갑니다..) 아마 제가 직접 샀다면 탐만 냈을 뿐 실제로 구매하진 않았겠죠.
이 밴드는 봄 시리즈로 나왔지만 여름에 상당히 잘 어울리는 밴드입니다. 방수 재질이라 운동할 때나 심지어 수영할 때 착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나름의 고급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정장에도 잘 어울려 전천 후로 매치할만한 밴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질이 재질인만큼 내구성(구멍이 늘어난다던지..)은 좀 걱정이 되는데 이건 좀 더 써봐야 알 것 같습니다.
비싼 밴드에 싸구려(…) 알루미늄 애플워치를 조합하는 이상한 취미 떄문에 이 밴드도 에르메스 버전이 아닌 알루미늄 버전에 조합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애플워치 본체 자체는 세대가 오래되면 교체해줘야 하지만 시계 줄은 교체해가면서 더 오래 쓸 수 있기 때문에 계속 본체보다 시계줄에 투자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쓰고 있던 밀레니즈 루프도 애플워치 시리즈 1 때부터 써오던 거 거든요.
하지만 에르메스 밴드를 보니 다음은 애플워치 에르메스 누아르 버전으로 넘어가볼까 싶은 생각이 조금씩 드네요. 희한하게도 일반 모델에서는 워치 페이스를 어울리는걸 찾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점핑 싱글 투어는 워낙 가벼운 느낌이라 알루미늄 모델에서도 나쁘지 않아 다행입니다.
처음엔 얇다는 느낌 때문에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반품할까 했지만(가격도 워낙 비싼 물건이라..) 계속보다보니 적응이 되었고 지금은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밀레니즈 루프와 함께 제 투톱 밴드로서 자리 잡을만한 밴드인 것 같습니다. 내구성은 좀 걱정이지만 오래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죽보단 내구성은 더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