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르 : 스타워즈 스토리 시즌 2

<안도르 스타워즈 스토리 시즌 2>를 보았습니다. 이전 시즌은 그냥 <안도르>였는데 이번 시즌은 <스타워즈 스토리 : 로그원>처럼 스타워즈의 스핀오프임을 나타내는 “스타워즈 스토리”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로그원과의 연결을 강조하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네요.

안도르 드라마는 반군 연합이 창설되기 시작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즌 1은 카시안 안도르라는 인물이 어떻게 반군에 합류하게 되었는지를 다뤘다면 시즌 2에서는 반군 연합이 체계를 잡아가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즌 1은 카시안 안도르가 반군에 들어가게 되는 시기를 천천히 다뤘는데, 시즌 2는 전개가 쏜살 같이 흘러갑니다. 안도르는 시즌1에서 반군 스파이들의 우두머리인 “루선 레일”의 휘하에서 여러가지 임무를 해왔다고 하지만 그 임무가 무엇이었는지는 그냥 말로만 설명하고 넘어갑니다. 장면마다 1년이 후딱후딱 지나갑니다.

시즌 1 시점에서 <스타워즈 스토리 : 로그원>까지 중요한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보니 사소한 일을 비출 여유가 없어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원래는 시즌 5까지 계획했었는데 감독 스스로의 역량이 그걸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시즌 2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최근 오리지널 시리즈의 비중을 줄이고 있는 디즈니의 압력이 있었지 않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듭니다.

뭐 어쨌든 드라마 자체는 잘 만든 작품입니다. 좀 숨가쁜 전개라는 것만 빼면 꽤 괜찮았습니다. 시즌 1보다 나았던 것 같아요. 스타워즈 세계관 내에서 제국의 통치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 살아가는지, 제국이 식민지를 장악하기 위해 어떻게 프로파간다를 펼치는지 꽤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오락영화였던 스타워즈 세계관 내의 이야기지만 엄청 밀도 있는 정치극이자 전쟁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의 중요한 이야기는 스타워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고먼 학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는 ‘제국의 잔인한 학살에 학을 뗀 다른 세력들이 뭉쳐서 반군 연합이 되었다’라고만 언급되고 넘어가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다룹니다.

‘고먼’이라는 행성은 직물과 패션으로 돈을 벌어 부유하고 정치력도 있는 행성입니다. 제국은 그 행성에서 모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대한 은밀하게 공작을 벌입니다. 고먼인들에 대해 흑색 선전을 벌이고(고먼인은 콧대가 높다, 제국에 반감을 갖고 있다 등), 고먼의 저항군이 세력을 키우고 작은 승리에 도취되도록 일부러 져주고 무기가 유출되도록 방임합니다.

고먼의 저항군의 세력이 커지고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하자, 계속 여론을 통해 “고먼이 얼마나 위험한지, 고먼인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조망하고 “계엄(Martial Law)”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합니다. 그리고 고먼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자,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고 무장한 시위대와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며 고먼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합니다.

이 과정이 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하면서 고먼은 “부유하고 정치적 지위가 있는 행성”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군사 작전 지역이 됩니다. 제국 내의 평범한 사람들은 “고먼은 그래도 된다”고 여길 뿐이죠.

이런 제국의 치밀한 작전에 고먼의 민중은 당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무기를 들고 싸우거나 광장에 나가 노래를 부르며 저항합니다.

기존 스타워즈 영화와 달리 제국의 장교들은 유능하고, 제국의 힘은 막강합니다. 제다이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싸울 생각도 못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결국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은 반군 연합에 가담해 싸우게 되죠.

식민지였던 나라이자, 최근에도 계엄 사태를 겪었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 과정은 보기가 힘들 정도로 치밀하고 현실적으로 전개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와 정부가 시행했던 방식이니까요. 스타워즈 세계관의 이야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의 많은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다만 현실의 윤석열과 일당은 제국의 장교들과 달리 유능하지 못했군요)

고먼은 아마도 프랑스가 모델인 것 같은데, ‘패션’이 발달한 행성이고, “고먼인들은 콧대가 높다”고 속설이 퍼져있으며 고먼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프랑스어처럼 들립니다.(실제로 프랑스 지방 방언을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함) 고먼 행성의 건물도 파리에 있는 건물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먼의 저항군도 레지스탕스 같은 느낌이 나게 연출되었습니다.

스타워즈 속 고먼은 파리처럼 보인다

전 개인적으로 고먼을 프랑스처럼 꾸민게 참 교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국가처럼 꾸몄다면 식민지-제국주의가 연상될 수 밖에 없었을텐데, 고먼을 나치 독일 지배하의 프랑스처럼 만들면서 많은 서구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식민지 –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여러 문제를 효과적으로 피해갔습니다. 하긴 제국의 원래 모델이 나치 독일이라는걸 생각해보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

많은 미국인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반 트럼프 시위를 연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감독과 디즈니는 선을 그었지만 지배자에게 저항하는 민중이라는 구도는 어느 나라든 비슷할 수 밖에 없을거니까요. 아마 한국인들은 계엄 당시가 생각날 수 밖에 없겠죠.

개인적으로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이었고(원래 스타워즈 세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 군인 이야기 좋아함) 로튼 토마토 98%에 달할 정도로 최근 저조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는 추천할만한 작품입니다. 스타워즈를 잘 몰라도 정치극이나 스파이물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쯤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덧. 이번 드라마 마지막은 <스타워즈 스토리 : 로그원>의 오프닝과 바로 연결됩니다. <스타워즈 스토리 : 로그원>의 마지막 장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과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스타워즈 영화와의 물샐틈없는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입니다.

덧2. 우리나라 독립군의 독립 선언문 같은 반란 연합의 선언문도 영화에서 나오는데, 정치적, 물리적으로 탄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꽤 울림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투쟁이 불가능해 보일때가 있을 겁니다. 저도 잘 알죠. 외롭고, 불확실하고, 적의 규모에 압도되는 그 느낌을요. 이걸 명심하세요. 자유는 순수한 개념입니다. 자유는 자발적으로 발생합니다. 민중 봉기가 은하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군대들이, 부대들이 싸우고 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릅니다. 반란의 전선은 어디에나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요. 아무리 작은 봉기라도 우리 전선을 전진시키죠. 이걸 명심하세요. 제국이 통제에 그토록 간절한 이유는 통제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폭정에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폭정은 부서지고, 새어나가며, 권위는 불안정한 것입니다. 억압은 공포의 다른 얼굴입니다. 이걸 명심하고 의심하지 마세요. 그 날이 오면 끝없는 교전과 전투, 저항의 순간들이 제국이라는 둑 위로 흘러넘쳐 제국을 비틀거리게 할 겁니다. 작은 시도 하나가 둑을 무너트립니다. 명심하세요. 시도하세요.

덧3. 분명 우주 전쟁의 SF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배경이 2차 세계대전 즈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제국군 장교의 복색은 물론, 고먼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옷도 약간 미래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19세기 ~ 20세기 초의 복색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