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프로 M4 11인치 사용기 – 내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었다.

거의 1년 반 정도를 고민하고 구매한 아이패드 프로 M4 두 달 사용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민이 무색하게도 정말 잘 쓰고 있습니다. 고민의 포인트는 맥북 에어가 있는데도 추가로 컴퓨터 같은 장비를 들이는데에 대한 거부감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맥북보다 아이패드 프로를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맥북을 안쓰고 있는 이유는 아이패드 프로로 어디까지 가능할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언제 쯤 맥북을 찾게 될까 궁금했거든요.

아이패드 프로를 쓴지 두 달 째인 지금, 아직도 맥북은 잠자기 모드에 들어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잠자기 모드에서 배터리 닳는게 아까워서 아에 전원을 껐습니다. 맥북 에어를 산지 2년만에 처음으로 꺼봤네요. 그만큼 생각보다 많은 작업을 아이패드 프로로 하고 있습니다.

애매한 포지션? 오히려 좋아

아이패드 프로는 모바일 디바이스와 랩탑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이 포지션이 여러모로 애매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패드를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게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 애매함이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 회사는 BYOD 정책을 시행하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개인용 랩탑은 사내 반입 금지였습니다. 재택근무시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는 업무 환경에서는 원격으로만 접근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반면 모바일 디바이스에는 이 정책이 다소 완화되어있는데, 모바일 환경에서는 슬랙, 구글 워크스페이스, RDP를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바일 환경이 통제가 좀 더 수월하기 때문이겠죠.

중요한건 아이패드는 정책상 모바일 디바이스에 속한다는 겁니다. 즉 아이패드 프로로 회사 슬랙과 구글 문서 등에 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개인용 맥북 에어에서 하려면 원격을 반드시 통해야 하는데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거죠.

가끔 미팅이 많거나 외근이 있는 경우에는 업무용 맥북프로를 두고 아이패드 프로 하나만 들고 회사에 출근하기도 하는데, 덕분에 거의 모든 업무를 아이패드 프로 하나로 할 수 있습니다. 이동 중에 메신저는 슬랙으로 하고, 필요한 문서를 구글 독스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볼 수 있고, 좀 더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면 원격으로 사무실 윈도우 데스크탑에 붙어서 작업합니다. 제가 업무에 주로 쓰는 Workflowy나 Google Meet 같은 툴도 아이패드 프로에서 잘 작동하기 때문에 외근 가는 차 안에서도 간편한 이동식 11인치 오피스가 돠어 줍니다.

나는 원래 태블릿 PC가 필요한게 아니었을까..?

M2 맥북 에어를 들였을 때 맥북 에어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아이패드 프로를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몇년 동안 메인 랩탑으로 쓰고 있었지만 복잡한 작업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에 다시 메인 랩탑을 맥북으로 하려고 했던거죠.

M2 맥북 에어는 훌륭하게 랩탑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에서 불가능하거나 불편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 맥북 에어는 아이패드 프로 같은 전천후 장비가 되진 못했습니다. 컴퓨터가 필요한 환경에서 매번 키보드가 필요한건 아니었거든요. 가령 여행가는 기차 안에서 동영상을 보거나 간단한 게임을 할 때 맥북 에어의 키보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여행 중에는 굳이 맥북이 필요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었구요.

결국 맥북 에어는 아이패드 프로를 대체한다는 미션에 실패했습니다.

오히려 요즘 M4 아이패드 프로를 쓰면서 원래 노트북이 아니라 태블릿 PC가 필요했던건 아닐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처음 샀던 랩탑도 후지쯔 P1510이었는데, 지금 용어로 따지면 2 in 1 태블릿 PC였죠. P1510을 썼을 때도, 아이패드 프로를 썼을 때도 오히려 전통적인 랩탑보다는 태블릿 PC를 전천후로 잘 썼었던 것 같습니다.

M4 아이패드 프로를 쓰면서 메인 랩탑을 아이패드 프로로 다시 대체했는데 확실히 전천후 Daily Driver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패드 프로에서 불가능하거나 불편한 것들은 여전하지만 그런 것들은 맥북이나 윈도우 원격 연결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Slack으로 일하다가..
저녁에는 프렌즈를 보면서 치킨을 먹는 삶

여행지에서 매직키보드 연결조차 없이 회사 긴급 업무 대응을 한적이 있었는데 대응을 하고 난 뒤에는 숙소로 돌아와 엔터테인먼트 도구로 쓸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유연한 매력 때문에 저는 애초에 랩탑보다도 태블릿 PC가 더 잘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래저래 마이너한..)

어찌보면 맥북보다 호환성 / 생산성이 더 좋다.

맥북 에어를 아이패드 프로 대신 메인 랩탑으로 쓰면서 많은 한계를 극복하긴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제약이 더 크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패드 프로를 대체할 목적으로 들였다보니 많은 경우에 앱 대신 웹을 사용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게 생각보다 편하진 않았거든요.

가장 대표적으로 디즈니 플러스나 넷플릭스 같은 OTT 앱의 경우 맥북에서는 다운로드해서 오프라인으로 보는게 불가능하지만, 아이패드 프로에서는 가능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워드프레스 앱에서는 오프라인 환경에서 이어서 작성하는게 가능하지만, 맥북 에어에서는 인터넷이 연결 되어야만 작성 가능하죠. Google Docs 같은 경우 앱에서 하는 작업이 더 편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윈도우를 원격으로 연결하면 PC의 거의 대부분 작업을 커버하기도

물론 아이패드가 모든 컴퓨터 환경을 다 커버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전 요즘 이럴 경우 윈도우 원격을 연결하는데, 많은 경우 아이패드 프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생각해보면 맥북도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한계가 만만치 않다보니, 호환성 측면에서는 윈도우 PC로 보완하는게 더 나은 방법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M4 여야 했냐고 물으신다면

M4 아이패드 프로를 정말 잘 쓰고 있지만, 그래서 반드시 M4 아이패드 프로를 사야하냐면, 글쎄요. M4 아이패드 프로는 얇고 가벼워졌고, 매직키보드는 개선 되었으며 디스플레이는 OLED로 크게 좋아졌습니다. M4 프로세서의 성능은 아이패드 프로가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에서 차고 넘치는 성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M4라서 가능하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모든 작업들은 M1 아이패드 프로에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아니고 아이패드 에어였어도 충분히 가능했을 겁니다. 지금 기준에서는 M4의 성능이 필요한 상황은 많지 않습니다.(미래에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뭐 결국에는 기분 탓이겠죠. 맥북보다 빠른 프로세서, 120hz의 주사율, 다크모드에서 빛을 발하는 OLED, 개선된 매직키보드 등, 아이패드에서 하는 모든 작업을 M4 아이패드 프로는 훨씬 쾌적하고 기분 좋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 세대 아이패드 프로였다면 좀 고민했겠지만, 이번 M4 아이패드 프로는 좀 무리해서라도 프로 라인으로 갈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아이패드 프로에 대해서 떠도는 여러가지 말 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유튜브 머신, 애플 펜슬이 없으면 아이패드 프로는 존재 이유가 없다든지, 아이패드에 맥OS가 들어가야 제 값을 한다든지 하는 말들이죠.

전 이번 아이패드 프로는 애플 펜슬을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모델 쓸 때도 애플 펜슬은 거의 1년에 두번 쓸까말까였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패드 프로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맥북에어가 없으면 약간 불편하겠지만, 아이패드 프로가 없으면 당장 내일부터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용 사례가 저 같진 않을 겁니다. 만약 제가 내일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폰 앱 개발을 하거나 1인 창업을 한다고 한다면 내일부터 저는 다시 맥북에어를 꺼내서 쓸겁니다. 대부분 노트북이 필요한 케이스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아직도 노트북의 경험과 동일한 경험을 주기에는 모자릅니다.

다만 상황이 받쳐줄 때는, 특히 저처럼 모바일 디바이스와 랩탑 사이의 경계선에 있는 디바이스가 필요하고,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회의와 소통 업무가 주를 이루거나 이동하면서 작업할 일이 많은 경우, 아이패드 프로는 업무와 개인 생활 모두를 책임 질 수 있는 전천 후 장비가 되어줄겁니다.

“당신의 다음 컴퓨터는 컴퓨터가 아니다.” ARM 기반의 맥북 에어를 쓰고 난 이후에도 이 말이 저한테 적용될 줄은 정말 몰랐더랬습니다.

덧. 이 글은 아이패드 프로에 있는 워드프레스 앱으로 작성했는데 식탁에서 매직키보드로 글을 쓴 다음, 이미지 보정 작업이나 이미지 업로드, 교열은 침대에 누워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터치만으로도 할만하네요. 누워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아이패드 프로가 가진 진정한 생산성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