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버 프리즘 MP3 플레이어

지금이야 애플빠와 다를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입장이지만 의외로 애플 제품을 처음 산 것은 좀 늦은 편이었습니다. 애플 제품 중 처음 샀던 제품이 2010 맥북 에어였거든요. 첫 애플 제품의 경험이 아이팟인 분들도 많을텐데 저는 아이팟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습니다. 제 첫 MP3 플레이어는 아이리버였고 쭉 MP3 플레이어는 아이리버만 썼거든요.

제 첫 MP3 플레이어는 아이리버의 IFP-100 모델이었습니다. 지금도 디자인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모델이죠.

프리즘 모양의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기술의 한계에서 최선을 다한 디자인이었습니다. AA 배터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기기의 두께를 줄이는데는 한계가 있었고, 또 전면에 있는 LCD 디스플레이과 기판은 곡률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죠. 결국 그래서 나온 디자인이 이 프리즘 디자인이었습니다. 기술의 한계 때문에 나온 디자인이었지만 또 그렇기에 나올 수 있었던 디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썼던 모델은 256MB 모델이었는데(기가 아니고 MB) 당시 기준으로도 노래 몇개 넣기만 해도 꽉 차는 용량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썼습니다. 아날로그 테이프 시절 획득한 선곡 스킬을 통해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을지 플레이리스트를 짜서 골라 넣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가장 잘 썼던 기능은 라디오를 녹음해 MP3 파일로 변환하는 기능이었는데, 지금이야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때도 좋아하는 노래를 라디오에서 녹음해서 듣는 감성이 남아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노래 뿐 아니라 매주 금요일 오전에 MBC 라디오에서 하던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하는 것이 주된 일상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동안 매주 녹음했으니 거의 2년 가까이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했습니다.(그리고 모 웹하드 사이트의 야반 도주로 인해 이 파일을 모두 날려먹었습니다.. 이건 또 나중에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나온 물건이긴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랑 걸쳐 있어서 그런지 지금 생각하면 아날로그하기가 그지 없네요.

갑자기 이 MP3 플레이어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옛날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게 아니라 2025년 11월에 출시된 신제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좀 뒤늦게 알았는데 아이리버에서 이 프리즘 MP3 플레이어가 리부트 되어 출시되었거든요.(모델명 IFP-10)

전 처음에 잘 못 본 줄 알았습니다. 옛날에 나왔던건가? 스마트폰 시대에 웬 MP3 플레이어? 무선 이어폰인가? 했는데 올해 새로 나온 MP3 플레이어가 맞습니다.

스펙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건전지가 내장 배터리로 바뀌었고, 디스플레이도 컬러로 바뀌었고, 용량도 64기가로 대폭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무려 USB-C 타입으로 충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는 2001년에 나온 모델의 복각 디자인이라고 할만큼 거의 모든 면이 동일하게 설계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마이크 위치도 예전의 그 위치랑 동일합니다.

다만 건전지도 안들어가는데 왜 모양이 프리즘 모양인지는.. 향수를 자극하는 목적 외에는 의미가 없는 디자인인 것 같습니다.(예전 건전지 들어가던 부분에는 배터리 셀이 들어있으려나요?)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며 모든 면에서 여러모로 업그레이드 된 IFP-10이지만 몇가지 너프된 것도 보입니다. 일단 지원 파일 형식이 MP3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모델은 mp3, wav, wma 등 다양한 파일 형식을 지원했던걸 생각하면 좀 아쉽죠.

눈에 띄는 부분은 블루투스 신호를 중개하는 기능인데, 이 제품은 MP3 플레이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블루투스 이어폰이기도 합니다. 이걸 스마트폰에 연결하고, 이 제품에 연결되어있는 유선 이어폰 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유선 이어폰을 무선 이어폰처럼 쓰고 싶을 때 유용한 기능일 수 있겠네요.(물론 같은 기능을 하는 제품 중 더 얇고 저렴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목적으로 구매하진 마세요)

스마트폰과 음악 스트리밍의 시대에 대체 누가 MP3 플레이어를 사나 싶지만 의외로 수험생들에게는 수요가 있다고 합니다. 수험생들에겐 스마트폰이 기능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게다가 요즘은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니 다시 이런 디바이스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멸종되어가던 전자사전도 다시 부활한다고 하는걸 보면요.

아이리버는 이제 아예 추억팔이로 노선을 잡은 것 같습니다. 근데 의외로 또 수험생을 비롯해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기능을 줄인 디바이스들이 나름의 영역에서 인기를 끄는걸 보면 나름 생존을 위해서는 괜찮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러다 딕플이나 U10까지 복각되어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덧. 근데 라디오 기능이 되는 플레이어, 그리고 그걸 디지털 파일로 녹음할 수 있는 디바이스는 없다보니 의외로 그런 쪽에서 수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덧2. 근데 문득 든 생각인데 거의 모든 음원 서비스가 스트리밍으로 바뀐 지금 MP3 파일은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걸까요? 소리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