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에 윈도를 설치해서 쓰는 것은 정말 비합리적인 일일까?

논쟁의 역사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 시절에는 운영체제와 컴퓨터는 하나였습니다. 운영체제는 컴퓨터 하드웨어가 잘 움직이도록 하는 보조 수단에 지나지 않았죠. 지금의 콘솔과 콘솔 운영체제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콘솔 게임기를 보면서 콘솔 운영체제가 독립된 존재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과 같죠. IBM의 초기 경영자들은 운영체제를 돈을 주고 판다는 사실에 대해 대놓고 비웃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운영체제(MS-DOS)를 상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MS-DOS 이후로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는 서로 별개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건 30년도 더 넘은, 제가 태어날 즈음의 이야기이고 요즘은 컴퓨터에서 윈도라는 운영체제를 컴퓨터와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겁니다. 아무리 컴퓨터를 잘 몰라도 “내 컴퓨터에 윈도 설치해줘(물론 해적판으로..)” 같은 요청을 우리는 곧 잘 하니까요. 운영체제가 범용화되면서 더이상 제조사들도 운영체제를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 중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옛날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데요,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제조하고 있는 모든 하드웨어의 운영체제를 직접 설계하고 있습니다. 운영체제만해도 맥OS, iOS, WatchOS, tvOS.. 하드웨어 별로 꽤 많은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 맥OS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범주 때문에 20년 동안 매일 같이 윈도우즈와 경쟁을 해왔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전까지만해도 맥 생태계에서 윈도우즈는 상당히 배타적이었죠.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1997년부터 맥OS에서 Internet Explorer와 Office가 실행되더니, PowerPC에서 인텔 CPU로 이주를 시작하고, 그러다가 결국엔 Bootcamp라는 소프트웨어로 맥 하드웨어에 윈도우즈를 설치할 수 있게 됩니다. 많은 맥 팬보이들이 스티브 잡스를 ‘이단’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던 시절이었습니다.(상상이 되시나요?)

맥 하드웨어에 윈도우즈를 설치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윈도우즈가 설치 가능할만큼 맥의 하드웨어가 범용 컴퓨터와 다름이 없게 변했죠. 더이상 하드웨어적으로 PC랑 맥을 구분해서 부를 이유가 사라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맥에 윈도우즈를 설치해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신성시되었던 “맥”이 이제 일반적인 PC와 다를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스티브 잡스가 벌린 일입니다. 사실 애플 입장에서는 맥의 시장 확대와 범용성 획득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맥 커뮤니티의 일부 사람들은 맥에 윈도우즈를 설치해서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드웨어야 더이상 애플이 PowerPC 기반의 맥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적어도 하드웨어만큼은 아직 애플이 맥OS를 만드는만큼 맥에는 맥OS를 사용하는 것만이 맥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고 맥의 개성을 지킬 수 있는 일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입니다. 차라리 윈도우즈를 쓰느니 윈도PC를 쓰라고 추천하는 것을 지금도 맥 커뮤니티에서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 주제는 20년 가까이 이어온, 정말 케케묵은 주제이지만 최근 페이스북 맥 커뮤니티에서도 불이 붙을만큼 여전히 민감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부트캠프

맥에 윈도를 설치할 수 있는 부트캠프(Bootcamp)라는 기능은 맥OSX에서 정식으로 지원하는 기능입니다. 사실 이 논쟁이 무의미한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은 맥에 윈도를 설치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소프트웨어와 드라이버도 같이 만들고 있습니다. 부트캠프를 통해 윈도를 설치해보면 윈도가 정식으로 지원되는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애플이 부트캠프를 통해 윈도를 정식으로 지원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맥 하드웨어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맥OS의 사용을 확대 시키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로 맥에 윈도를 설치해서 쓴다고 해도 맥은 시스템 어딘가에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윈도용 컴퓨터를 쓸 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접근성을 갖고 있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맥OS로 부팅해서 쓸 수도 있죠. 그러다보면 맥OS 사용률도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애플은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결국 맥에 적용된 최신 기술을 사용하려면 맥OS를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윈도에 설치되는 부트캠프용 드라이버는 항상 묘하게 맥OS보다 한세대 전의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별도의 부품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해결되지만 트랙패드나 매직마우스 같은 애플의 디바이스 같은 경우에는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결국 최신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맥OS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부트캠프는 애플이 만들어놓은 맥 점유율을 위한 장치일 뿐.. 그것을 쓴다고 해서 사용자를 비난할 이유도, 쓰면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운영체제도 결국 소프트웨어의 일종입니다. 맥에 MS 오피스를 쓸 때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듯, 윈도를 쓴다고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머지 않았을지도..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애플은 컴퓨터 제조사들 중 유일하게 운영체제와 하드웨어를 같이 만드는 회사입니다. 근데 왜 그럴까요? 다른 회사처럼 그냥 윈도우즈를 탑재하는 것이 제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일일텐데 말이죠. 그것은 바로 애플의 모든걸 통제하고 싶어하는 본능에 기인합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창업했던 시절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기 원했습니다. 제조공정부터 포장까지, 모든 공정에 애플이 직접 관여했죠. 팀쿡이 오면서 적극적인 외주로 조립 공장은 점차 사라졌지만 여전히 애플의 통제 본능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최근엔 제조는 외주 업체에 맡기더라도 설계만큼은 직접하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애플이지만 아직 핵심부품 하나만은 스스로 설계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바로 맥에 들어가는 CPU입니다. 맥은 PowerPC에서 이주한 뒤부터 줄곧 인텔 CPU를 쓰고 있습니다. 근데 이 인텔 CPU가 자꾸 제조 주기를 늦추거나 내장 그래픽을 강제로 탑재하는 방식으로 장난질(?)을 치면서 맥 제품의 로드맵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출시 주기가 들쑥날쑥하고, 신제품이 새로운 세대의 CPU를 달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반면 아이패드와 아이폰은 1년에 한번씩 비슷한 시기에 출시하고 매번 새로운 CPU를 탑재하여 나옵니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에 들어가는 CPU는 애플이 자체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애플은 아마 더이상 인텔로 인해 맥 제품의 출시주기가 꼬이는 일을 원하지는 않을겁니다. 이미 아이폰7에 들어가는 ARM 기반인 A10 CPU가 맥북 에어 2013을 따라왔다고 하는 지금 애플이 호환성을 제외하고는 인텔 CPU를 쓸 이유는 많지 않아보입니다. 아마 제 생각엔 배터리와 휴대성이 중요한 맥북 라인부터 CPU를 ARM 계열로 교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애플이 ARM 기반의 맥북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루머만해도 상당히 오래되었죠.)

문제는 맥이 CPU를 인텔 계열에서 ARM 기반으로 옮겨가게되면 부트캠프도 못 쓰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윈도우즈는 ARM 기반에서 실행이 가능하긴 하지만, ARM 윈도우즈는 여전히 메리트가 별로 없습니다.(아이패드보다도 호환성이 떨어집니다.) 애플이 정식 지원할 이유가 없겠죠. 맥 라인이 전부 ARM 계열로 옮겨가는 순간 이 논쟁은 정말 끝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뜬금없이 왜 이런 주제로 글을 썼는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페이스북 맥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분쟁이었습니다. 보통 커뮤니티에는 두가지의 입장이 있는데, “왜 맥을 사놓고 윈도우즈를 쓰는지 모르겠다” VS “맥의 하드웨어가 좋아서 산 것 뿐 무슨 상관이냐”의 싸움이죠. 보통 이런 논쟁은 답이 없습니다. 서로 사용 패턴이 다른 것을 놓고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사용패턴에 대해 심하게 영향을 받는 것 모두 그리 바람직하진 않다고 봅니다.

운영체제는 컴퓨팅을 함에 있어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운영체제를 전환하는 것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가 따르지 않는다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애플은 하드웨어를 팔아먹기 위해(?) 윈도우즈를 설치할 수 있는 부트캠프를 내세우는데, 굳이 사용자들끼리 나서서 순혈주의를 내세울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논쟁도 결국 애플이 아키텍쳐를 옮겨타는 순간 끝이 나겠죠.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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