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밀리의 서재를 보면서 책 취향이라는게 생기고 있습니다. 저는 시집이나 문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꼭 그렇지만도 않았고, 자기개발서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이 취향이라는게 아직 굳어질 정도로 많은걸 본건 아니지만 예전에 제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변화입니다.
비슷한 일이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패스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제가 가진 게임 취향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전 RPG를 별로 안좋아하고, 3인칭 시점의 어드벤처 장르나 슈팅 게임, 레이싱 같은 보다 대중적인 게임을 좋아한다는걸 알게 되었죠. 게임패스에 있는 많은 게임을 해보면서 다시 굳어진 취향입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인데 “소비와 경험은 취향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출처 불명) 많이 써보고 많이 경험해봐야 취향이 생긴다는 이야기겠죠. 저는 원래 커피라는게 맥심 커피 믹스 아니면 스타벅스 커피 아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커피 무식자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국내 여행을 다니며 여기저기서 커피를 먹어보면서 조금씩 커피 맛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마 조금 더 다양하게 마신다면 제 커피 취향이 조금씩 굳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비와 경험이 취향을 만든 대표적인 사례죠.
그래서 취향은 보통 비쌉니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제약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취향이 생길 정도로 소비하지는 못하니까요. 저도 커피에 대해서 자신있게 “내 취향은 미디엄 로스팅한 과일향이 나는 커피다!”라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많이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독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무제한 컨텐츠는 취향을 만들어내기에 참 좋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저도 이 나이 되도록 몰랐던 취향이라는걸 구독 서비스들을 통해서 알아가고 있으니까요.
구독 서비스에 있는 컨텐츠들이 그저그렇기 때문에 취향을 만들기에 부적합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전 그래서 더 취향을 키우기에 구독 서비스가 적합하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명작은 취향과 상관 없이 그냥 항상 좋습니다. 저도 명작 RPG 게임은 많이 즐겨했던 적이 있었구요.(최근에 했던 클레르 옵스퀴르 같은) 하지만 진짜 취향에 맞다면 명작이 아닌 범작이어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범작들이 모여있는 구독 서비스야 말로 취향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공간인거죠.
(물론 요즘 구독 서비스는 범작만 모여있지 않고 오히려 명작 비중이 더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구독 서비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최소한만 소비하는 중이지만 구독 서비스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부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알고리즘이 취향을 지배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