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중심적인 기술과 가치 중립적인 기술

최근 샬롯츠빌에서 일어난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시위와 폭력 활동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의 이상과 정면으로 배치되지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같은 사람이 되니 이젠 대놓고 단체 활동이라니.. -_-;; 이와 더불어 트럼프는 “폭력 사태의 책임은 양쪽에 있다”는 소리를 해서 대통령 임기 내 두번째 위기을 맞고 있습니다.

흥미로운건 기술 회사들의 움직임입니다. 애플과 페이팔은 백인우월주의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했습니다. 클라우드 플레어는 데일리스토머 같은 네오나치 사이트에 서비스를 중단시키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기술 기업들의 단호한 움직임은 더이상 혐오와 증오,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단체를 더이상 허용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조금 지난 일이긴 하지만, 중국에서는 애플이 앱스토어에 VPN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들을 삭제하기도 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VPN은 다른 나라의 네트워크에 접속한 것처럼 우회할 수 있도록 해주는 툴입니다. 중국 내에서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구글 같은 서비스들이 차단되어있기 때문에 중국 사용자들은 VPN을 이용해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또 VPN은 추적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중국 내에서 활동하는 반 정부 활동가 들이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였습니다.

애플이 VPN 앱들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하면서 이제 iOS 기기로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셈입니다. 맥과 달리 iOS 기기에서는 앱을 설치할 수 있는 경로가 앱스토어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큽니다. 이를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자국내의 네트워크 접속을 보다 철저히 관리하고자 하는 중국과 중국내에서 시장을 확대해야하는 애플 사이의 이해관계로 인한 차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갑자기 중국 법이 바뀐 것도 아니고 말이죠.) UN인권위원회는 이 조치에 대해 애플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본 두가지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차별, 혐오가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기술 기업과 한 국가에서 장사를 계속하기 위해 인권과 차단, 검열에 동조하는 기술 기업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여기엔 공통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해당 기술 기업들이 자신들의 가치에 따라 판단을 내린 조치라는 것입니다.

가치 중립적인 기술과 가치 중심적인 기술

리처드 스톨만이 GNU 선언문에서 모든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공개해야한다는 선언(자유소프트웨어 선언)을 했을 때, 정보의 접근과 이용에 있어서 그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소프트웨어의 접근에서 경제적인 이익과 저작권은 보호 받지만 누군가가 그 소프트웨어의 소스를 이용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스스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일례로 레드햇 리눅스는 분명히 돈을 받고 파는 상용 소프트웨어지만, 레드햇의 소스코드를 이용해서 만드는 CentOS는 무료입니다. 상용 레드햇과 똑같지만, 레드햇이 이를 차단하거나 소송을 걸 수 있는 권리는 없습니다. 오픈소스 세계에서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는 독점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레드햇은 그 대신 기술 지원을 추가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우분투를 비롯한 리눅스 벤더가 기술 지원으로 수익을 얻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정신에 따르면, 정보(소프트웨어)에 접근하고 이용하는데 있어서 그 누구도 차별이나 검열을 하면 안됩니다. 인종에 따른 차별, 나이에 따른 차별, 경제력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와 더불어 특정 국가의 법률을 위반한 사람, 독재자, 살인자 등에 대해서도 정보의 접근을 차단하지 않습니다. 소스코드는 그 자체로 추구하는 가치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픈소스는 상당히 가치 중립적인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치중심적인 기술은 가장 대표적으로 애플이 운영하고 있는 앱스토어에서 잘 나타납니다. 앱스토어에서 거래되는 앱들은 분명 iOS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가치중립적인 자연과 달리 앱스토어는 애플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운영됩니다. 애플이 내놓은 앱스토어의 관리 방침에 따라 이와 맞지 않는 앱은 아무리 유용해도 차단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두가지 사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애플이 추구하는 가치는 미국의 이상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 혐오 없는 세상 같은 것들이죠. 이 가치에 맞지 않는 사이트에 대해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해당 국가의 법률에 따라 회사의 가치와 약간은 반대되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일단 방향성이야 어찌되었든 애플이 생각한 가치에 따라 정보에 대한 접근이 차단됩니다. 사실 현대에 제공되는 거의 대부분의 기술은 바로 이렇게 가치 중심적입니다.

가치중심적인 기술의 문제

가치중심적인 기술은 기술을 제공하고 이용하도록 하는 판단이 오로지 기술을 제공하는 주체에게 달려있습니다. 보통 이 주체는 기업이지만 때로는 정부가 되기도 하고, 특정 개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매우 다양하지만 큰 범주에서 보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비슷합니다. 이 주체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어떤 특정 계층은 기술에서 소외가 되기도 합니다. 갖고 있는 자본에 따라, 갖고 있는 정치 사상에 따라서 말이죠.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혐오세력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한 애플과 페이팔의 결정은 미국 중심의 사회적인 가치로 봤을 때는 옳은 일이었습니다. 저도 그 행동에 지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중국 앱스토어에서 VPN 앱들을 제거한 것은 그다지 옳은 일이라 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중국 정부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게 옳은 일이었겠죠.

가치중심적인 기술의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발생합니다. 그 가치의 옳고 그름은 누가 판단을 하는 것이냐하는 것이죠. 만약 애플의 CEO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면? 그래서 인종차별반대 단체가 올린 앱을 삭제하거나 서비스를 못 쓰게 한다면? 이렇게 하지 못할만한 장치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물론 애플은 회사인만큼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한다든지 소송을 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할 수는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제재 장치는 없습니다. 애초에 애플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애플이 얼마전에 WWDC에서 선보였던 APPOCALYPSE 광고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애플에서 만드는 기계들과 앱스토어의 앱들이 사라진 세상이 종말이 다가올 정도가 된다는 애플의 바람 + 웃자고 만든 광고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 웃을 수만은 없었죠.

이런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세상에서 애플이란 회사 내지는 CEO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기술의 제공 여부가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린 그 기술 기업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요? 가치 중심적인 기술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치중립적인 기술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술기업 중에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정신을 잘 따르는 곳은 구글입니다. 구글 검색 엔진은 사람이 관여를 거의 하지 않고 구글이 개발하는 알고리즘에 따라 검색 결과가 나타납니다. 반면 네이버의 검색엔진은 상당히 가치중심적이죠.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기계가 사람보다 더 공정하다고 믿습니다. 네이버보다 구글의 검색 결과를 더 신뢰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구글은 혐오, 증오 단체를 지원한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구글 검색 결과에서 올바른 사실보다 검색엔진최적화(SEO)를 잘한 네오나치 사이트의 정보들이 상위에 올라왔던 것입니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정보 자체의 사실보단 더 많이 언급되고 유명한 정보를 더 상위에 표시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구글은 즉시 검색 결과를 조정하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구글이 이런 활동들을 방관하고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분야 외에 정치, 사회 이슈 분야에서 보면 위키리크스가 바로 이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차단되어있는 정보를 해킹해서 모두에게 공개해버리는 일을 하죠. 그 정보가 누구에게 공개가 되든, 어떻게 쓰든 상관 없습니다. 대부분의 정보는 공개되는게 옳지만 때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거짓 정보로 인해 대통령에 낙선한 클린턴의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정보는 테러리스트에게 공개되어 많은 살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가치중립적인 기술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칼은 매우 유용하지만 한편으로는 범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기술도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의 하나기 때문에 칼 자체에는 어떤 가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영향력을 사회와 정치로 넓히게 된다면 이 이야기는 방임 내지는 방치가 됩니다. 미국이 핵폭탄을 개발하고 그것을 실제로 일본에 떨어뜨렸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인해 그것을 발명한 과학자들에게도 윤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기술은 그 자체로 가치에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나 사용하는 사람들은 가치에 중립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가치중립적인 기술은 가치중심적인 기술이 갖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지만 반대로 무책임과 방임, 그리고 때로는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옳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이고, 이 기술이 가치와 무관하길 바라는 것 자체는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죠.

대안은..

좀 뜬근없지만 DC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슈퍼맨과 그의 영원한 숙적, 렉스 루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슈퍼맨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인류를 도와줍니다. 인류는 사실상 슈퍼맨을 견제할 힘은 없지만 그의 활약에 대해 고마워했죠. 하지만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한번도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선의를 갖고 인류를 도와주지만 언제든지 다른 생각을 먹는다면 인류를 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죠. 그래서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를 갖고 슈퍼맨을 공격합니다.

스마트폰, 앱 등 현대의 기술은 슈퍼맨에 못지 않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기술기업은 때로는 이 영향력을 이용해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혐오주의자들과 같은 악당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런 기술기업들의 선의를 믿고 이 행동을 지지하지만, 기술 기업의 수장이 바뀌거나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직접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렉스루터처럼 이 자체를 경계하고 제거해버리는 것도 올바른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슈퍼맨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안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배트맨입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이지만 배트맨은 슈퍼맨이 딴 생각을 먹었을 때 이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최소한 하나 정도 준비해놓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슈퍼맨을 믿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인 것이죠.

우리도 이런 기술회사들에 대해 무작정 경계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은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편에 서 있는 슈퍼맨이 언제든지 다른 마음을 먹었을 때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 말입니다.

가령 애플이나 페이팔 등의 운영 방침은 여전히 미스테리합니다. 약관이라는게 분명 존재하지만 때로는 약관에 의한다고 해도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런 운영방침을 좀 더 구체화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가치중심적이긴 하되 그 가치가 투명하고 원칙적인 기준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게끔 말이죠.

그리고 앞에서 나온 서비스 제공 거부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하고 보편적인 기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클라우드플레어 같은 경우, 데일리스톰은 차단하긴 했지만 IS나 여러 범죄조직의 사이트에 대해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지금 클라우드플레어가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당하는 역공을 피할 수 없겠죠.

충분한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이런 장치들이 마련된다면 아마 우리는 좀 더 안심하고 우리의 슈퍼맨, 아니 기술기업들의 행동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기업들도 좀 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갖출 수 있겠죠.

기술회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이젠 전기, 수도에 맞먹을 정도로 필수 적인 요소가 되어가는 현대에 이번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 회사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더 확대될 것이 분명하고 우리는 이를 견제할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 능력은 문제제시까지만 가능해보이네요.

덧. 사실 이 이야기는 트위터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옹호하는 주장이라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사실 저는 그들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저도 기술 기업들의 조치를 응원하는 입장이구요. 다만 모든 사회적인 행동들은 내가 그 반대편에 서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법에도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원칙이 적용되어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강력한 힘이 나와 반대편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이라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덧2. 가치중립적인 기술의 하나로 위키리크스 예를 들었는데, 최근에 구글에서 남녀임금차별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잘린 직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한 것도 위키리크스입니다. 딱히 위키리크스가 그의 생각에 동조한다기보단 해당 직원이 별다른 원칙없이 구글에서 해고를 당한 것을 문제로 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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