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과 컨텐츠의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모바일 플랫폼 초기만해도 플랫폼은 많은 컨텐츠 생산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컨텐츠 생산자가 점점 커질 수록 플랫폼 제공자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죠.
현재 플랫폼과 컨텐츠의 충돌이 가장 단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애플 앱스토어입니다. 앱스토어에서 일어나는 논란을 정리해보면 다른 플랫폼에도 적용 가능한 문제들입니다. 현재 앱스토어와 관련된 논란은 크게 두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에픽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앱스토어 수수료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앱스토어는 앱 수익의 30%를 앱스토어 운영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 비율이 과하거나 아예 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에픽 뿐 아니라 많은 컨텐츠 제공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두번째 문제는 주로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제공자들과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애플은 자체 규정을 토대로 앱스토어에 진출하는 컨텐츠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죠. 특히 클라우드 게임에 대해서는 아예 진출을 차단하거나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과연 애플이 이런 통제를 가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보통 언론에서는 이런 논란들을 애플의 컨텐츠 제공자에 대한 갑질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한다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앱스토어 독점 논란을 좀 더 본질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앱스토어 이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앱스토어 플랫폼의 구조
앱스토어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앱과 게임이 판매되는 ‘스토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온라인 이커머스 플랫폼과 동일합니다. 옥션 같은 마켓 플랫폼과 비교해보자면 앱스토어의 각 개발자는 ‘판매자(셀러)’라고 할 수 있고 애플은 해당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운영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픈마켓은 기본적으로 여러 판매자가 자유롭게 물건을 판매할 수 있지만 동시에 판매자들이 지켜야할 몇가지 규칙이 존재합니다. 일단 오픈마켓의 운영을 위해 운영사는 판매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그리고 이를 정확하게 정산하기 위해서 반드시 오픈마켓의 결제 시스템을 통해 결제를 하도록 하죠.
오픈마켓의 관리를 위해 오픈마켓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에 대한 규칙도 적용합니다. 아무리 오픈마켓이라고 해도 아무 물건이나 플랫폼 내에서 판매된다면 플랫폼 서비스에 심각하게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오픈마켓은 판매되는 상품에 대해서도 일정 규칙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판매자가 수수료를 피할 목적으로 상품 페이지에 자체 결제로 이동하는 링크를 달아놓거나 혹은 허용되지 않는 물건을 판매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보통 오픈마켓이라면 규정 위반을 이유로 판매 상품을 내리거나 계정을 중단 시킬 것입니다.
현재 에픽과 MS 같은 컨텐츠 제공자는 앱스토어 플랫폼에서 ‘판매자’의 역할과 같습니다. 만약 판매자가 앞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이 규칙에 위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오픈마켓이 제재를 가한다면 갑질이자 탄압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요?
애플을 독점자가 아니라 앱스토어라는 오픈마켓의 운영자로 본다면 사안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만약 애플이 현재 에픽 게임즈와 MS 등에게 하고 있는 것을 독점으로 본다면 아마존, 이베이, 옥션 등의 오픈마켓 플랫폼도 독점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판매자가 오픈마켓의 부당한 규칙에 무조건 따라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정책이나 규칙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죠. 앱스토어의 정책이 부당하다면 당연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앱스토어 이슈는 독과점의 문제가 아니라 앱스토어의 규칙이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대한 문제로 봐야합니다.
논점 1. 앱스토어 플랫폼의 30% 수수료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앞서 살펴봤던 논쟁들도 같은 관점에서 해당 규정이 얼마나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야합니다. 앱스토어의 30% 수수료는 과연 적당한 수준일까요?
현재 에픽 게임즈는 앱스토어 플랫폼은 30% 수수료가 너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앱스토어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죠.
문제는 에픽 게임즈의 주장을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앱스토어의 운영 문제는 애플 내부의 문제이기 때문에 에픽 게임즈의 주장은 사실인지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에픽 게임즈가 입증하기도 어렵죠. 앱스토어의 운영비용을 제대로 감사하지 않는 이상 증명하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럴 경우 비교해볼 수 있는 간단하고 합리적인 기준은 다른 경쟁 플랫폼의 수수료와 비교해보는 것입니다. 애플이 다른 플랫폼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면 30%의 수수료 기준은 너무 과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현재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비롯해 밸브(스팀), MS(윈도우 스토어, Xbox), Sony(PS), Nintendo 등 앱 마켓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 제공자의 수수료 부과 기준은 통상적으로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에픽 스토어처럼 공격적으로 수수료를 낮게 받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업계와 비교해봤을 때 앱스토어가 받고 있는 30% 수수료가 특히 과도하다고 보긴 조금 어렵습니다. 앞으로의 소송전에서 상황이 에픽에게 불리하게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논점 2. 애플이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앱을 감독하는 것은 정당한가?
두번째 논점은 애플이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앱과 게임을 모두 통제하려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클라우드 게임은 앱스토어에 올라올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애플이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모든 게임을 리뷰할 수 없다는 이유였죠.
스토어 플랫폼을 오픈마켓으로 볼 때, 오픈마켓의 운영사가 판매자가 판매하는 상품을 규제하고 감독하는 것은 플랫폼의 건전성을 위해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앱과 게임은 모두 애플이 리뷰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악성코드나 바이러스에 대해 안전하다고 알려져있죠.
하지만 이 규정이 합리적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에 있는 게임들이 애플이 개별적으로 리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애플의 자체 게임 비즈니스인 애플 아케이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것은 오픈마켓 운영자의 직권 남용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논점은 MS의 문제제기가 합리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애플이 클라우드 게임을 막을만한 정당한 이유는 어떻게봐도 없었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애플도 당연히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건지 앱스토어 규정 개정을 통해 클라우드 게임이 앱스토어에 출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습니다. 클라우드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개별 게임을 앱스토어에 제출하고 개별 게임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진짜 문제는 사이드로드 이슈가 아닐까?
하지만 위의 논점은 모두 앱스토어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여전히 애플이 플랫폼의 관리와 감독의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닙니다. 앱스토어의 운영 방침이 합리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만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전 애플이 앱스토어 이외의 경로에서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사이드로드’를 iOS 기기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픽 게임즈라면 애플의 독점 이슈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사이드로드를 불가능하게 만든 현재 iOS의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을 것 같습니다. 안드로이드 같은 다른 범용 운영체제와 달리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모든 앱의 설치 권한을 애플의 통제 하에 두고 있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일까요?
일례로 같은 회사의 맥OS 같은 경우는 앱스토어 플랫폼 이외의 경로에서 앱 설치가 가능합니다. 맥OS에서는 스팀 같은 자체 게임 플랫폼도 애플의 통제 없이 자유롭게 서비스할 수 있죠.
맥OS처럼 사이드로드가 가능해진다면 MS도 에픽도 애플의 통제 없이 자체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해집니다. 앱스토어의 정책을 따를 일이 없기 때문이죠. 애플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점 이슈로 걸기에도 좋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앱스토어 내에서 게임을 배포하면서 앱스토어의 정책을 위반하겠다라고 공언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에픽은 왜 이런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수수료만 문제로 삼는 걸까요?
에픽이 사이드로드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
에픽을 비롯한 여러 컨텐츠 제공자들이 사이드로드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앱스토어 플랫폼의 파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픽은 과거에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 역시 수수료 이슈 때문에 포트나이트를 내리고 자체적으로 안드로이드용 포트나이트를 배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사이드로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플레이스토어 외부에서 게임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수수료 이슈를 피해가고자 한 것이죠.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 포트나이트는 플레이스토어로 복귀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사이드로드가 허용된다고는 하나 플레이스토어 밖에서 설치하는 사용자 경험은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안 팝업도 나타나고 신경써야할 것도 많았죠. 무엇보다 IT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의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물론 현재는 포트나이트는 플레이스토어에서도 삭제된 상태입니다.)
이와 같은 경험 떄문에 에픽은 사이드로드가 답이 아니라고 본 것으로 보입니다. 즉 앱스토어의 영향력은 그대로 이용했으면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에픽이 진정 애플로부터 게이머들을 자유롭게 하는 자유투사가 되고 싶었다면 iOS의 사이드로드 이슈를 정면으로 공격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가 가지는 플랫폼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은 그대로 누리면서 그 안에서 앱스토어의 정책을 공격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플랫폼의 정책이라고 해서 그 안의 참여자들이 그 정책을 무조건 따라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불합리한 정책에 대해서는 당연히 시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플랫폼 판매자의 권리이죠.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독점 판결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놔둔채 스토어의 정책이 타사에 비해 얼마나 불합리한 규정인가?가 핵심적인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
최근 에픽과 애플의 북부 캘리포니아 법원에서의 재판은 에픽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재판부도 역시 이 문제를 플랫폼 관리자의 규정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보고 있는데 다른 경쟁 플랫폼과 비교해봤을 때 에픽이 말한 것처럼 앱스토어가 부당하게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재판부는 여전히 에픽이 이 상황을 일부러 초래했으며, 이 상황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에픽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픽은 다른 콘솔 업체는 하드웨어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지만 애플은 그게 아니므로 30% 수수료는 여전히 과도하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에픽과 애플의 소송 뿐 아니라 구글도 국내 앱 개발사들에게 게임 외의 인앱 결제 수수료(30%)를 부과하겠다고 하는 등 컨텐츠 제공자와 플랫폼 제공자의 충돌은 국내 외에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앱스토어 플랫폼이 더욱 커지고 영향력이 막대해질 수록 이 충돌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언론은 단순히 이 싸움을 애플과 구글의 갑질로 프레임을 짜고 있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의 관리 감독을 맡은 주관사가 어디까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컨텐츠 제공자는 그 플랫폼의 막대한 영향력은 이용하면서도 플랫폼의 규정을 위반하는게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봐야합니다.
이 문제는 모바일 플랫폼 뿐 아니라 아마존, 이베이 같은 오픈마켓은 물론 넓게는 포털 서비스와 이용자와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넓은 문제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에픽과 앱스토어 소송 문제를 보다 중요하게 보고 있는 이유입니다.
덧. 앱스토어를 ‘앱’과 ‘게임’이 판매되는 곳이라고 봤을 때 동영상과 음악, 전자책 등을 서비스하는 넷플릭스, 아마존, 리디북스와 같은 곳은 앱스토어의 규정에서 어느 정도 제외된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애플도 음악과 동영상 등의 컨텐츠는 앱스토어가 아닌 앱에서 서비스하고 있죠. 그래서 넷플릭스는 상대적으로 앱스토어 규정에 자유로워보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