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IT 회사 취직 이야기(4)

인력 시장에 자신을 내놓은 후에 면접 제의를 받아서 갔던 회사들은 대부분 전에 다니던 회사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거기보다 조금은 나은(?) 그런 곳들이었습니다. 어차피 전회사의 사장님 말씀대로 저는 대기업 갈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죠.=_= 워낙 기획이라는 분야가 넓디 넓어서 IT 회사들이긴 하지만 거의 분야는 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는 SW 테스팅 기업이었습니다. 사전에 알아본바로는 무려 규모 500명정도 하는(!) 법적으로 대기업이었죠. 이 회사는 주로 소프트웨어 및 웹사이트, 모바일 디바이스와 각종 기기들의 테스트를 하청받아서 전문으로 테스팅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일단 일 자체는 상당히 재밌어보이는 분야였습니다. 평소에 모바일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것저것 써보는 것을 좋아해서 일단 솔깃했죠.그런데 문제는 연봉이었습니다. 사실 전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만해도 연봉에 최하한선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연봉은 아무래도 일단은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게 제 주의였다고 할까요.(물론 이렇게 말했다가 면접에서 “집이 좀 사시나봐요”하는 말을 듣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연봉에 하한선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딜가든 최소한 전 회사보다는 나아야한다.. 이것이 목표였죠.이 회사 “정직원”의 대졸 사원 기준 초임은 매우 암울했습니다. 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도 “미래를 설계하기가 조금 불투명”이었지만 이곳은 더 암담했습니다. 잠깐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받는 것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연봉..-_- 그도 그럴것이 주로 대기업 하청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데, 인건비를 줄이다보니 인원수는 많아지고 연봉은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일은 재미있어보였지만 현실은 현실이었기 때문에 합격하고도 이곳은 가지 않았습니다.두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는 UI/UX 전문 기업이었습니다. UI/UX를 전문으로 한다지만 말하자면 여기도 대기업 하청..-_- 앞에서도 나왔던 핸드폰 제조사 P사, L사, 이통사 K사 등의 제품들에 UI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이었습니다. UI 디자이너! 이것 또한 매력적인 일 아닐 수 없었죠. 또한 날이 가면 갈수록 중요해지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일단 면접 제의를 수락하고 회사로 찾아갔습니다.회사로 찾아가긴 갔는데 회사를 찾는데 여간 애를 먹은게 아니었습니다. 분명 약도와 주소는 맞는데 아무리 해도 회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근처에는 주택 밖에 없었거든요. 나중에 어찌어찌 찾아가보니 여긴 오피스텔에 사무실이 있는 일종의 가내수공업(?)적 기업이었습니다. 밖에는 물론이고 사무실에도 간판이 없어서 찾는데 무진 애를 먹었었죠(…)어쨌든 그렇게 면접을 진행하였습니다. 면접은 사장님과 1:1 면접으로 진행되었죠. 국내 굴지의 대기업 S전자에서 퇴직하셔서 이곳에서 CEO를 하고 계시던 분이시더군요. 면접은 그냥 이렇게 저렇게 진행되었는데 갑자기 노키아 N9의 UI적 장/단점에 대해서 물어보시더군요.(일종의 기습 질문이었던듯) 물을 만난 고기 기분으로 질문에 답하였죠. 그렇게 면접 분위기는 좋게좋게 흘러갔습니다.마지막에 질문 할 것이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전 회사에서 워낙 상상도 못한 금액의 연봉을 제시 받았던 지라 이곳에서도 연봉은 어떻게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곳도 대졸 초임 기준이 연봉 천만원대라더군요. UI/UX 전문가를 모신다면서(회사 채용 문구) 그 금액에 전문가를 모시려 하셨던 것일까요(생계를 꾸리기 힘든 전문가..OTL)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은 마쳤습니다. 결과는 나중에 알려주신다더군요.사실 대기업에 하청을 받는 것이 주 업무인 기업은 앞의 두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건비를 줄이려고 고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청사 직원들의 근로조건은 그리 좋을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죠. 그나마 제조업의 경우라면 다를지 모르겠지만 소프트웨어의 경우 하청 주는 대기업이나, 그리고 하청 받는 기업이나 모두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무나 뽑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사람이 제일 필요한 일인데 초기 이직율은 매우 크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서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근로조건을 더욱 나쁘게 만들고, 그래서 직원들은 또 떠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란 이런저런 회사를 겪어보니 확실히 치열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은 규모가 작은 기업일 수록 몸에 더 체감되었습니다. 처음 들어가서 일했던 회사의 경우 이상한 점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일단 회사에 결혼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고, 또 한가지는 회사에서 제일 오래 다닌 사람이 3년차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이 없으니 결혼한 사람도 없는 것이었죠.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제가 입사하기전 연차가 오래되어 연봉을 많이 받는 직원들이 사장님의 의지로 다 퇴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웹 에이젼시의 일이란 제한적인 프로세스를 따라서 하면 되는 일이고, 연차가 오래되었건 아니건 하는 일은 다 똑같다는 판단을 하셨던 것이죠. 똑같은 일을 한다면 연봉이 낮은 사람을 데려다가 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겠죠. 실제로 본사에도 거의 대부분(특히 디자이너들)이 신입인력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혹시라도 나중에 다 비슷해보이는 회사를 택해야하는 경우가 온다면 회사에 결혼한 직원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회사가 오래되었는데 결혼한 직원이 없다거나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는 이미 텄다는 이야기이죠.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셌는데요, 아무튼 UI/UX를 전문으로 한다는 이 회사는 업력은 얼마되지 않았는데 무려 1년반의 업력동안 CEO가 세번이나 바뀌는 등 영 수상한 움직임이 여러모로 감지되었습니다. 연봉에 대한 생각과 이런저런 생각이 겹치니 마음이 복잡해지더군요. 그렇게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타려고 나오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결과는 합격!(빠..빨라!ㅇㅂㅇ!) 하지만 역시 고사하고 말았습니다.세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는 모 벤처 기업이었습니다. 벤처는 벤처인데 강남 한복판에 사옥이 따로 있고(!?) 직원도 꽤 많은 그런 회사였습니다. 이곳은 모 게임 회사에서 대 히트작을 개발하여 대박을 낸 모 게임 개발자가 창업한 W 소셜 커머스(우리는 가격을 만든다..)의 자매 회사였습니다. 워낙 면접에서도 비밀 유지를 당부 받았기 때문에 하는 일과 업무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만..=_= IT에서 대박 신화라는 것은 대박을 치거나, 창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뛰어난 천재 개발자가 자기 업무를 열심히하여 개발자로서 성공했다!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이 회사에서 면접은 뭐 일반적인 면접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다대일 면접.. 일단 면접자들이 다 젊다는게 놀라웠는데 면접에서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는건지, 나를 어디에 쓰려고하는건지 갈피를 못잡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군요-_-;;(가령 게임 이야기하다가 UX 이야기하다가 리눅스 개발 이야기하다가..) 같이 갈피를 못잡다가 여기는 시원하게 불합격 되었습니다.다음에 면접을 본 회사는 모바일 앱 제작사였습니다. 이곳은 무려 모바일에서 연예인들이 헐벗는 사진을 서비스하는 “ㅇㅇ화보”를 운영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종목은 물론 모바일 기획자였죠. 이곳도 10년이 넘는 업력동안 여러 부침을 거듭해온 곳이었습니다. 피쳐폰에서 서비스하던 시절은 좋았지만 이후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생존을 위해 여러모로 발악을 하고 있는 곳이었죠. 그래도 이러한 큰 물결에서 휩쓸리지 않은 것만 봐도 어느정도 저력은 있는 기업이었죠.일단 1차 실무진 면접은 즐겁게 봤습니다. 특히 면접관 중 한분은 저의 이력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중국어 자격증은 왜 땄어요?”“그냥 제2외국어도 했었고 제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려구요.”“리눅스는 왜 하셨어요?”“그냥 철학과 이념이 좋아서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_-;;”면접보다보니 참 저도 그냥 되는대로 살았구나 싶더군요. 다행히도 이 인상이 좋게 비쳤는지 실무진 면접은 좋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대표이사 면접을 진행하니 정장을 갖춰서 입고 오라고 하더군요.다음날 회사로 다시 갔습니다. 면접 시간은 한시. 어쩐지 “면접장 안내도”라는 종이가 붙어있습니다. ‘대표 이사 면접은 나 말고도 여러명이서 진행하는 거구나’ 싶었는데 가보니 저 혼자 밖에 없더군요-_-(누굴 위해 붙여놓은거지)학교에서 일하다가 나온 것이어서 일단 점심을 먹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면접을 보고 먹으려고 했었죠. 근데 한시에 딱 도착하니 사장님이 다른 일이 있으셔서 좀 늦을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알았다고 하고 면접장(회의실)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한시간반이 흘렀습니다. 점심도 못먹은 상태로 두시 반까지 기다리니 사장님이 오시더군요. 늦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없이 일단 면접을 시작했습니다.첫번째로 물으신 질문은 이상적인 기업관이 있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평소의 이상적인 기업관은포탈 D사처럼 완전히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회사였습니다.(D사는 직위 호칭도 없이 모두 ~~님이라고 호칭을 하죠.) 워낙 딱딱한 조직 문화의 친구네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탓에(출근하면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 정사원들께 차례로 인사하고 앉아야하고 나갈 때도 그 순서대로 인사하고 나가야하는..) 이런 생각은 더욱 뿌리박혔죠. 그리고 사실 소프트웨어를 주 업으로 하는 회사에서는 수평 구조가 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제 이상적인 기업관은 수평적인 조직이다라고 답을 하니 딱 대학교를 막 졸업한 여대생들이 갖고 있는 회사관이라고 잘라 말하시더군요.(이게 왜?) “근무시간에 커피나 마시면서 잡담이나 하는 그런 회사는 드라마 속에나 존재하지 열심히 일하는 회사라면 절대 그럴 수 없다.” 놀라운 지론이었습니다.그래서 ‘사장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업관이 있습니까’라고 역으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언젠가 한국의 애플 혹은 구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시더군요. 현실은 이렇지만, 나는 비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해야한다!라고 자기 성찰적 반응까지! -_- 구글 같은 조직 문화를 부정하는데 목표는 구글이라. 나름 신선하기도 하고-_- 신기하기도 했습니다.저를 보신 사장님의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실무진 면접 점수도 좋고, 능력도 있어보이나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 츤츤” 뭐 인연이 안되는 건가보다-_-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렇게 한시간 넘는 면접을 보고(..끝나니 이미 세시반) 고픈 배를 움켜쥐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근데 학교에 다 오기도 전에 회사로부터 전화가 오더군요. 결과는 합격데레데레(…) 하지만 저는 이미 대표이사 면접으로 그만둔 전 회사의 기운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이곳도 거절했습니다.마지막 남은 한 곳은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습니다. 서비스는 어딘가 들어본 것 같은데 회사 이름 자체는 처음 들어보는..-_-a 이곳의 면접 방식은 좀 독특했습니다. 가기전에 과제로 PT를 준비해서 10~15분 정도의 PT를 해야했지요. 과제를 준비해야하긴 했지만 인터넷에서 이 회사로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다들 평이 괜찮았습니다. 복지도 좋고, 수평구조(!)였습니다. 면접 방식 또한 앞의 회사들과 달리 체계적이었고(물론 여기도 면접자는 저 혼자였지만..) 친절(?)했습니다.일단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장을 입고가야하느냐”에 대해서 “정장을 입고오지 말라는 답변을 들은 것이었습니다.(보통은 입고오라거나, 안입고와도 된다는 답변) 실무진 면접 때도 다들 평상복으로 입고 계시더군요. 과연 듣던대로 자유로운 기업이군 싶었습니다.그 이후 팀장님 면접, 대표이사 면접을 가각 거치는데 팀장님은 등산복을(…) 사장님은 후줄근한 스웨터를(…) 입고 오시더군요. 뭔가 신선한 충격. 확실히 면접을 보고나니 사장님 외 모든 직원은 ~~님으로 불리는 완전히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갖춘 회사더군요.면접 후 연봉 협상 또한 초봉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연봉 협상 테이블 같은 것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연봉을 먼저 부르고 그것을 되도록 따르는 방향으로 간다고 하시던.. 나름 그 전에 다니던 회사의 연봉에서 나름 욕심을 부려 많이 불러봤는데(그래봐야 적지만) 그대로 Accept. 연봉은 1:1로 매년마다 통보가 아닌 협상. 전 이 회사를 거부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저도 Accept!해서 지금까지 계속 이곳에서 다니고 있습니다. 면접 과정이 다른 회사에 비해 심하게 미화되었다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사실이었습니다-_- 처음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말리셨던 어머니도 지금은 오히려 잘되었다고 하시고.. 나름 첫 회사를 나와서 잘된 경우에 속하니 해피엔딩이라고 봐도 될까요?(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대박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 길고 지루하며 시시한 이야기는 일단 끝이 납니다.(그리고 지금은 한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내일 출근은…..)전에 다니던 회사를 나와 이곳에 합격했을 때의 제 심정은 한장의 그림으로 표현 가능합니다.



“우린 이제 살았어!”

(쥬라기 공원의 마지막 헬기 구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