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로서의 애플 워치

애플은 애플워치를 처음 소개했을 때부터 시계로 포지셔닝 시키고 있습니다. 시계라는 물건은 어쩌면 사치품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시계를 시간을 보려고 차지 않습니다. 옛날에야 그랬겠지만, 지금은 어디를 가도 시간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널려있습니다.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할 수도 있죠.

손목 시계라는 물건은 시간을 전달하는 목적에서 볼 때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제조 공정이 정밀해질 수록 비싸지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리 비싼 아날로그 시계라고 해도 0.001초 까지 정확하게 잴 수 있는 스마트폰보다 정확한 시간을 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에 있어서 손목 시계의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개성의 표현, 다시 말해 패션일 것입니다.

패션이라는 분야에서의 가치는 기능성보다는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격 등이 가치를 부여합니다. 똑같아 보이는 가죽 제품이어도 특정 브랜드에서 나오면 값이 몇배로 뛰는 경향이 있지요. 전자 제품에서는 특별히 보이지 않는 경향입니다.

애플 또한 애플 워치의 가치를 시계로서 부여했습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달리 애플 워치의 가격대가 다른 세가지 모델은 CPU나 램, 저장공간 등의 스펙이 모두 동일합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소재와 가격, 시계줄 정도입니다. 바로 애플은 스위스의 고급시계와 동일하게 기능성보다는 패션이라는 가치에 더 중점을 두었습니다. 바로 이점이 2,200만원짜리 애플워치 에디션 등이 나오는 이유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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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애플워치는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패션의 ㅍ도 모르는 저이지만, 애플워치를 차고 있는 것은 다른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는 것에 비해 좀 더 패션 악세사리에 가깝다는 느낌을 줍니다. 애플도 시계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많이한듯, 곳곳에 아날로그 시계스러운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디지털 용두라든지, 시계 뒷면에 소재와 시계 모델등을 원형으로 써놓은 부분 등, 애플워치는 디지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날로그 시계 같기도 합니다.

무게는 30g 정도로, 상당히 가볍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가볍지도 않은 그 정도입니다. 애플워치는 스포츠 모델보다 조금 더 무거운데요, 이 부분은 고급 시계의 묵직함과 비슷합니다. 또한 밀레니즈 루프를 비롯해 다양하고 예쁜 시계줄을 개성에 맞게 조합하여 착용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스마트워치들이 갖고 있는 최대의 문제점인 “계속 차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운 부분”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많이 보입니다.

여전히 말이 많은 가격도, 제가 보기엔 패션의 한 요소로 보입니다. 가격이 너무 싼 시계는 아무리 시간이 정확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같은 기능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 가격 자체가 패션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경우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명품”이죠.

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 중에 독보적으로 비싼 가격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모델만해도 가격이 내렸다곤 해도 상당히 비쌉니다. 하지만 애플워치가 다른 스마트워치의 가격대였다면  역설적으로 지금과 같은 판매량을 올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가격이 비싼만큼 희귀해지고, 그 희귀함이 가치를 부여하는, 그런 오묘한 분야가 바로 패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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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계줄은 애플워치의 패션적인 가치를 높여주는 중요한 아이템이죠. 애플워치에 조합하여 쓸 수 있는 시계줄의 조합은 상당히 많고 다양합니다. 많은 시계 매니아들이 좋아하는 소위 “줄질”이 가능한 것이죠. 시계줄의 조합으로 애플워치는 같은 모델이라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바로 어제 판매를 시작한 에르메스 줄부터 스포츠밴드까지, 애플이 시계줄에 보이는 관심을 보면 애플워치가 단순 기기가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서 보이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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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는 스마트워치로서 기존의 시계들이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요소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바로 다양하게 움직이는 시계 페이스들이죠. 비록 아직은 애플이 만들어놓은 디자인의 페이스만 사용할 수 있지만 미키마우스가 시간을 가리키면서 발을 까딱거리거나, 해파리가 시계에서 유유히 헤엄치거나 하는 효과들은 스마트워치만이 가능한 기존 시계들은 불가능한 영역일겁니다. 다만 애플워치는 사각형인데 반해 애플이 만들어 놓은 시계 페이스는 원형으로 제작되어 있어서 약간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이렇듯, 애플이 애플워치를 패션 아이템으로 위치시키려는 이유는 뭘까요? 시계는 스마트폰과 달리 필수적인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워치는 좋은 기능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게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현재 스마트워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여기에 “패션”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손목 시계들도 딱히 시간을 알기 위해서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애플은 알았던 것이죠.

사실 전자 기기를 패션 아이템이나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둔갑 시키는 재주는 전 세계에서 애플만이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사과가 하얗게 빛나는 맥북이나 얇고 매끈한 아이폰은 그 자체가 패션이나 인테리어의 소품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괜히 카페에서 맥북을 열어놓고 딴짓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기도 했죠. 지금은 시대가 지났지만 아이팟도 그 자체가 “패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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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애플워치에 했던 그러한 실험은 1년이 지난 현재로 볼 때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애플워치는 나온지 1년만에 전세계 웨어러블의 50%를 넘게 차지했습니다. 스마트워치가 아니더라도 손목에 무언가를 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시계나 팔찌대신 애플워치를 찾게되는 경우도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제조사들이 애플워치보다 더 훌륭한 스마트워치를 만들기도 하지만 매일 손목에 차는 물건으로서의 경쟁에는 다소 밀리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뭔가 아쉽습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맥북이나 아이팟 등은 애플이 딱히 패션으로 마케팅하지 않아도 그 자체의 디자인만으로 패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워치는 애플이 작정하고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맥북이나 아이팟만큼의 효과를 아직은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현재 설계에서 디자인의 문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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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는 생각보다 꽤 두껍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두꺼운 시계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애플워치 가격대의 시계들에 비하면 너무 두껍습니다. 깔끔한 디자인에 비해 두꺼운 이 두께는 셔츠를 입을 때 손목에 걸리거나, 양복을 입을 때도 계속 걸립니다. 알림이 오면 겸손하게 두드려주는 탭틱 기술에 비해 디자인은 여전히 나 여기있소!라고 소리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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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시계 페이스의 유려함을 장점으로 들었는데, 문제는 그 시계 페이스가 대부분 꺼져있다는 것입니다. 시계 페이스가 꺼져있다는 점은 의외로 사용자가 시간을 볼 때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애플워치는 모션 센서를 이용해 사용자가 시계를 보는 순간을 알아차립니다. 이게 생각보다 정확해서 시간을 확인할 때는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시계 페이스가 꺼져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들이 시계를 볼 때입니다. 패션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관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용자가 아무리 그날 내가 입고 있는 옷에 잘 어울리는 시계 페이스를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내 시계를 볼 때는 그저 검은 화면만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이 부분이 애플워치가 아날로그 시계에 비해 불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지금의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기술로는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애플이 이 분야에서 최고의 브랜드다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애플은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에서, 맥북으로 노트북에서 나름대로의 명성을 갖췄지만, 손목 시계를 애플이 가장 잘만든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시간이 좀 지나야하긴 하겠지만, 기기적인 관점에서도 애플워치는 여전히 해결해야할 숙제가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시장에서는 경쟁자들도 아직 변변치 않은게 사실이기 때문에 2세대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애플워치가 발표되는걸 보면서 지금보다는 미래를 위한 기기가 아닐까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써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애플워치 1세대의 목적은 사람들의 인식을 깨고 들어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손목에 채워지는 것이 목표인 것 같습니다. 애플워치 1세대를 샀던 사람들은 2세대를 살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의 손목에 애플워치가 설치된다면, 애플이나 서드파티 개발자들이 할 수 있는 것 또한 많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애플워치를 사려고 하시는 분들 중, 애플워치가 아이폰처럼 삶의 큰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애플워치를 비롯한 스마트워치는 당분간(2~3년내로는) 사지 마시기를 권합니다. 지금의 스마트워치로는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손목이 뭔가 허전한데 이것저것 다양하게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신다면 애플워치를 고려해볼만합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가격이 내려가서 지르긴 했지만 WWDC에서 두께가 얇아진 애플워치 2세대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애플워치 스포츠 모델 구매자들은 가격이 내려간 지금은 충분히 메리트가 있지만, 애플워치나 에디션 구매를 예정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기다려보는 것을 권합니다. 2세대가 어떤 형태로 나올지는 감이 잘 안잡히네요. 제 생각에는 현세대 애플워치를 대체하기보다, 새로운 라인 확장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Pro 라인이나 Lite 라인으로) 자세한건 더 나와봐야 알겠죠.(솔직히 속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반품을 갈등하고 있습니다.)

애플워치는 써볼수록 다양한 모습이 보이는 신기한 제품입니다. 아직 여러모로 아쉬운 측면이 많이 남아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제품이고, 항상 손목에 차고 싶어지는 물건입니다. 애플워치를 쓴 이후로는 기존의 손목 시계들이 지나치게 “멍청”해져보일 정도입니다. 애플워치가 손목에 감겨 있는 한 사용자는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생활 습관이 바뀌어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OS나 새로운 세대가 나오면 더 발전하겠죠.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