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유기를 새로 구매했습니다. 최근 인터넷 품질이 눈에 띄게 안좋아지고 있어서 구매한건데 생각보다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속도가 그렇게 느린건 아니었지만 계속 뚝뚝 끊기고 반응이 없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험상 보통 이런 경우는 채널이 문제라서 채널 설정을 파봤는데 예전보다 공유기 채널 설정이 여러모로 복잡해졌더군요. 약 6개월 동안 이것저것 설정을 바꾸면서 알게된 Wifi 채널 폭 관련된 지식들을 (저도 잊어 먹기 전에) 정리해볼까 합니다.
채널이란
일단 Wifi의 채널이란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Wifi의 채널이란 신호가 오가는 통로를 의미합니다.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주파수라는건 정해져있기 때문에 신호가 중첩될 경우 주파수 간 혼선이 생깁니다. 이런 혼선을 피하기 위해 공유기에는 채널 설정이 있고, 간섭이 적은(한산한) 채널이 존재합니다.
2.4Ghz 시절(Wifi4)에는 공식처럼 중첩이 생기지 않는 채널이 정해져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보통 채널 1, 채널 6, 채널 9, 채널 13 이렇게 네가지 채널이 중첩이 발생하지 않는 채널로 많이 사용됩니다. 특히 채널 13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만 사용 가능한 채널이라 외국 공유기에서는 지원하지 않거나 호환성이 떨어져서 일부러 신호 간섭을 피하기 위해 채널 13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5Ghz로 오고 802.11ac(Wifi5) 시대가 되자 이 채널의 중요성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5Ghz 주파수는 고속의 주파수로 신호와 신호 사이의 간격이 좁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속도가 빠른 대신 범위가 좁다는 특성 덕분에 옆 집이 같은 채널에서 공유기를 쓰고 있어도 간섭이 적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만해도 5Ghz 공유기가 많지도 않았죠.
하지만 5Ghz 공유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슬슬 5GHz 대역도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공유기가 벤딩(bending)이라는 기능으로 주파수 대역(채널폭)을 넓히면서 나도 모르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게 되었죠. 제가 겪은 문제도 이 때문입니다.
그럼 채널폭이란?
채널폭(Bandwidth)은 위에서 말한 채널의 폭을 의미합니다. 채널을 하나의 터널이라고 가정하면, 폭이 넓을 수록 많은 차량들이 오갈 수 있을 겁니다. 채널 폭이 늘어나면 그만큼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래서 공유기 회사들은 벤딩이라는 기술을 활용하여 근처의 주파수를 묶어서 대역폭을 넓히는 기능을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Wifi의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죠.
국민 공유기 iptime 기준으로 Wifi6(802.11ax) 공유기의 기본 채널 폭 세팅은 160Mhz 인데, 이건 2.4Ghz 시절의 공유기 기본 설정인 20Mhz에 비하면 8배나 넓은 겁니다.주변의 채널 8개를 하나로 묶어서 하나의 채널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죠.
채널폭이 넓으면 무조건 좋은거 아닌가요?
하지만 폭이라는게 무한히 넓어질 수는 없죠. 옆 도로나 터널을 침범할 정도로 넓어진다면 교통 체증과 혼란이 시작될겁니다. 채널폭이 넓다고 무조건 좋은건 아닌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폭이 8배나 넓어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옆 채널과의 간섭이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 넓은 채널폭을 쓰게 되면 그만큼 인터넷이 끊기는 일도 많아지게 됩니다. 게다가 아파트 같이 좁은 공간에서 이웃도 8배 넓은 채널폭을 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펼쳐지는거죠.
게다가 160Mhz 채널폭을 쓰면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도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채널 36에 설정되는데, 그 외의 채널은 대부분 DFS 대역으로 설정 됩니다. 5Ghz 대역은 개인용 공유기 뿐 아니라 군사용 레이더나 통신에도 사용되는 대역인데, DFS 대역은 만약 그러한 통신이 오면 법적으로 무조건 비워줘야 합니다. 못 쓰는건 아니지만, 군사용 통신 장비에 우선 할당되기 떄문에 근처에 DFS 대역에 대한 요청이 오면 그 즉시 끊깁니다.
뭐 살면서 집 근처에 레이더 볼 일이 얼마나 있겠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자주 끊깁니다. 한번 대역을 비워주면 1분 동안 재스캔이 발생하기 떄문에 그 시간 동안 인터넷을 못씁니다. 그냥 쓰지 못하는 채널이라고 생각하시는게 편하겠죠.
즉 160Mhz 채널폭은 속도는 빠르지만 간섭도 많은데다 채널을 변경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래저래 간섭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넓다고 무조건 좋은건 아니라는 거죠.
그럼 어쩌라는건가요
썰이 좀 길었는데 결론은 Wifi에서는 2.4Ghz냐 5Ghz 대역만큼이나 채널과 채널폭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간섭이 적은 채널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고, 채널폭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채널폭을 넓힐 수록 속도는 올라가지만 그만큼 간섭도 심해집니다.
하지만 채널의 갯수가 엄청나게 많은데 이걸 하나하나 테스트해보면서 결정하는 것도 스트레스겠죠. 그래서 쉽게 결정하실 수 있도록 나름대로 가이드를 만들어봤습니다.
전 2.4Ghz 공유기를 쓰고 있어요
이 경우는 답은 정해져있습니다.
적합한 채널 : 채널 1, 채널 6, 채널 9, 채널 13 중 선택
채널 폭 : 20Mhz
2.4Ghz 대역의 경우 주파수 간섭이 적은 채널은 정해져있습니다. 위의 채널 중 하나를 선택하고, 특히 공유기의 채널 자동 변경 기능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변에 해당 채널을 사용하는 공유기가 많아도 간섭이 적은 채널을 고정해서 쓰는게 훨씬 빠릅니다.
또한 2.4Ghz 공유기는 802.11n이 최대로 채널폭을 40Mhz로 해봐야 Wifi 규격이 전체 속도를 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채널폭도 20Mhz로 고정해주시면 좋습니다.
전 5Ghz 공유기를 쓰고 있어요
여기는 좀 복잡합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용도를 결정해야합니다. 만약 끊김없는 인터넷을 원한다면 제 기준에서는 다음과 같이 추천합니다.
적합한 채널 : 채널 149 또는 자동
채널 폭 : 40Mhz
149 번 채널은 사실 이유는 없지만 많은 공유기의 기본 채널이고, 제가 테스트해본 결과로도 가장 호환성과 성능이 좋은 채널이었습니다. 하지만 149가 너무 혼잡하거나 끊긴다면 자동으로 두셔도 좋습니다.
채널 폭은 인터넷 속도에 따라 다른데, 저희집의 경우 기가랜의 절반 속도를 쓰고 있어서 거의 40MB ~ 50MB 정도 나오는 40Mhz로 선택했습니다. 이 쪽이 속도를 희생하지 않으면서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전 기가랜을 쓰는데요
기가랜을 쓰고 있다면, 당연히 5Ghz 대역을 쓰고 계실겁니다. 약간의 간섭은 감수하더라도 속도를 최대한 살리는게 좋겠죠.
적합한 채널 : 채널 149 또는 자동
채널 폭 : 80Mhz
80Mhz는 거의 70MB ~ 80MB 정도의 속도가 나오므로 이 정도가 가장 타협할 수 있는 한계점입니다. 사실 80Mhz만 되더라도 간섭이 서서히 끼기 시작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전 게임 스트리밍이나 클라우드 게임을 해요
이 경우는 유선랜을 쓰시는게 낫습니다.
… 하지만 굳이 설정을 추천한다면 전 아래를 추천합니다.
적합한 채널 : 채널 149 또는 자동
채널 폭 : 20Mhz 또는 40Mhz
게임 스트리밍의 경우 최대 4k로 하더라도 80Mbps 정도만 소모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설정이어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간섭을 최소화해서 끊김을 줄이는게 더 중요합니다.
전 인트라넷 속도가 더 중요하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요
일단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은 분명 공기 좋고 물 맑은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계시겠죠. 채널폭 160Mhz 대역은 여러분을 위해 존재하는 대역입니다. 간섭에 위험 없이 쓸 수 있고 인트라넷 속도가 더 중요하다면 아래 설정을 추천합니다.
적합한 채널 : 채널 149
채널 폭 : 160Mhz
바꿔말하면 채널 대역폭이 160Mhz는 기가랜이어도 인터넷 속도로는 좀 과분할 정도라는 이야기도 됩니다. 인트라넷에서 최고의 속도를 뽑아야한다면 (그리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면) 과감하게 160Mhz 설정을 추천합니다.
마무리
그동안 제가 공부한 여러 지식과 MS, IBM 등에서 추천하는 Wifi 설정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가이드를 만들어봤습니다. 제 경우 채널과 채널폭을 둘 다 맞게 수정해준 다음에야 인터넷이 끊기는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제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채널 : 자동
채널 폭 : 40Mhz
혹시 저 같은 문제로 고통을 받으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오랜만에 긴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