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 프로젝트가 14.10이 나오는 10월 23일이면 최초의 안정 버전 4.10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10주년이 됩니다. 솔직히 우분투를 처음 쓸 때만해도 10주년이 되는 날이 올거라곤 생각 못했네요. 그때까지 남아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수준이었는데 이젠 가장 규모가 큰 리눅스 배포판이 되었죠.
우분투 10주년을 맞이하여 뭔가 기념용(?) 포스팅을 위해 간략하게 과거, 현재, 미래의 우분투에 관한 생각들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인류를 위한 리눅스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1993년에 처음 리눅스 커널을 개발한 이래로 운영체제계의 이슬람교이자 저항정신으로 세력을 넓혀왔습니다. 공유와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GNU 정신을 바탕에 둔 리눅스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정의로운 것”으로 느껴졌고, 이미 운영체제 산업을 지배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마로서 훌륭하게 포지셔닝 했죠.
유닉스의 표준 디스플레이 시스템인 X윈도가 포팅되면서 리눅스는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수준의 운영체제로 다시 한번 도약합니다. 그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는 리눅스 데스크탑 배포판들이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레드햇도 이때 시작했죠.
X윈도는 그 위에서 실행되는 인터페이스를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GNOME이나 KDE, xfce, matchbox, Open Box 등 수 많은 데스크탑 인터페이스와 GUI 툴킷, 창관리자가 난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프로그램 설치 방식까지 레드햇 패키징과 데비안 패키징 방식으로 나뉘면서 파편화가 시작되고 데스크탑 역량이 분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인터페이스를 쓰느냐, 어떤 패키징 방식을 쓰느냐 등등 조합에 따라 수천가지 리눅스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선택의 자유는 있었지만 그것은 리눅스를 만드는 벤더의 자유이지, 사용자의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데스크탑 리눅스도 사용자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데스크탑 리눅스 세계에서 가장 소외 당한건 사용자였습니다.
우분투는 이런 상황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용자를 중심에 두고 보기 시작한 최초의 리눅스 배포판이었죠. “인류를 위한 리눅스”라는 다소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했지만 우분투의 지향하는 바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10년간 우분투는 쉬운 설치와, 무료 CD 배송 프로그램, 친근한 디자인으로 데스크탑 리눅스에 대한 사용자의 접근 장벽을 낮추는데 기여했습니다.
사실 우분투가 데스크탑 리눅스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리눅스 데스크탑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많이 허물어졌다는 것이죠. 예전 같으면 “웹 서버 운용을 위해 리눅스를 설치해볼까”의 수준이었다면, 이젠 “스팀에서 주는 Tux 모자를 얻기 위해서 리눅스를 설치해볼까” 정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분투의 세력은 빠르게 늘어났고, 곧 데스크탑 리눅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포판이 되었습니다. 레드햇이나 CentOS도 많이 사용되지만 일반적인 사용자가 일상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배포판은 우분투와 우분투 계열 운영체제가 압도적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자유 운영체제
우분투는 현재 인류를 위한 리눅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우분투 보다 더 쉬운 컴퓨터 운영체제(iOS, 안드로이드)가 대세로 거듭나고 있고, 안드로이드 같은 오픈소스 운영체제가 마소의 독점을 많이 꺾은 상태입니다. 우분투의 버그 1번(“마이크로소프트가 컴퓨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도 지금은 해결되었습니다. 예전만큼 우분투의 배포판 릴리즈 소식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럼 우분투의 현재 모습은 무엇일까요? 저는 우분투의 가치를 자유 운영체제에서 찾고 있습니다. 우분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누구나 수정할 수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는 자유 운영체제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조립용 PC에서 운영체제의 비용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오래된 PC의 서버용 운영체제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회사에게는 플랫폼화되고 있는 기존의 운영체제 강자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윈도의 라이선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분투를 선택한 뮌헨 정부도 그렇고, 최근 “한국형”(..) 운영체제를 만든다는 우리나라 정부도 우분투(민트) 기반의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습니다.
스팀이나 크롬처럼, 기존 운영체제 위에서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플랫폼을 갖고 있는 벤더는 우분투를 기반으로 고쳐서 기존 운영체제(윈도우즈)의 횡포로부터 독립된 OS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우분투 덕분에 컴퓨터 세계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Unity
최근 우분투의 전략으로 볼 때 앞으로 우분투가 나아갈 방향은 Unity로 보입니다. Unity는 우분투에서 탑재한 인터페이스의 이름이죠. 우분투는 배포판 최초로 독자적인 데스크탑 환경을 개발하여 탑재하는 배포판입니다.
Unity는 철저하게 사용자 의도 지향(User Intent-Driven)형 UI입니다. 사용자가 하고자하는 것을 입력하면 운영체제에서 앱을 추천해주거나 적당한 파일을 추천하거나 웹 검색 결과를 보여줍니다. 파워 리눅서보다 리눅스 앞에만 서면 아득해지는 초보 사용자들을 위한 인터페이스입니다.
Unity는 곧 우분투가 배포판 자체의 개선에서 나아가 데스크탑 환경 같은 외부 프로젝트(곧 GNOME)에서 주도하던 영역까지 통제하려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분투는 곧 X윈도를 대체하는 Mir 같은 디스플레이 서버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탑재할 예정입니다. 여러군데 분산되어있는 데스크탑 리눅스 요소를 자기네가 다 해먹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리눅서들은 우분투가 선택의 자유를 뺏어간다고 말하지만, 저는 우분투가 일반 사용자들과 개발자들을 리눅스의 정신나간 선택의 딜레마로부터 해방 시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Unity와 Mir는 데스크탑 컴퓨터 뿐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우분투는 밝히고 있습니다. 분산되고 파편화된 데스크탑 리눅스의 힘을 합치고, 여러 디바이스에서 사용자에게 통합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우분투의 최종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밝지만은 않은 미래
하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습니다. 우분투의 스마트폰 진입 시기는 상당히 늦었고, 실제 제품도 올해 연말에나 선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만약 스마트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안드로이드에 비교해 어떤 우위를 갖고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태블릿도 상황은 비슷해 보입니다.
데스크탑은 우분투 뿐 아니라 다른 PC 운영체제도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분투의 새로운 배포판 소식도 예전처럼 떠들썩하지 않고 조용하게 지나가는 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염려되는 것은 우분투 개발을 주도하는 캐노니컬의 수익성 악화입니다. 우분투는 수익 사업이었던 Ubuntu One 서비스도 접은 상태이고, 우분투만의 어떤 독자적인 플랫폼이나 서비스 구축에 실패한 상태입니다. 굳이 우분투가 아니라 리눅스 민트를 쓴다고 해도 다를바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분투 소프트웨어 센터도 플랫폼이라기보단 저장소 설치 프로그램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캐노니컬은 다른 리눅스 벤더처럼 데스크탑 사업보다 클라우드나 서버 쪽 유지 서비스로 대부분의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우분투의 주력인 데스크탑 리눅스도 예전만큼 캐노니컬에서 비중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희망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웹 앱과 모바일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리눅스에게는 금단의 영역이던 게임마저 리눅스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결제나 뱅킹은 모바일로도 가능하죠. 제가 평가하기에 지금은 최근 10년 중 리눅스 데스크탑을 쓰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아직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리눅스가 다른 플랫폼을 따라잡기는 힘들어보이지만, 일상적인 용도의 컴퓨팅에서는 리눅스 데스크탑은 다른 운영체제와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분투로서는 오히려 PC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의 경향에 따라 보안과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 의식이 강조될 수록 우분투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죠.
10년간 우분투는 많은 것을 변화 시켰습니다. 데스크탑 리눅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위한 도피처로서 작용하였으며, 저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하게 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우분투가 할 일은 아직 많아 보입니다. 우분투가 사용자를 향한다는 방향을 잃지 않는 이상,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분투의 미래는 당분간 문제 없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