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스마트워치와 애플워치를 거쳐오면서 들었던 생각은 스마트워치는 너무 스마트워치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스마트워치 여기있소! 하는 것 같은 그런 디자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이건 현존하는 스마트워치 중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애플워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플워치와 중국산 스마트워치 둘 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긴팔 소매를 입으면 소매 밑으로 가려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불편함 뿐 아니라 앞에서 말했던 스마트워치임을 돋보이는(?)데도 한몫합니다. 소매로 가려지지 않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 또한 당연히 받을 수 밖에 없죠.(그나마 애플워치는 디자인이 좋고 관심이 가는 기기기 때문에 긍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만)애플워치를 이전 글에서 시계처럼 봤을 때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했습니다만, 여전히 일반적인 시계보다는 튀는 점도 있고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현존하는 스마트워치 중 가장 시계스럽고, 정말 시계스럽고, 무척이나 시계스러운 물건은 무엇이 있을까? 이게 바로 제가 다음 스마트워치인 페블 타임 라운드를 선택하게 된 배경입니다.
E-Paper 디스플레이
페블 타임 라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컬러 E-Paper 디스플레이를 썼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LCD가 아니라 전자책 등에서 쓰이는 E-ink 기술과 유사한 기술입니다. 바로 이 디스플레이 덕분에 페블은 다른 스마트워치들이 공학적으로 뛰어넘지 못하는 부분을 장점으로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마트워치의 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처럼 LCD나 LED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디스플레이는 전력을 많이 잡아먹을 뿐 아니라, 밝은 태양 아래에서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어 더욱 백라이트를 켜야 합니다.
따라서 야외 활동이 많고 충전이 쉽지 않은 스마트워치는 사용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배터리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두껍고 커다란 스마트워치의 디자인에 일조하는 부분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 1일~2일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습니다.
또한 켜져있을 때 배터리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항상 꺼져있다가 시계를 보는 동작을 할 때만 켜지거나 합니다. 애플워치는 놀랍도록 시계를 보는 동작을 정확하게 인지해서 켜지긴 하지만, 그래도 항상 “시계를 보는 동작”을 해야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불편했습니다. 손목 시계로 힐끗하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페블에서 쓰는 E-Paper 디스플레이는 LCD나 LED와 달리 켜져 있는 상태에서는 전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 갱신할 때만 소모합니다. 또한 태양광에서 잘 보이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백라이트가 달리 필요하지 않죠. 극단적으로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페블은 이렇게 야외로 나오면 더더욱 잘 보입니다.(백라이트는 Off한 상태)이렇게 항상 켜져있고 태양광 아래에서 잘 보이는 디스플레이는 “손목 시계”로서눈 정말 탁월한 선택입니다. 화면이 갱신될 때만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시간 화면의 변화가 거의 없는 시계에게는 안성맞춤이죠. LED는 특정 화면이 오래나올 경우 번인 현상이 생기곤 합니다. LED를 사용하는 애플워치도 벌써 번인 현상이 생긴다는 보고가 오고 있습니다. 페블에서는 그런 일은 없죠.
다만 E-Paper는 표현할 수 있는 색상이 제한되어있습니다. 또, 갱신될 때 전기를 소모하기 떄문에 화면이 자주 바뀌거나 역동적인 경우 오히려 LCD보다 배터리를 더 많이 소모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이 제한적이고 화면도 제한적이죠. 애플워치에 있는 역동적인 해파리나 발을 구르는 미키마우스 시계를 볼 수 없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배터리와 디자인
페블에서 만드는 시계들은 E-Paper라는 디스플레이의 힘으로 비약적으로 높은 배터리 지속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대부분 1주일~10일 정도 지속됩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어느정도의 사용시간을 유지하면서 배터리 용량을 줄이고 더 가볍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패블은 페블 타임 라운드를 통해 이 부분을 극단적으로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페블 타임 라운드의 두께는 정말 극단적으로 얇습니다. 같은 원형 시계인 모토 360이나 갤럭시 기어 등이 11mm가 넘고 심지어 애플워치도 10mm가 넘는게 반해, 페블 타임 라운드는 6.4mm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면 일반 아날로그 시계보다도 훨씬 얇은 수준이죠. 이 정도 크기와 두께안에 CPU를 비롯한 기판과 배터리가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무게도 28g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가볍게 찰 수 있습니다.
얇고 가볍기 떄문에 여성용 시계로서도 좋습니다. 검은색 20mm 시계는 특유의 번들 가죽줄과 함께 착용하면 너무 얇고 간단하게 생겨서 “수능 시계(…)”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14mm 골드/화이트 색상의 시계는 정말 예쁩니다.“웨어러블”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페블 타임 라운드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냥 일반적인 시계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가볍게 항상 차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로인해 희생한 배터리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른 페블 시계는 7일~10일 정도 지속 가능하지만 타임 라운드는 워낙 배터리 용량이 작아 1일 ~ 2일 정도 밖에 지속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시 배터리 용량이 작아 충전도 빨리됩니다. 약 10분 정도 충전하면 하루를 사용할 수 있다보니 출근하기전 준비하면서 잠깐만 꽂아둬도 배터리가 충분합니다. 다만 장기간 여행을 갈 떄는 충전 케이블과 충전기는 반드시 같이 갖고 가야하는 불편함은 있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은 바로 한눈에도 보이는 두꺼운 배젤입니다. 아직 E-Paper는 원형의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없기 떄문에 불가피하게 저렇게 두꺼운 배젤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계 크기에 비해 화면이 작게 보이는 것은 분명 디자인 적으로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쓰다보면 이 부분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Pebble OS
페블은 기본적으로 안드로이드와 iOS를 둘 다 지원합니다. 안드로이드와 iOS를 쓰는 스마트폰에서는 페블의 알림 기능, 앱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알림은 신뢰할만한 수준입니다. 현재까지 스마트폰에서 오는 알림을 시계에서 못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시계에 전달되는 알림은 시간차가 약간 있기 때문에 간혹 스마트폰의 진동을 먼저 느끼고 시계를 통해 알림을 보게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한글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한글 언어팩을 다운로드해서 설치해야 합니다. 예전 사용기 중에는 한글 언어팩을 설치하려면 안드로이드폰이 있어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폰에서도 한글 언어팩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에서는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으면 시계로 알림을 전송하지 않고 아이폰이 잠금 상태일 때만 시계로 알림을 주는 스마트한 기능이 있었지만 페블은 그렇게까지 지원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문자라도 하나 오면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에 이어 시계까지 네번에 걸쳐 알림을 주니 놓칠래야 놓칠 수가 없습니다.
알림 기능 외에 Pebble Health라고 하여 건강 기능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건 페블이 “다른 스마트워치도 지원하니 우리도 해야겠다” 싶어서 넣어놓은 것 같습니다. 걸음 수 측정이 비교적 정확하지 않고 수면 추적에도 한계가 있습니다.(시계를 잠깐 풀어놔도 그 사이에 잠잔걸로 나온다든지..)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걸음수와 수면 데이터 보정을 하고 난 뒤 약간 나아졌지만 걸음수가 초기화되지 않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건강 기능은 아무래도 애플의 Healthkit을 등에 업고 있는 애플워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건강 앱은 Misfit 같은 서드파티 앱을 설치하는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Pebble에서 실행되는 Pebble OS는 SDK를 지원하고 있으며 앱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시계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몇가지 앱과 게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워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뽀모도로 타이머였는데요, 시계에 가장 적합한 앱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동작하는 앱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WatchOS의 구조 떄문인 것 같은데 동기화하다 꺼지거나, 혹은 제대로 시간 표시가 안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페블에서 쓰는 Solanum 같은 앱은 시계에 적합한 UI를 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기능을 다 갖추고 있어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줄질
애플워치를 출시하면서 애플이 왜 이렇게 시계줄을 많이 출시하는건지 의문이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손목 시계를 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게 바로 줄질이더군요. 어느정도 세팅이 끝나자마자 줄질을 시작했습니다. 페블 타임 라운드는 애플워치처럼 전용 시계줄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20mm 표준 시계줄을 사용할 수 있어서 일반 시계방에 가서도 줄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페블 타임 라운드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번들 가죽줄은 무난하고 편하지만 내구성이 좋지는 않습니다. 또한 모양이 지나치게 무난해서 검은 시계알과 같이 보면 마치 수능 시계처럼 보입니다.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시계를 고정하는 구멍도 얼마 쓰지 않아 주름이 지더군요.
가죽줄 이후 바로 인터넷에서 구매한 3천원짜리 나토밴드입니다. 생각보다 페블 타임 라운드에 잘 어울려서 만족했습니다. 나일론 천 시계줄은 여름에 좋은 것 같습니다. 애플워치도 나일론 우븐 밴드였는데 생각보다 편하게 착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계줄의 문제는 역시 가격답게 저렴한 퀄리티가 문제였습니다. 마감이 좋지 않아 손목을 따갑게 자극하는 경우가 많았죠.
여러가지 고민 끝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줄은 밀레니즈 루프입니다. 애플에서 올해 3월 블랙 밀레니즈 루프 밴드를 출시했을 때부터 검은색 밀레니즈 루프 줄이 너무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바로 시계줄만 25만원이라는 가격 때문이었죠(…) 페블 타임라운드용 표준 20mm 밀레니즈루프(주로 중국산)도 가격이 만만치는 않아서 많이 고민했지만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아서 만족하며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페블 타임 라운드 구매가 + 밀레니즈 루프 가격을 다 합쳐도 애플워치 블랙 밀레니즈 루프 밴드 가격보다 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