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트램폴린에서 뛰어 다니는 영상

어제부터 인터넷에서 꽤 인기를 끌었던 동영상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집 뒷 마당의 CCTV에서 찍힌 것으로 보이는 영상입니다.

뒷 마당에 큰 트램폴린이 설치되어있는데 토끼 무리가 관심을 보이더니 그 위에서 뛰어다닙니다. 트램폴린이 재밌는지 다른 토끼들도 들어와 같이 뛰어다닙니다. 토끼들이 마치 트램폴린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귀여운 모습으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던 영상입니다.

저도 어제 블루스카이에서 봤던 영상인데 귀여워서 리트윗했습니다.(물론 블스는 리포스트입니다만, 아직도 리트윗이란 말이 입에 더 잘 붙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 알고보니 AI로 만들어진 “가짜 영상”입니다. 저도 오늘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오늘 동일한 구도에서 강아지들이 트램폴린에서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고 의심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온갖 동물들이 트램폴린에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공룡에 곰이랑 기린도 뛰어다닌다

처음 봤을 때는 AI로 만든 영상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인터넷에서 나오는 7초 짜리 영상을 누가 심도있게 분석하겠어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AI로 만든게 티가 납니다. 혹시 잘 안보이신다면 영상 처음에 나오는 토끼 중 아래 토끼의 움직임을 따라가보세요.

이 영상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전 AI로 만든 영상의 퀄리티가 어느정도 좋아지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속이는게 어려울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 영상은 해상도도 낮고 화질도 낮은 영상입니다. 하지만 CCTV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속이는데는 충분했죠. AI가 사람들을 속이려면 좀 더 사실적인 영상이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SNS에서 흔히 보는 이런 영상과 사진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현실을 AI에게 프롬프트 몇 줄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토끼가 트램폴린 위를 뛰어다니는 만화 같은 풍경이 현실에서 실제로 포착되자 사람들은 좋아요를 많이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이 AI라는 것이 판명되자 인기는 빠르게 식었죠.

왜 그랬을까요?

그건 사람들이 현실의 어딘가에서는 ‘토끼들이 뒷 마당의 트램폴린 위에서 뛰어다니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삭막한 현실을 사는 현대인에게 어느정도 힘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건 SNS의 수 많은 강아지와 고양이 영상들이 맡고 있던 역할이었죠.

하지만 AI가 이런 현실을 만들어낸다? 과연 그런 영상과 사진들이 우리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AI가 이런 영상을 만들어냄으로써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오히려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AI가 만들어낸 영상이라는걸 알자마자 빠르게 식는거죠.

예전에 주요 스마트폰 제조사의 카메라 담당 임원이 “사진”이라는 것에 대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때 애플은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사진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사진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개인적인 축하이다. 사진은 멋진 커피 한잔처럼 단순한 것이거나, 내 아이의 첫걸음, 부모님의 마지막 숨결까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사진은 인생의 지표이고 축하받을 가치가 있다.

이 말대로 사진이나 영상이나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똑같이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건 영원히 가짜일 수 밖에 없는거죠. 토끼가 트램폴린을 뛰어다니는 단순한 영상 하나 때문에 인터넷에 존재하는걸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생각이 복잡해진 지금입니다. 결국 믿을 수 있는건 애플 임원이 말한 것처럼 내가 직접 카메라로 찍은 내 카메라롤의 사진들 뿐일 수도 있겠습니다.

덧. 어쩌면 이런 AI가 만들어낸 컨텐츠 때문에 SNS 시대가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SNS가 AI가 만들어낸 사진과 영상으로만 가득찬다면 사람들이 SNS를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실제로 파리에 가본 적 없는 사람이 3초만에 파리에 갔다온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라면? 가상의 인플루언서가 광고하는 제품을 우리가 믿고 살 수 있을까요? 그래서 메타가 AI에 그렇게 목숨거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덧2. 현실에 일어난 것만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라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을 지원하는 역할로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에는 양면이 있듯 그 기술을 결국 자기 입맛대로 현실을 조작하는데 쓰는 인간들이 문제인거죠.

덧3. 생각해보면 포토샵의 등장 때부터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듯한 현실을 조작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누구나 쉽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게 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