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날, 처음 보는 깔끔하게 생긴 청년 하나가 들어왔다. 그다지 가난하지는 않아보이는 청년인데 가게 들어와서는 가장 싸고 맛 없는 검은 빵을 1파운드 사가는 것이었다. 그날도 그랬고, 다음날도 그랬다. 그러기를 한달째 매일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 여자는 이 청년이 추운 지하실에 쪼그리고 앉아 물과 검은 빵을 먹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굳이 검은 빵 값으로 맛있는 프랑스 빵이나 흰빵을 준다고 해도 그 청년은 자존심 때문인지 한사코 거부하고 검은 빵을 사갔다. 거의 한달째 되던 날, 이 여자는 결국 친절을 베풀었다. 검은 빵 사이에 몰래 버터를 집어넣어서 이 사람에게 준 것이었다. 청년이 가고 나서 여자는 연신 행복한 웃음을 띄었다. 남을 도와주고 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행복한 웃음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청년은 엄청나게 화난 모습으로 빵가게에 나타났다. 그리고 캔버스 하나를 그 여자 앞에 내리 치듯이 놓는 것이었다. 여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청년이 들고온 그림은 버터로 엉망이 된 목탄화였다. 청년은 검은 빵을 먹기위해 사간 것이 아니라 지우개로 쓰기위해 사간 것이었다. 원래 목탄화를 지울 때는 검은 빵으로 지운다고 한다. 여자가 안에 버터를 넣었으니 그림이 엉망이 된 것이었다. 청년은 그 그림을 미술대회에 출품하기 위해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어릴 떄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일화이다. 무조건 친절을 베풀라라는 말을 뒤집는 얘기였다. 그렇다. 친절은 경우에 따라서 받는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오늘 기차를 타고 천안에 내려가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굉장히 큰 짐을 들고 가고 있었다.”이 짐 들어드릴까요?”라고 물었는데 그 할머니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굉장히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됐어요”라고 하고 “날 어떻게 보나..”라고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무서워서 난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양보도 잘 하지 않는다.(물론 경로석 같은 데는 앉지 않는다.)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