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행 코스는 파리 근교 여행.
첫날 파리 시내 여행할 때는 다 걸어 다녔는데 파리 근교에 있는 베르사이유와 몽마르뜨는 기차와 지하철 등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교통 수단은 나비고 패스가 있으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다른 여행 후기를 읽어보니 증명 사진도 필요하고 여러모로 복잡한데, 애플 페이애서 구매하면 그냥 핸드폰으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익스프레스 모드로 설정하면 따로 실행하지 않아도 아이폰을 갖다 대기만해도 교통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써보니 한국에서도 교통 카드 지원 되면 정말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파리에 와서 카드나 현금을 쓰지 않았다. 어딜가도 거의 대부분의 결제가 애플 페이로 해결된다. 전통 시장 같은데 가도 대부분 컨택리스 결제를 지원하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따로 지갑을 안들고 다녀도 되어 편안한 수준이 아니라 뭔가 그 이상의 편함이 있었다.
오늘의 첫 코스는 베르사유 궁전. 파리 여행의 이유 중 두번째인 여행지였다.
베르사유는 예약을 미리 안해서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서 불안했다. 전날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려고 보니 이미 매진이라 시간 지정을 할 수 없었기 땜에 그냥 현장에 가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9시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다행히도 뮤지엄패스 소유자는 현장에서 티켓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오픈런을 헌 보람이 있는듯.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도 화려함에 할 말을 잃었는데 여기는 성 베드로 성당을 능가한다. 대략 본 궁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시간 이상 걸린다.
베르사유 궁전은 다른 유럽 왕궁처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순서대로 뽑아보자면
루이14세는 베르사유의 시작을,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배루사유의 비극을, 나폴레옹은 베르사유와 프랑스의 전성기를 나타낸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지냈던 별궁인 프티 트리아농도 보았다. 베르사유에 비해 소박한 프티 트리아농을 보면 마리 앙투와네트의 서민적인 면모를 잘 볼 수 있다.
사치와 향락의 아이콘 같은 마리 앙투와네트지만 사실 프랑스 왕비 중에는 가장 서민적인 측면이 강했던 왕비였다. 프티 트리아농도 마리 앙투와네트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일부러 베르사유를 떠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서민적인 왕족이라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결과는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 프티 트리아농에서 육아를 하던 앙투와네트는 적극적인 소통을 피해서 평민은 물론 귀족과도 척을 지게 된다. 이는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 모두 똑같다.
어쨌든 프티 트리아농을 마지막으로 베르사유 마무리.
베르사유를 떠나면서부터 화장실 볼 일이 있는 상태였는데 참을만 해서 그냥 기차를 타고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기로했는데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몽마르뜨에는 거의 1시간 걸려서 도착했는데, 정말 근처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었다. 파리를 비롯해 유럽에는 지하철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 공중 화장실은 길에 있는데 이놈의 화장실이 멀쩡한게 하나도 없었다.
거의 10군데의 무료 화장실을 갔는데 다 제대로 된게 없었다. 그나마 유료 화장실이 있었는데 현금만 받는 상태였다. 애플페이만 믿고 현금을 안 들고 다녔기에 이것도 이용할 수 없었다.
이쯤되니 패닉이 시작됐다. 와 씨 어쩌라는건가?! 아무데나 해결해야하나?
결국 몽마르뜨에 도착한 후 두시간만에 멀쩡한 화장실을 찾긴 했는데 줄이 길었다. 한번에 한사람씩 이용하는데 이것도 엄청 오래걸려서 들어갈 수 있었다. 결국 두시간 20분 뒤에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화장실 가고 싶어진 뒤로 네시간 된듯한..)
이러저러하게 뛰어다니다가 시간은 다 흐르고.. 결국 정신 차리고 보니 해가 져있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어 파리의 야경을 감상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다. 파리의 화장실 인심이야 많이 들었지만 이정도였다니.. 갑자기 한국이 엄청 그리워졌다.
빈정이 상한 상태로 오늘 여행은 마무리. 오늘의 빚과 수모(?)는 잊지 않겠다, 몽마르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