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던 시절 휴대폰이라는게 처음 나왔고, 그 휴대폰으로 재밌게 하던 게임은 ‘미니 게임 천국’이란 게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미니 게임 모음이었지만 저에겐 잊혀지지 않는 첫 모바일 게임이었습니다. 불개미로 줄넘기 게임을 제일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미 이 때부터 모바일 게임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놈 시리즈라든지 붕어빵 타이쿤이라든지.. 명작 모바일 게임이 많았죠. 특수 계층(주로 남고생들)만 하는 PC 게임이나 특수 오덕(…)들만 하는 콘솔 게임과 달리 모바일 게임은 단연 누구나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였습니다. 버스에서도 게임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이는 분들이 애니팡이나 드래곤 플라이트를 하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이폰이 나오고 고성능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바일 게임의 퀄리티는 끝없이 높아졌습니다. 지금도 아이폰 3gs에서 실행하던 아이언맨 게임의 놀라운 3D 그래픽이 잊혀지지 않네요. 비록 제가 쓰던 노키아 폰에서는 2D 그래픽의 불쌍한 아이언맨이 날라다닐 뿐이었지만 말이죠.
게임의 퀄리티가 높아지면서 제작비는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모바일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바로 ‘모바일 게임은 저렴하다’는 인식이죠. 콘솔 게임에 6만원씩 쾌척하는 사람도 모바일 게임에 0.99 달러를 소비하는 것은 후덜덜하곤 했습니다. 거의 콘솔 게임급의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가격은 그렇게 받을 수 없는 현실. 그렇게 불균형은 시작되었죠.
이런 불균형은 결국 공짜지만 공짜라고 부를 수 없는 게임들을 나타나게 했습니다. 이 게임들은 모바일 게임의 친숙함에 공짜를 더해 친숙하게 다가간 다음 유저가 익숙해진 사이에 추가 스토리 해금이나 아이템을 돈 받고 팔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돈을 내고도 일정 확률로만 아이템을 받을 수 있는 게임들도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런 형태를 비정상이라고 부르진 못하겠지만 유독 모바일 게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점차 PC나 콘솔 장르로도 확산되고 있죠. 제작비와 사람들의 인식 속의 불균형을 채우기 위한 일종의 돌연변이가 나타난 셈입니다.
2019년 9월에 애플이 발표한 애플 아케이드는 모바일 게임의 이런 경향을 극복하고자 나온 서비스입니다. 첫 발표부터 광고도 없고 추가 결제도 없는 완전한 게임 서비스를 표방했죠. 모바일 게임계의 가장 큰 플랫폼(앱스토어)을 갖고 있는 애플이 결국 개선의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애플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바로 구독제 모델이었습니다. 넷플릭스처럼 일정 비용을 내면 게임을 무한히 즐길 수 있는 것이죠. 이름의 ‘아케이드’도 미국에서 일정 비용을 내면 모든 게임을 이용할 수 있었던 예전 미국 오락실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과연 애플의 바람대로 공짜지만 공짜 아닌 게임들의 수렁에 빠진 모바일 게임을 구할 수 있을까요? 애플 아케이드를 5개월 정도 써보고 후기로 정리해봤습니다.
장점 1 : 게임을 위한 게임들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인앱 결제와 확률형 아이템이 그렇게 나쁜 건가요?’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업계의 특성상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난 비즈니스의 한 형태일 뿐이죠. 다만 문제는 이런 비즈니스가 게임 내에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게임 내에서 비즈니스가 작용하다보니 게임 안에서 온갖 마케팅 전략이 동원됩니다. 대부분 게임 자체의 즐거움을 저해할 뿐이죠.
앱스토어의 5,900원짜리 프리미엄 게임들(앱스토어에서는 고가인 편)은 이런 경향이 적은 편이었습니다. 게임 자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임들이 많았죠. 그 중 Monument Valley, Florence, Room 같은 게임들은 게임 자체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게임들도 이런 프리미엄 게임들이 추구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바로 게임을 위한 게임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게임들을 플레이하다보면 오로지 재미를 위해 설계된 게임을 하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100여개의 게임들은 별도의 수익화 모델 없이 모두 게임 자체의 재미를 위해 설계된 게임들이죠. 스토리를 따로 돈주고 구매해야하거나 특정 아이템을 반드시 구매해야 클리어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닙니다.
근데 간혹 애플 아케이드 런칭작 중에는 분명히 인앱 결제 게임이었는데 급히 수정한 티가 나는 게임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Sonic Racing은 게임에서 쓸 수 있는 화폐가 두가지로 설정되어있고 분명히 캐릭터의 레벨업 개념이 있는데 게임 설명에 보면 “캐릭터의 랭크업은 성능을 향상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 캐릭터를 얼마나 익숙하게 잘 쓰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 입니다. 캐릭터의 성능상 차이는 없습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인앱 결제의 흔적을 급히 없앤게 아닌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재밌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장점 2 : 위험 부담이 없는 게임 선택
모바일 게임 구매에 돈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위험 부담도 클 것 같습니다. 앱스토어는 여전히 데모 버전을 따로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렇다보니 사용자는 동영상과 게임 스크린샷 몇개로 게임을 구매해야 합니다. 구매 후 게임이 생각과 달라서 후회하는 경험을 몇번 반복하다보면 유저는 결국 돈을 쓰는데 주저하게 됩니다.
대부분 구독제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애플 아케이드는 컨텐츠를 선택함에 있어서 이런 위험 부담이 거의 없습니다. 마치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닫고 다른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미 구독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다른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추가 비용은 없죠. 애플 아케이드는 이런 선택의 위험을 제거함으로서 유저가 마음껏 취향에 맞는 게임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합니다.
선택의 폭이 추가 비용 없이 넓어지다보니 진정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저 같은 경우도 구매한게 아까워서 취향에 맞지 않는 게임을 억지로 클리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애플 아케이드는 미련 없이 다른 게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상형 월드컵’ 같은 선별 과정을 거치면 진정한 자신의 취향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제작사의 게임도 플레이할 가능성을 높아 인디 게임들에게 최적인 플랫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점 3 : 다국어 지원
한국어 사용자로서 애플 아케이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다국어 지원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게임들은 대부분 15개~16개의 다국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건 애플이 아케이드 서비스에 입점하기 위한 조건으로 내건 것이라고 합니다.
15개국의 언어에는 한국어도 포함되어있어 애플 아케이드에 출시된 많은 게임들은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물론 Dear Reader 같이 번역하기 어려운 몇몇 게임들은 제외하고 말이죠. 이 부분은 Tangle Tower 라는 게임의 개발사가 애플 아케이드에 입점하기 위해 17개의 언어로 게임을 번역했던 이야기(영문)를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화제가 되었던 Stadia 같은 게임 서비스는 영미권에서 시작한데 반해(이쪽은 네트워크의 한계도 있지만) 애플 아케이드는 엄격한 다국어 정책 덕분에 처음부터 전세계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죠. 이런걸 보면 애플의 서비스 추진 능력도 무서울 정도입니다.
가끔 영문만 지원한다고 되어있는 게임도 받아보면 한글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고, 처음 받았을 때 영문 상태인 게임들도 설정에서 보면 한국어를 지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한글을 지원하는지 여부는 받아봐야 알 수 있다는건 문제입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게임이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어서 취향에 맞는 게임이 있으면 일단 플레이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장점 4 : 가격
애플 아케이드가 처음 나왔을 때 의아했던 부분은 가격이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쌌기 떄문이죠. 애플 아케이드의 구독 비용은 한달 6,500원(미국 기준 4.99 달러)인데 이 구독 비용은 심지어 가족 공유가 됩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한명만 결제하면 나머지 가족(최대 6인)까지 같이 쓸 수 있는 것이죠. 가족 구성원이 최대한일 경우 한 사람당 1,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정도 가격이면 경쟁서비스와 비교하거나 심지어 같은 애플 뮤직의 서비스와 비교해봐도 상당히 저렴한 편인데요, 출시 초기 때는 애플 아케이드 내에 있는 게임들의 퀄리티가 의심될 정도의 가격이었습니다. 물론 다행히도 뚜껑을 열어보니 가격 이상은 하는 게임들이었지만 말이죠. 하지만 또 가격만큼 대형 킬러 타이틀도 없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꼽는 장점 : 컨트롤러 지원
저는 사실 아이폰으로 게임을 잘하지 않습니다. 아이패드가 나온 이후로는 쭉 아이패드로만 게임을 하고 있지요. 아이패드는 화면이 넓어서 좋지만 터치 스크린을 통한 컨트롤은 아이폰보다 못합니다.(이건 아이패드 미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플랫포머나 레이싱 등의 게임을 좋아하는데 그런 게임은 아이패드로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Mfi 컨트롤러 같은 별도 장치를 추가해서 할 수도 있지만 Mfi 컨트롤러는 가격이 너무 비싼데다가 품질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이미 집에 굴러다니는 엑박 컨트롤러가 많은 편이었데 별도 컨트롤러를 사양하는 상황도 별로 달갑진 않았습니다.(결국 iOS13 이후로 Mfi 컨트롤러는 쓰레기통으로 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이패드에서 게임이 iOS13과 애플 아케이드를 만나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모바일 게임의 한계를 넘은 느낌이랄까요? 아이패드를 놓고 카페 등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보면 휴대성이 매우 좋은 게임 랩탑을 산 느낌이 듭니다. 특히 아이패드 프로 3세대에서 애플 아케이드 게임은 모든 게임이 최고의 성능으로 실행되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죠.
물론 컨트롤러의 지원이 애플 아케이드의 장점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애플 아케이드의 게임들은 Assembled with Care 처럼 터치스크린에 친화적인 게임 외에는 대부분 컨트롤러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iOS13의 컨트롤러 지원이 더욱 빛이 납니다. 저는 요즘은 아이패드를 TV에 연결해서 컨트롤러를 이용해 마치 콘솔처럼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단점 1 : 탐색(Browse)
애플 아케이드에는 현재 약 100 여개 정도의 게임들이 올라와 있습니다.(구체적으로 세보진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게임들이 전부 취향에 맞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은 취향을 타는 게임들이라 내 취향에 맞는 게임을 찾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앱스토어의 애플 아케이드 페이지에는 이런저런 게임들을 소개하는 컨텐츠가 많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게임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 이후에는? 그때는 찾아야 하는데 아직 게임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애플 아케이드의 큐레이션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게 꼭 맞는 아케이드 게임”은 취향에 의해 선별된 게임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장르의 게임들이 같이 섞여 있는데 이 게임들은 무슨 기준으로 선별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 ‘금주의 인기 게임’, ‘숨겨진 보석’ 등의 큐레이션도 매주 바뀌긴 바뀌는데 웬지 거기에서 거기 수준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서비스하는 게임이 많지 않아서인듯 한데 ‘모든 게임’에서 일일이 찾다가 적합한 게임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어서 더욱 큐레이션이 아쉽습니다.
이 “탐색” 과정에는 게임을 검색하는 것 뿐 아니라 설치하고 플레이해보고 아닌 것 같아서 접고 다른 게임으로 이동하고 하는 과정도 포함되죠. 여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다보니 애플 아케이드의 구독 기간 절반은 이런 게임을 찾는 고행으로 점철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어쩐지 넷플릭스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네요.(넷플릭스도 뭘 봐야할지 멍 때리는 시간이 실제 보는 시간보다 더 오래걸리는 것 같습니다.)
단점 2 : 넷플릭스 스타일 게임들
애플 아케이드 게임을 많이 하다보니 느끼게 되는 점 한가지는 게임들이 전부 넷플릭스 스타일이라는 것입니다. “구독제니까 당연한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단 넷플릭스 영화에서 보이는 특징과 게임들이 비슷하달까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 넷플릭스 영화를 재밌게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들은 재밌게 본 것들이 상당 수 있음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은 좀 오묘한 느낌입니다. 예술성 같은 부분들이야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에게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는달까요?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창작자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하는 넷플릭스의 제작 스타일이 기인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작사가 여러가지 의견을 내서 망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너무 간섭 없이 제작자의 스타일대로 진행해도 너무 자의식으로 빠져버릴 수 있는 것이죠.
애플 아케이드의 게임들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데 한마디로 말해 “대중적으로 봤을 때 재미가 없는 게임들”이 많습니다. 콘솔의 AAA급 게임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중적으로 히트할만한 게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넷플릭스 영화처럼 창작자의 주관이 잔뜩 들어간 개성 넘치는 게임들이 대부분이죠.
물론 이런 특징이 애플 아케이드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긴 하지만 인디 게임을 좋아하더라도 심각하게 재미없는 게임들도 상당합니다. 게다가 분명 애플이 어느정도 제작에 참여할텐데도 “이게 게임이야?” 싶은 것들도 많죠.
참신하고 혁신적인 게임들이라고 말하는 애플 아케이드지만 대중적으로 즐길만한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 100가지 정도의 게임이 있다곤 하지만 확실히 아직까진 주목할만한 게임이나 즐겁게 할 수 있을만한 게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희망편 : 모바일 게임을 구원할 서비스
애플 아케이드는 모바일 플랫폼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로 그 파급력과 위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애플 플랫폼에서 갖고 있는 애플의 독점력은 빠른 시간에는 아니더라도 결국 모바일 게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게임은 모바일 게임이 그동안 비판 받아왔던 요소들(인앱 결제, 확률형 아이템, 지나친 광고)이 없습니다. 그 대신 유저들이 게임을 자주 찾을 수 있도록 게임 자체의 재미를 추구해야 하죠. 이는 기존 비즈니스 형태에 익숙한 모바일 게임 개발사로서는 새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물론 모바일 게임 시장은 애플 플랫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한축은 안드로이드 진영이 담당하고 있죠. 하지만 구글과 안드로이드 진영은 애플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벌써 애플 아케이드를 의식한 것처럼 구독제 시스템인 플레이 패스라는 상품도 만들었죠. 애플의 모델이 성공한다면(그리고 아마 성공하겠지만) 안드로이드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결국 애플 아케이드는 모바일 게임을 인앱결제 없고 광고도 없으며 유저와 개발사, 플랫폼 사업자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했던 단점들의 해결이 먼저겠지만 말이죠.
우려 : 또 하나의 돌연변이 출현..?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희망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만약에 애플 아케이드가 성공을 하여 모바일 게임 시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재편하게 되면 결국 애플 플랫폼에서 애플의 지배력은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지금도 모바일 게임 개발사는 게임을 앱스토어에 출시하기 전에 애플의 심사를 반드시 받아야 하고, 게임 수익의 30%를 애플에 주어야 합니다. 근데 만약 애플 아케이드가 지배적인 플랫폼이 되면? 절대 공개되지 않는 블랙박스와 같은 애플의 복잡한 수익 분배 규칙을 그대로 따라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애플의 규칙에 따라 강제적으로 비용을 더 들여 게임을 개발해야겠죠.(예를 들어 다국어 지원) 그리고 다른 모바일 플랫폼으로는 출시도 못하겠군요.
물론 애플 아케이드가 그 정도로 성공하는 것은 먼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벌써 조짐이 어느정도 보이고 있는 ‘새로운 패턴’의 문제입니다. 대다수의 게임이 애플 아케이드에서 보이는 패턴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 새로운 이상 패턴을 추가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아시다시피 애플 아케이드는 구독제 기반이고, 구독제 기반에서는 구독 기간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독 기간이 길어지고 그 긴 구독 기간 동안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해주는게 가장 유리하겠죠. 그렇지만 게임(특히 싱글 플레이 기반 게임)은 컨텐츠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클리어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유저는 언젠가 게임을 금방 클리어하고 구독을 끊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런지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대다수의 게임은 게임을 클리어해도 끝이 어정쩡하게 끝나는 게임이 많습니다. 추가 업데이트가 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뭔가 약간 미완성인듯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웬지 이런 경향은 새로운 시즌을 예고하는 넷플릭스 드라마들 같죠.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끝나고 추가 업데이트를 진행하겠다는 게임들은 그나마 낫지만 Guidlings, Shantae and Seven Sirens 같은 게임들은 아예 게임이 챕터 1이나 프롤로그, 절반 정도 밖에 없습니다. 추가 이야기는 역시 업데이트 예정이죠. 결국 이런 게임들은 업데이트가 될 때까지 애플 아케이드를 구독해야 합니다. 저도 게임을 벌써 10개정도 클리어했지만 이야기가 종결된 게임은 Broadwell Conspiracy, Sayonara Wild Heart 등 몇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패턴이 확률형 아이템의 다음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기존 모바일 게임의 트렌드에 비해 유저에게 금전적인 손해는 덜하겠지만 애플 아케이드 게임을 하다보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보장된 게임을 플레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물론 이것도 아직 억측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게임들이 미완성인 이유는 애플 아케이드 출시 일정에 맞추기 위한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죠. 아마 빠듯한 개발 일정에서 모든 게임이 애플 아케이드의 출시 일정에 맞춰야 했을 것이므로 아직 업데이트 안된 이야기가 많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추천 애플 아케이드 게임
지금까지 애플 아케이드 서비스를 5개월 정도 이용하면서 받았던 느낌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애플 아케이드에서 제공하는 게임들이 가장 중요하겠죠. 그래서 이번 애플 아케이드 후기는 가장 추천하는 게임 다섯개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기회가 되면 블로그에서 개별 게임에 대한 리뷰도 올릴 예정입니다.
Sayonara Wild Heart
Sayonara Wild Heart는 2019년 올해의 애플 아케이드 상을 최초로 받기도 했던 게임이죠. 애플 아케이드 발표 영상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나왔던 게임인데 발표 당시의 시큰둥했던 반응과 달리 꽤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게임 장르 자체는 진부하면서도 독보적입니다. 예전 유행했던 Temple Run 같은 게임에 리듬 게임을 가미한 느낌. 보통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속도감과 매우 힙한 음악 등이 어우러져 자신이 힙스터 뮤직 비디오에 출현하는 것 같은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Sayonara Wild Heart는 애플 아케이드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게임이자 가장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게임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한번 실행하게되면 모두가 좋아할만한 게임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Ocenhorn 2
11월에 트위터에 애플 아케이드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만해도 Ocean Horn 2는 추천 게임에 속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때 올렸던 한마디는 “젤다의 짝퉁”. 겉보기엔 젤다의 전설 : Wild of Breath가 떠오를 정도로 젤다의 전설을 많이 오마쥬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젤다의 전설 : Wild of Breath을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플레이해보면 그래픽 외에는 젤다의 전설과 공통점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는 콘솔 그래픽의 액션 RPG랄까요. 젤다의 전설이 RPG와 퍼즐을 강조한 느낌이라면 Ocean Horn 2는 젤다의 전설에서 액션 RPG 요소만 뽑아온 느낌입니다. 오히려 젤다의 전설과 비슷하다는 점들이 이 게임의 장점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액션 RPG 성격에서 보면 이 게임의 재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액션이 좀 어색한 느낌이긴 하지만 그것도 용서가 될만한 수준입니다. 상당히 방대한 스케일과 디테일한 그래픽은 애플 아케이드에서 플레이하는 게임 중 가장 좋습니다. 뻥 좀 보태서 AAA 게임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 하지만 엔딩이 다소 힘빠지는 느낌이라 아쉽기도 했습니다.(역시나 추가 이야기가 업데이트 예정.)
Tangle Tower
애플 아케이드에는 추리 퍼즐 게임이 많은데 그 중 이 게임은 한글로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게임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에 있는 다른 게임들처럼 이 게임도 닌텐도 플랫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요, 레이튼 교수 시리즈나 역전 재판 시리즈의 느낌이 물씬 나는 추리 퍼즐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추천하는 이유는 두가지인데, 일단 완벽한 한글화입니다. 애플 아케이드의 게임들이 대부분 한글화가 되어있긴 하지만 이 게임은 그 중에서도 수준급의 한글화를 보여줍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예쁜 일러스트와 화려한 애니메이션. 이런 류의 게임은 주로 대화로 이루어지는데 대화창의 경우 다른 게임은 일러스트 하나로 퉁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게임의 대화창은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캐릭터가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옵니다. 물론 게임의 재미와 퍼즐은 말할 것도 없죠.
Assembled with Care
Assembled with Care는 아이폰 게임의 명작 Monument Valley의 개발사 Ustwo Games에서 개발한 게임입니다. 명성에 걸맞게 Assembled with Care도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게임의 전반은 물건을 고치는 형식인데 물건을 고치는 것 뿐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같이 고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게임입니다. 물건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망가진 물건을 고쳐가며 사람들의 상처도 치유해가는 과정을 편안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점은 수리하는 물건들이 주인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 뿐 아니라 망가진 방식도 주인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드라이버를 열어서 망가진 부품이 부주의로 인한 것인지, 오래되서 그런 것인지 알게되면, 그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지 자연히 알게된다는 점에서 꽤 주의 깊게 잘 설계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The Bradwell Conspiracy
이 목록에 있는 다른 애플 아케이드 게임에 비해 이 게임은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게임인데요, 개인적으로는 게임 방식이 독특해서 마음에 들었던 게임입니다. 게임 장르는 Portal 시리즈처럼 퍼즐 FPS 게임입니다. 포탈건처럼 사물을 복제할 수 있는 휴대용 3D 프린터기를 들고 다니며 퍼즐을 해결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가진 독특한 요소는 주인공이 사용하는 사진 찍는 기능이 있는 스마트 글래스입니다. 박물관이 무너지는 사고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된 주인공이 또 다른 생존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스마트 글래스로 3번 통로라는 이름이 새겨진 문의 사진을 또 다른 생존자(목소리로만 등장)에게 발송하면 그것을 보고 제어실에서 해당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며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싱글 플레이 게임이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반응하는 NPC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탈출하다보면 전혀 외롭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Portal류의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플레이했던 게임이지만 어느정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게임입니다. 퍼즐 설계가 좀 투박한 측면도 있고 그래픽은 3D이긴 하지만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Portal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쯤은 플레이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