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애플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가는 신호탄이라고 봤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애플이 발표한 서비스를 보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사람들이 즐기는 컨텐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패드나 아이폰으로 어떤 컨텐츠를 즐길까를 생각해보면 음악, 동영상, 뉴스, 게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중 음악은 이미 애플 뮤직이란 서비스가 있으니, 이제 남은건 뉴스, 동영상, 게임의 차례가 된 것입니다. 각각 애플뉴스+, 애플TV+, 애플 아케이드죠.
즉 애플은 애플 하드웨어에서 즐길 수 있는 컨텐츠마저 자신의 통제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는 결국 애플 하드웨어 경험 향상의 연장선입니다. 애플이 생산성 도구로 iWork와 iLife 시리즈 등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것처럼, 이번에 발표한 서비스도 애플 하드웨어를 더 잘 사용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봅니다. 즉 애플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고 구글 같은 서비스 중심의 기업이 되고자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죠.
그 증거로 애플 뮤직을 제외한 나머지 서비스는 애플 하드웨어에서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애플 뮤직도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지원하긴 하지만 현대 웹서비스의 기본 중의 기본인 웹 인터페이스는 아직 지원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쯤되면 과연 다른 서비스는 다른 플랫폼에 호환되도록 개발하려면 어느정도 걸릴지 궁금해집니다.
어쨌든 3월에 애플이 발표했던 서비스 중 뉴스와 TV는 국내에서 이용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뉴스는 지금도 국내의 경우 iOS에 설치조차 되지 않고 TV는 정식으로 발매조차 되지 않았죠. 그나마 애플이 자체 심의권을 갖고 있어서 출시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애플 아케이드”가 국내에 출시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그마저도 맥OS나 TV는 애플이 자체 심의권이 없기 때문에 애플 홈페이지에도 iOS 기기에서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일종의 게임 구독 서비스로 구독하면 애플 아케이드에서 제공하는 100가지 이상의 게임들을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설치해서 즐기는 방식으로 다운 받아서 설치는 해야하지만 네트워크 연결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죠. 실행되는 하드웨어도 아이폰, 아이패드, 맥, 애플TV 등 애플에서 만드는 하드웨어에서 변동 없이 실행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구글도 애플보다 하루 먼저 게임 구독 서비스인 “Stadia”라는 서비스를 발표합니다. “Stadia”는 구글의 고성능 서버에서 실행되는 게임을 사용자의 디바이스로 스트리밍하는 개념으로 사용자의 디바이스의 성능이나 OS와 관계없이 네트워크만 받쳐준다면 모든 디바이스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애플 아케이드”와 “Stadia”는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같은 게임 구독 서비스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접근 방법은 정반대라 재미있습니다. 각 서비스의 성격이 애플과 구글의 성격을 너무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죠. 각 서비스의 어떤 측면이 이 둘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지 분석해 봤습니다.
게임 구독 서비스의 특성
일단 “애플 아케이드”와 “Stadia”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게임 구독 서비스의 특징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컨텐츠 소비에 있어서 구독형이 대세가 되어가는 요즘이지만 유독 여러 컨텐츠 중 게임은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이 늦는 편입니다. 음악은 Spofity가, 동영상은 넷플릭스가 문을 열어젖혔지만 아직 게임 구독 서비스에 있어서는 “대세”라고 부를만한 서비스가 보이진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게임이 갖고 있는 특성이 다른 컨텐츠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이죠. 게임은 장르마다 차이는 있지만 모두 상호작용이 기본이 됩니다. 게임에서 “상호작용”이란 플레이어가 입력한 동작이 화면에 반영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캐릭터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점프를 해서 죽을 수도 있죠.
반면 음악이나 동영상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컨텐츠를 단순히 재생만하고 사용자의 개입은 철저히 배재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음악과 동영상은 컨텐츠를 효율적으로 담아놓을 수 있습니다. 토이스토리 같은 3D 애니메이션을 재생할 때도 모든 캐릭터를 일일이 렌더링하면서 재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캐릭터들이 이미 정해진 동선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죠. 음악과 동영상은 이런 예외가 없기 때문에 좀 더 압축 효율적인 포맷(즉 알고리즘이 예측이 되는)으로 담아놓을 수 있고, 정해진 규칙대로 재생하는 플레이어만 있다면 모든 컨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은 그럴 수는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모든 걸 예상해서 찍어놓으면 될까요? 비슷한 방식의 게임이 바로 인터랙션 필름이라는 장르입니다. 인터랙션 필름은 이미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죠.(밴더스내치 같은) 하지만 그런 인터랙션 필름과 비교할 수도 없이 게임의 경우의 수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재생하는 곳에서 렌더링을 직접하는게 더 효율적입니다. 그렇다보니 게임은 실행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구동”하기 위한 좀 더 고성능의 장치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설치”가 필요합니다.
플레이어와의 상호 작용을 위해 고성능의 하드웨어와 설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게임 구독 서비스가 등장하기 어려운 이유가 됩니다. 음악이나 동영상처럼 서비스를 어느 장치에서나 자유롭게 구동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시장 또한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PC게임을 보면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고 운영체제로는 윈도우를 쓰는게 제일 낫습니다. 즉 대세는 존재할지언정 플랫폼 간의 물리적인 장벽은 존재할 수 밖에 없는게 게임이라는 컨텐츠의 특성입니다. 그렇다보니 구독형보다는 “스팀”처럼 게임을 물리적인 재화처럼 구매하는 방식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구독형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많은 회사들은 눈물겨운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구독형 비즈니스가 돈이 되기 때문이죠. 컨텐츠에 일정 비용을 매월 지출하게 하는 방식은 기업으로 하여금 안정된 경영을 가능하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게임 발매 때 폭발적으로 매출이 높아지고 그 이후에는 잠잠해집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게임 내에서 현금성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지만 게이머들의 반발이 크죠. 구독형 비즈니스라면 좀 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게임 구독형 서비스의 종류
지금까지 여러 구독형 서비스가 있었는데 크게 보면 두가지 방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게임 구독형 모델과 게임 클라우드 모델입니다.
먼저 게임 구독형 모델은 기술적으로 크게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돈을 내면 특정 기간 동안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것 뿐입니다. 게임 자체는 지금까지처럼 하드웨어에 설치가 필요하고 하드웨어에서 직접 실행됩니다. 이 방식을 취하고 있는 구독 서비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패스”와 험블번들의 “험블 월간 번들”이 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가 여기에 속하죠.
이런 게임 구독형 모델은 기존에 게임을 개별로 구매하던 것을 한달 단위로 “구매권한”을 제공해주는 것 외에는 본질적으로 기존 게임 비즈니스와 차이가 없습니다. 플랫폼과 기기 성능에 제약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패스”는 엑스박스라는 플랫폼 위에서만 실행됩니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서비스는 대규모로 확대하기엔 제약이 크고 플랫폼 안에서만 서비스해야하는 특징이 있죠.
게임 클라우드 모델은 게임이란 컨텐츠의 제약을 본질적으로 풀기 위해 등장한 개념입니다. 게임의 구동 자체는 고성능의 클라우드 서버에 맡기고 사용자가 플레이하는 클라이언트는 그저 동영상을 실행하듯 실행합니다. 물론 사용자가 컨트롤러에 입력한 동작은 서버로 전달되어 게임을 조종하는데 사용됩니다. 예전에 “달려라 코바(…)”처럼 전화기로 게임을 조종하는 생방송 같은거라고 보면 되죠. 구글의 “Stadia” 서비스는 여기에 속합니다.
이 모델의 특징은 플랫폼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컴퓨터의 성능도 네트워크로부터 동영상을 받아올 정도만 되면 됩니다. 즉 서비스 대상과 모델이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클라이언트의 입력이 서버로 전달되는 것만 다릅니다. 이 방식은 네트워크의 속도가 빠르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서비스의 제약이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임 클라우드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사실 게임 구독형보다 더 오래되었습니다.(코바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처음 이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더이상 고성능의 컴퓨터는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복잡한 연산은 클라우드에서 진행하고 클라이언트는 네트워크를 통해 결과물을 받아오기만 하면 되니 클라이언트는 가볍고 얇은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화 되기엔 당시의 네트워크 기술이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선 네트워크 5G가 나올 정도로 고속화되기 시작한 지금이라면 어떨까요?
구글 Stadia
구글의 Stadia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구글의 Stadia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게임 클라우드형 구독 서비스입니다. 고성능의 컴퓨터가 클라우드에서 게임을 실행하고 동시에 클라이언트 디바이스로 영상을 송출하는 형태입니다. 사용자가 사용하는 디바이스는 그 영상을 받아서 재생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사용자의 디바이스는 동영상을 재생할 정도의 컴퓨팅 능력과 화면, 그리고 통신망만 있으면 됩니다. 즉 Stadia를 이용하는데는 거의 제약이 없다고 봐도 되는 것이죠. 크롬에서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크롬을 실행할 수 있는 거의 전세계 모든 컴퓨터에서 이용할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Stadia는 다른 게임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비해 좀 더 특별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부분 게임 클라우드 서비스가 갖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입력 지연(Input lag)입니다. 아무리 네트워크가 빨라도 컨트롤러의 입력을 서버로 전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세하게라도 입력과 실제 반영되는 사이에 지연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Stadia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컨트롤러가 통신 능력을 직접 갖추고 있어 사용자 디바이스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서버에 연결합니다. 서버에 직접 연결되어있으니 입력 지연 문제는 최소화할 수 있겠죠.
Stadia는 여러모로 가장 구글다운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등을 만들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회사입니다. 안드로이드와 크롬은 그 서비스와 하드웨어를 연결하는 교량의 역할일 뿐, 궁극적인 목적은 서비스의 확장입니다. 이런 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구글은 아마 전세계 최강의 클라우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구글이 게임 클라우드 방식을 지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보입니다.
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확대할 수록 시장이 커지기 때문에 구글은 기본적으로 디바이스의 성능이나 플랫폼의 제약이 없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구글 크롬이 얼마나 많은 환경에서 실행 가능한지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죠. Stadia 또한 게임을 하는데 별다른 제약이 없으므로 서비스를 손쉽게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Stadia의 단점이라면 다른 게임 클라우드 서비스처럼 네트워크가 반드시 연결되어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요즘 같이 냉장고도 인터넷에 연결되는 시기에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장치를 찾기란 더 힘들죠. 하지만 모든 장치가 셀룰러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도 아니고 노트북 등 기존의 컴퓨터 장치는 셀룰러 네트워크가 없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Stadia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제한적이겠죠.
사실 더 큰 문제는 네트워크의 속도입니다. 아무리 고성능의 컴퓨터가 있어도 사용자한테 오기까지의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거나 일정하지 않다면 게임 경험은 만족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천하의 넷플릭스조차 지역에 따라, 통신망에 따라 속도가 천차만별이죠. 동영상은 실시간성이 없으므로 그래도 큰 문제는 없지만 게임 같은 경우 네트워크가 들쭉 날쭉하다면 큰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데이터를 돈 주고 사서 쓰고 있죠. 모바일 데이터는 결코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 문제도 우려됩니다. 실제로 Moonlight라는 스트리밍 앱으로 게임을 스트리밍해본 결과 720p 해상도의 게임을 10분정도 플레이했음에도 약 700메가 정도의 데이터가 소모되더군요. Stadia를 고해상도로 스트리밍한다면.. 더 심하겠죠. 데이터 비용이 더 비싼 국가에서는 Stadia는 힘을 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 외에 한가지 더 우려되는 점은 서버 환경이 리눅스라는 점입니다. 즉 게임을 실행하는 컴퓨터의 운영체제가 리눅스라는 이야기죠.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는 리눅스용으로 게임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추가 개발을 더 해야하는데다 리눅스 환경이 드라이버 지원이 불친절한 경우가 많아 게임을 최적화하기에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구글의 Stadia 서버는 한정된 환경이므로 조금 나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개발사가 참여할지는 불명확한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구글이 윈도우를 쓸리는 만무하겠죠.
애플 아케이드
이제 애플 아케이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애플 아케이드는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애플 발표에서 개략적인 내용과 몇몇 게임에 대한 소개가 있었지만 구독비용은 어떨지 서비스는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애플이 말한바에 의하면 게임을 다운로드해서 즐길 수 있고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애플 아케이드는 게임 구독형 서비스라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구글의 Stadia가 가장 구글다운 서비스였다면 애플 아케이드는 게임 구독이라는 난제를 가장 애플 다운 방식으로 풀어낸 서비스입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게임 구독 서비스라는 점 외에는 구글의 Stadia와는 정반대의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단 네트워크 연결이 필요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 마치 우리가 앱스토어에서 게임을 설치하는 것처럼 디바이스에 게임이 직접 설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 연결 없이 심지어 비행기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애플의 사용자 디바이스는 이미 고성능이기 때문입니다. 클라우드에서 게임을 실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세계 최고 성능의 AP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폰과 태블릿은 그와 반대로 모바일 디바이스의 성능이 들쭉날쭉하죠. 애플 디바이스는 대부분 고성능인데다 라인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한정된 환경에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으니 제작이 훨씬 편리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아이폰 이전의 스마트폰들은 디바이스 자체의 컴퓨팅 능력이 높지 않았습니다. 팜이나 노키아, 블랙베리 같은 전통적인 강자들은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클라우드에 대한 기대 때문에 굳이 손에 들고다니는 디바이스가 고성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의 성능을 높이는데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단말기는 비싸졌지만 사용자 경험은 오히려 향상되었죠. 그 이후 클라우드가 한계를 드러냈고 모든 스마트폰이 아이폰을 따라 고성능화된걸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네트워크 단말에 있는 모바일 클라이언트의 성능을 높이려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판단이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이런 애플의 접근법을 계승한 서비스입니다. 클라우드가 아니라 애플의 강점인 디바이스의 성능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애플 아케이드는 정말 애플 다운 서비스인 셈입니다.
제가 애플 아케이드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모바일 게임 시장의 정상화(?)입니다. 지금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그다지 정상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고품질 게임부터 캐쥬얼 게임까지 모두 게임 자체는 공짜로 제공하고 아이템 같은 인 게임 구매를 통해 돈을 버는 프리미엄(Free-mium) 모델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구조는 이용자와 업계가 모두 원해서 탄생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구조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죠.
애플 아케이드는 이런 구조에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단 정기 구독 모델이기 때문에 개발사는 이전과 달리 정기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사용자는 잘 설계된 고품질의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이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의 개별 구입을 도입하던 시절 아티스트 인터뷰 중에 “이제야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회사가 나왔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던게 생각납니다. 근데 재밌게도 이번 애플 아케이드에 참여한 게임 개발자 인터뷰 영상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개발자가 있더군요.
또 한가지 기대되는 부분은 100% 독점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플랫폼에서 못하게 하는게 좋다는게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부터 애플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게임들을 할 수 있게 된다게 좋은 것이죠. 애플 아케이드에 올라오는 게임들은 모두 애플이 퍼블리싱에 직접 참여하므로 가장 애플 하드웨어에 적합한 형태로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여하는 개발사들이 이미 고품질의 아이폰 게임을 만든 전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애플 아케이드에도 우려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일단 애플이 만드는 그 자체가 불안 포인트입니다. 애플과 게임은 상극이라 애플이 손댄 게임 산업은 앱스토어 빼곤 다 망했습니다. 앱스토어도 사실 iOS 디바이스에서 독점적일 수 밖에 없어서 성공한 것 뿐이죠. 예전엔 “피핀”라는 이름의 게임기도 만들었지만 망했었고, 맥OS도 게임으로서는 최악의 플랫폼입니다. 최근의 삽질로는 iOS의 게임센터도 있습니다. 앱스토어의 게임은 성공했지만 게임 센터는 처참히 실패했죠. 이 정도되면 애플에 게임을 잘 아는 전문가가 있는지 자체가 의심됩니다.
다만 이번 WWDC 2019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 TV에서 엑스박스 게임 컨트롤러와 듀얼 쇼크를 허용하기도 하는 등 이제서야 애플이 게임 플랫폼에 문제가 무엇인지를 서서히 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죠.
우려되는 또 한가지는 애플 아케이드에 입점하는 게임들이 전부 독점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게임 개발사는 애플 아케이드에 게임을 입점시키는 순간 다른 플랫폼에 진출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심지어 앱스토어에도 올릴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개발사가 망설이게 하는 포인트입니다. 특히 대형 개발사는 애플 아케이드에 입점하는 것보다는 다른 플랫폼에도 올릴 수 있는 방식을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애플 아케이드에는 비교적 간단한 캐쥬얼 게임만 남게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다행인 점은 애플 아케이드의 독점 게임들은 몇달 기간 제한이 끝나면 다른 플랫폼에 판매가 가능하다고는 합니다. 물론 앱스토어나 다른 구독 서비스에는 판매할 수 없도록하는 조건이 추가되긴 하지만 말이죠.
마무리
지금까지 애플 아케이드와 구글 Stadia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두 서비스 둘 다 구현하기 난해한 게임 구독이란 서비스를 각자 회사의 방식대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구글 Stadia는 서비스 기업 구글 답게 최대한 많은 디바이스에서 실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냈고, 애플 아케이드는 하드웨어 제조사 답게 자사 하드웨어에 최적화된 게임을 설치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냈습니다. 어느 서비스의 방향이 정답일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구글 Stadia와 애플 아케이드는 아직 출시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평가하기엔 아직 이릅니다.(애플 아케이드는 올 가을, 구글 Stadia는 2020년이 되어야 정식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분명한건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가진 이 두 기업이 보여준 게임 구독 서비스는 결국 한쪽이 승리하는 형태가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승자가 결국 앞으로 게임 구독 서비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방향이 게임 산업 전반(정확히는 싱글플레이 위주의 게임과 인디게임)에 걸친 대세가 되겠죠. 디지털 컨텐츠 소비에 있어서 구독제 모델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특히 그 끝이 정해져 있는 싱글플레이 위주의 ‘패키지 게임’ 들은 구독제 모델이 소비자에게도 더 이득이겠죠.
애플 아케이드와 구글 Stadia 중에 어떤 서비스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조심스럽게 평가하자면 전 애플 아케이드 쪽이라고 봅니다. 아직 구글의 Stadia 아이디어가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있습니다. 5G 네트워크가 좀 더 널리 퍼지고 그 가격이 충분한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Stadia는 그저 집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콘솔 게임에 지나지 않겠죠. 최근 여러 서비스를 런칭했다가 쉽게 종료하고 있는 구글의 움직임도 불안합니다. Stadia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최근의 다른 서비스처럼 언제든지 종료 시킬 가능성도 열려있습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현재로서는 좀 더 현실성이 높아보입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기술적으로는 뒤떨어져 보이지만 애플 디바이스에서만 실행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제약사항도 없습니다. 애플이 직접 게임을 퍼블리싱하므로 애플 디바이스에서는 최적의 경험을 보여줄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서비스하는 국가의 언어도 기본적으로 지원하겠죠. 구글 Stadia가 북미를 벗어나 서비스를 언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애플 아케이드는 출시부터 이미 전세계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의 성숙도도 차이가 큽니다.
애플 아케이드 모델은 사용자 뿐 아니라 게임 개발자들에게도 좋은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구독 서비스처럼 컨텐츠에 접근하는 문턱을 크게 낮춰줄 것입니다. 구독자들은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될 수 있는대로 좀 더 폭 넓은 게임을 즐기려고 할 것입니다. 구독제 서비스의 이런 환경은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나 음악이 알려지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넷플릭스의 여러 비상업적인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죠.) 애플 아케이드는 많은 인디 개발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역시 애플 아케이드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애플 디바이스에 한정된 생태계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70% 이상은 안드로이드이고, 아직 90%의 PC는 윈도우입니다. 게임 개발자들로서는 더 큰 시장을 놔두고 좀 더 좁은 애플 디바이스 시장에서만 게임을 출시해야한다는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특히 더 큰 시장을 노려야하는 대형 개발사들이 애플 아케이드에 참여하지 않게 되면 결국 구독자 수는 줄어들고 애플 아케이드 생태계는 고사 당하겠죠. 아이튠즈에서 그랬듯이 애플로서는 생태계에 참여하는 개발사들을 위한 충분한 당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애플 디바이스 사용자들은 통계적으로 지갑을 열기가 수월하다는게 메리트라면 메리트겠죠.)
사실 이 글에서는 구글의 Stadia와 비교하긴 했지만 애플 아케이드는 경쟁을 하는 무대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두 서비스는 게임 서비스라는 것 외에는 경쟁 서비스라고 부를만한 여지는 적습니다. 애플 아케이드가 대세가 되어봤자 애플 디바이스 안에서 한정된 이야기죠. 그러나 애플 아케이드가 성공한다면 다른 플랫폼에도 애플 아케이드와 비슷한 서비스들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스팀 패스 같은 것도 나오지 않을지..?) 하지만 ‘애플 하드웨어를 위한 추가 서비스’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계도 동시에 갖고 있어 아직 애플 아케이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감이 있습니다.
전 애플 아케이드를 구독할 것 같습니다. 앱스토어의 게임 카테고리에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가지만 요즘엔 양질의 게임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 힘듭니다. 유료 게임은 가격을 먼저 지불하고 다운로드 하기 때문에 판단이 잘 안들고(환불도 잘 안해주고..), 프리-미엄 게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결국 유료 게임은 유명한 게임만 구매하게 됩니다. 아마 저 같은 사용자에게는 애플 아케이드가 훌륭한 대안이 될 것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아마도 9월?)까지 구독료 들고 기다리고 있으면 뚜껑을 열 것입니다. 이번에 WWDC에서 좀 더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애플 아케이드 이야기는 잠깐 스쳐지나가기만 했습니다.
덧. Stadia 정보 업데이트
이 글은 사실 며칠전에 쓴 글입니다.(WWDC가 열리기 전에 썼던 글이라 WWDC 이후 한차례 수정을 했었죠.) 이 글을 올리기 직전인 6/6에 구글이 Stadia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밝혔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금제”를 발표했죠.
구글이 밝힌 정보에 의하면 Stadia는 두가지 요금제로 구성되어있습니다. Stadia Pro와 Stadia Base입니다. 먼저 Stadia Pro는 예상한 대로 클라우드 기반의 구독형 서비스입니다. 월 10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구글이 클라우드에서 “엄선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전 Stadia에 있는 게임을 전부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좀 의외였습니다.(의외인 부분은 구글이 큐레이션한다는 사실보다 스트리밍 이외의 개별구매 게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엑스박스 게임 패스처럼 게임을 할 수 있는 목록에 구글의 큐레이션이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로 Stadia Pro보다 Stadia Base가 흥미롭습니다. Base는 기본 요금제로 “무료”입니다. 그 대신 Stadia에서 개별 게임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별 게임을 구매하면 그 게임은 별도의 월 구독 비용 없이 즐길 수 있죠. Base는 구독형이라기 보다 개별로 게임을 구매하는 스팀 같은 느낌입니다. 다만 스트리밍이니 스팀 홈 스트리밍에 좀 더 가깝달까요? 게임이 디바이스에 설치되는 것도 아니고 네트워크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소유”의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게임 클라우드 서비스에 개별 구매 개념을 도입한 것 자체가 신선합니다. 게임을 구매한다는 느낌보다, 특정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독점 입장권을 산다는 느낌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인터넷이 없으면 플레이조차 할 수 없는 게임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하긴 불과 스팀이 처음 나온 15년전만 해도(쓰고보니 ”불과”라기엔 너무 옛날이네요.) 게임이 패키지 형태로 선반에 꽂혀 있지 않고 어딘가 네트워크에서 받아서 설치해온다는 개념이 불안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도 인터넷 없이 게임을 설치도 못하는데 구매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많았죠. 어쩌면 Stadia는 또 하나의 급진적인 정답을 내놓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구글의 또 다른 서비스 종료작이 될 수도 있겠죠.(상세 정보가 밝혀지니 개인적인 평가로는 좀 더 전망이 어두워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