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전 글 : 애플이 클라우드 게임을 앱스토어에서 허용하지 않는 이유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 새벽에 열리는 애플의 이벤트를 앞두고 애플의 앱스토어 규정 개정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에픽과의 소송이 영향이 있는 것인지 인앱 구매에 대한 규정들이 많은 부분 개정이 되었습니다.
근데 개정안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클라우드 게임(스트리밍 게임) 서비스가 앱스토어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입니다. 이전의 전면 금지에서 입장을 선회한 셈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 애플이 클라우드 게임을 앱스토어에서 차단하고 있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논리적이지 않았습니다. 개별 게임에 대해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실행되는 게임들이 개별적으로 심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도 아니었고, 다른 앱에서 유통되는 컨텐츠에 대해서는 일일이 심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인앱 결제 이슈와 다르게 클라우드 게임의 차단은 근거가 매우 약했기 때문에 만약 MS가 소송에 정식으로 돌입했다면 애플로서는 상당히 이기기 어려운 소송이 되었을 것입니다. 애플도 이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번 앱스토어 규정 개정을 통해 앱스토어에 클라우드 게임이 서비스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죠.
클라우드 게임이 서비스 될 수 있게 되었지만..
근데 앱스토어의 이번 규정은 좀 특이합니다. 클라우드 게임이라고 해도 개별 게임처럼 애플에 등록하여 심사를 받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클라우드에서 실행되는 게임이라도 기존에 아이폰에서 자체적으로 실행하던 게임처럼 각각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고 앱스토어에 등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Halo가 클라우드에서 실행되더라도 앱스토어에 출시하려면 Halo 게임 자체를 앱스토어에 심사 요청을 하고 마치 개별 앱이 설치되는 것처럼 앱스토어에서 설치되어야합니다. 클라우드 게임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설치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봤을 때 좀 특이한 요구입니다.
현재 안드로이드 플랫폼에서는 게임 패스나 Stadia는 하나의 앱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앱스토어의 변경된 규정에 의하면 게임패스나 Stadia 같은 앱도 iOS에 출시될 수는 있습니다. 다만, 해당 앱들은 클라우드 게임을 직접 실행하는게 아니라 앱스토어에 올라가 있는 개별 클라우드 게임을 소개하고 링크로 연결하는 카탈로그(catalog)의 기능만 수행해야합니다. 직접 클라우드 게임을 실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애플은 왜 이렇게 개정했을까?
이 규정은 분명 클라우드 게임이 앱스토어에 진출될 수 있도록 애플이 방법을 마련한 것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해당 규정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궁극적으로 클라우드 게임은 설치가 필요 없는 개념인데, 마치 설치되는 것처럼 보이게 가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게임패스 앱 하나로 해결될 것을 여러 앱으로 나누게 되면 사용자 경험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 애플은 왜 이렇게 희한한 방식으로 규칙을 개정했을까요? 애플은 당연히 여기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마치 클라우드 게임을 허용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실효적이지 않은 규칙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여전히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규칙이 너무 복잡해보입니다. 왜 굳이 클라우드 게임에 ‘설치’라는 불필요한 개념을 요구하는걸까요? 제가 해석하기엔 앱스토어의 규정을 최대한 바꾸지 않으면서 클라우드 게임을 허용하기 위한 애플 나름의 묘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클라우드 게임을 허용해주지만 애플이 전면적으로 백기를 든 형태가 아닌 것이죠.
다른 컨텐츠와 앱/게임은 다르다는 애플
최근의 여러가지 앱스토어 논란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넷플릭스는 왜…”입니다. 넷플릭스는 앱스토어에서 많은 것들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앱 외부에서 결제를 두고 있기도 하고, 스트리밍되는 컨텐츠들이 애플의 승인을 일일이 받지도 않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넷플릭스는 왜…” 논리를 적용해보면 클라우드 게임도 애플에 개별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근거가 여전히 희박해보입니다.
근데 최대한 애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앱과 게임은 다른 컨텐츠들과 이야기가 다릅니다. iOS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애플이 컨텐츠를 배포하는 플랫폼은 크게 네가지 입니다. 먼저 동영상과 음악을 배포하는 1) 아이튠즈 스토어가 있습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는 점점 애플 뮤직과 애플 TV로 나눠지고 있는 중이죠. 또 하나는 전자책을 배포하는 2) iBooks가 있습니다. 뉴스 기사를 배포하는 3) 애플 뉴스도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앱과 게임을 배포하는 4) 앱스토어가 있습니다.
음악, 동영상, 전자책, 뉴스는 각각 위의 1) ~ 3) 서비스에서 배포되는 컨텐츠 입니다. 넷플릭스, 뉴욕타임즈, 리디북스 등의 앱들은 각각 이런 서비스들의 경쟁자들입니다. 애플은 이런 앱들도 1) ~ 3) 앱과 동일하게 하나의 앱에서 컨텐츠들을 서비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서비스들에 올라오는 컨텐츠들은 애플이 별도의 승인이나 심사를 하지 않습니다. 이 서비스들도 애플의 1) ~ 3) 서비스를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습니다.
근데 4) 앱스토어는 앱과 게임을 배포하는 서비스입니다. 앱스토어에서 설치되는 앱과 게임들은 iOS의 메인화면에 아이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앱스토어 서비스의 중요한 규칙이고 iOS의 사용자 경험에 중요한 부분이죠. 그런데 앱스토어에서 설치되는 앱이 또 다른 앱스토어 형태가 되어 거기에서 또 다른 앱을 설치하도록 한다면? iOS에서 앱을 배포하는 것이 목적인 앱스토어에 중대한 간섭이 생기게 됩니다.
앱스토어는 비유하자면 오픈마켓 서비스와 같습니다. 개발자는 오픈마켓의 판매자와 같죠. 아마존이나, 이베이, 옥션 플랫폼에서 장사를 하면서 해당 플랫폼에서 허용하지 않는 물건을 팔거나 수수료를 안내려고 자체 결제를 만들어 결제를 유도하는 판매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를 허용하는 오픈마켓 서비스는 아마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로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볼까요?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Spotify가 음원제공자로 참여해 일부 소비자들에게 따로 돈을 받아 음원을 판다고 가정해보죠. 아이튠즈 스토어에 있지만 Spotify에 따로 돈을 주지 않으면 해당 음원들이 검색도 되지도 않는다면? 기술적으로도 말이 안되지만 서비스 입장에서는 당연히 허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앱과 게임을 배포하는 것이 주 서비스인 앱스토어에서 판매자(개발자)가 자체적인 앱스토어를 만들거나 클라우드 게임이 모여있는 앱을 만드는 행위도 위 사례들과 같습니다. 그래서 애플은 설치가 필요 없는 클라우드 게임이라고 해도 반드시 앱스토어를 통해서 배포되어야 하며,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아야한다는 방향으로 규정을 바꾼 것이죠.
사용자 경험 측면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도 클라우드 게임은 특정 앱을 통해 실행해야하고, 일반적인 게임은 앱스토어를 통해 실행해야하는 방식은 좋지 않습니다. 저와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클라우드 게임과 일반 게임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지만, 일반 사용자들은 기술적인 차이를 알기 어렵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기술의 차이에 따라 게임을 실행하는 경로가 달라진다는 것은 일반 사용자들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죠.
애플의 이런 배려(?)가 반영된 것이 애플 아케이드입니다. 애플 아케이드는 일반 게임들과 달리 구독제 형식으로 배포되지만 다른 앱스토어에서 배포되는 게임처럼 앱 아이콘 형태로 설치됩니다. 애플 아케이드라고 게임의 실행 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죠.(물론 애플 아케이드 게임만 따로 모아서 실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사항도 계속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만..)
마무리
이 글은 최대한 애플의 입장에서 이번 규정의 개정에 담긴 애플의 의도를 해석해봤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야기는 전 여전히 명분이라고 봅니다. 실제로는 여전히 클라우드 게임이 애플 생태계에 유입되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하고 있어 일부러 복잡한 규정을 가져온 것이죠.
하지만 애플 입장에서는 이번 규정 개정으로 나름의 자구책을 만든 셈입니다. 예전의 애플의 주장은 궤변 뿐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근거가 있고 논리적입니다. 통로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MS가 이를 독점이라고 부르며 소송을 걸만한 근거도 부족해 보입니다.
애플의 입장이 아예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앱스토어가 앱과 게임을 배포한다는 주 목적을 갖고 있는 서비스인데 앱스토어를 통해 설치한 앱이 앱과 게임을 다시 배포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만약 소송을 통해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개발자가 자체 스토어를 만드는 것도 인정해주고, 자체 결제를 다는 것도 인정해준다면 그 일의 여파는 상당히 클겁니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제가 아마존에 입점한 다음, 아마존에 주는 수수료가 아까워 자체 결제를 붙여도 아마존은 저를 판매 중단할 근거를 찾기 어려워질겁니다. 제가 아마존 내의 자체 스토어를 열어 아마존에서 허용하지 않는 물건을 판매해도 아마존은 저를 차단하지 못할겁니다. IT 업계의 전체적인 관점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앱스토어 독점 논란은 앱과 게임이 앱스토어를 통해 배포되는 한 앱스토어를 공격해서는 절대 애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는데 많은 논란들이 본질을 놓치고 있죠. 이 부분은 다른 글을 통해 한번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