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그 기업이 매년 전세계 스마트폰 이익의 80%를 넘게 가져가고 있고, 그 기업에서 나온 제품을 사기 위해 매년 장사진을 치는 풍경을 보면서도 우리는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이 언젠가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또 일부는 그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게 벌써 6년 째 반복되는 일입니다.
이번 새로운 아이폰 발표, iOS11 등의 제품에 대해서도 “스티브 잡스였다면..”이라는 가정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글쎄요. 스티브 잡스 치하의 애플에서는 모든게 아릅다고 완벽하기만 했을까요?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은 더이상 혁신적이지 않다.”
애플이 스티브 잡스 이후 가장 흔하게 듣는 비판은 “혁신이 없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혁신의 아이콘이 된 것은 죽어가던 애플을 체질적으로 개선시키고 제품의 라인업을 단순하게 줄인 그의 업적에도 있겠지만, 그가 “Revolutionary” 같은 형용사를 즐겨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혁신(革新)”이라는 단어에 있는 한자 “혁(革)”은 일반적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무언가를 바꾸는 일을 뜻합니다. 혁명에도 “혁”이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영어 단어 Revolution도 기존에 있던 무언가를 뒤 엎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기존에 있던 것을 바꾸거나 없애고 새로이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것을 바꾸거나 없애는 것은 항상 누군가의 저항이 발생합니다. 모두가 만족하는 혁신이라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고 개선에 불과하겠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복귀 후 죽어가는 애플을 살리기 위한 제품으로 아이맥을 선보입니다. 아이맥은 디자인도 혁신적이었지만 그 당시 컴퓨터에 필수적으로 쓰이던 플로피 디스크를 없앤 최초의 컴퓨터라는 점에서 상당히 혁신적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에서 플로피 디스크 없이 데이터 공유는 상상할 수 없었죠. 당연히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맥은 잘 팔렸고 이후 델에서 플로피 디스크 없는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플로피 디스크는 급격하게 내리막 길을 걷게 됩니다.
이는 최근 아이폰7에서 3.5파이 이어폰 단자를 제거한 것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어폰 단자도 플로피 디스크처럼 스마트폰에 당연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애플은 이를 과감하게 제거해버렸습니다. 아이폰7에서 이어폰 단자를 제거한 것은 사용자를 위한 결정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이어폰 단자가 사라져 버리면 기존에 갖고 있던 이어폰들이 하루 아침에 못 쓰게 되죠. 악세사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을게 하나 없습니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이어폰 단자를 제거한 이유는 오로지 애플의 기술적인 이득 때문이었습니다. 이어폰 단자가 제거됨에 따라 그만큼의 빈공간만큼을 보다 발전된 카메라 모듈과 더 커진 배터리로 채웠죠. 사용자의 이득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폰7은 그야말로 날개돋친듯 팔려 아이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이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맥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제외한 것은 보다 컴팩트하고 심플한 컴퓨터 설계를 위함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플로피 디스크의 대안으로 ODD(CD-ROM, DVD)를 강조했죠. ODD는 플로피디스크처럼 자유롭게 읽고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거의 궤변에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맥은 인기있는 제품이었고 플로피 디스크는 사장 되었죠.
제 생각엔 이런 측면에서 아직도 애플은 혁신적이라고 봅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 치하의 애플도 “혁신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이패드죠. 아이패드는 스티브 잡스가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환호했지만 한편에서는 아이폰을 그냥 늘려녾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었죠.(저 또한 비판했던 사람 중 하나..)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졌다.”
“혁신이 없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많이 듣는 비판 중 하나입니다.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 제품의 완성도가 과연 떨어졌을까요?제가 아이팟 터치를 쓰고 있을 때 iOS4에서 iOS5로 업데이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iOS5로 업데이트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느날 간헐적으로 무선랜이 동작하지 않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한번 무선랜이 동작을 멈추면 기기를 재부팅할 때까지 동작하지 않곤 했었죠. 통신 방법이라고는 무선랜 밖에 없던 아이팟 터치였던지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후 이 버그는 iOS5.2에 이르러서야 수정되었습니다. 버그가 수정되는데 몇달이 걸렸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iOS 계열 제품을 쓰고 있지만 그런 치명적인 버그는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iOS5는 스티브 잡스가 있던 시절 마지막으로 나왔던 운영체제였죠.
물론 위 사례는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했지만 iOS에서 일어나는 버그들은 그 수를 봤을 때 이전보다는 확실히 늘어난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iOS와 지금의 iOS는 지원하는 기기 수에서, 지원하는 언어 면에서, 외부 연동의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죠. 아무래도 많은 기기들이 늘어나다보면 테스트하기 어려워지는 환경도 사실입니다. 이런 환경을 감안해본다면 애플이 출시 후 이 정도의 안정성을 가져가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놀랍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는 어떨까요? 하드웨어도 매년 비판을 받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아이폰이 워낙 많이 팔리는 제품이다보니 이런 하드웨어 결함은 “게이트”라는 용어가 붙기도 합니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향후 수정하기도 어려워서 난감하죠.
스티브 잡스 때의 가장 대표적인 하드웨어 결함이라면 역시 “안테나 게이트”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폰4에서 있었던 “안테나 게이트”는 핸드폰을 잡고 있으면 전파의 수신율이 내려가는 문제였습니다. 애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이랑 안테나 부분이 직접 닿지 않도록 하는 범퍼 케이스를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뭐가 되었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죠.
그 외에도 바람에도 기스가 난다고 하는 아이팟, 고성능 작업시 과열로 코어가 하나 꺼져버리는 맥북에어 등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 하드웨어도 결함이 항상 있었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애플 하드웨어에 주목하는 정도가 달라지면서 문제 또한 빨리 밝혀지고 쉽게 전파가 되죠. 이전보다 문제가 많아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 시절과 지금의 애플은 같지 않다.
앞에서는 지금까지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과 지금의 애플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 팀 쿡이라는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고 애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스티브 잡스 때와 달리 애플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환경에 대한 투자를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 그리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고 사회적 책임 부분에 대해서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지만 팀 쿡의 경우 이런 부분에 있어서 스티브 잡스와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지금의 애플을 보면 왕년에 환경을 그리도 강조했던 노키아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또한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과 애플의 생태계는 단단히 빗장을 걸어잠근 페쇄적인 생태계였다고 한다면 지금의 애플은 여전히 폐쇄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많은 부분을 열어놓고 함께하려고하는 바가 보입니다. “Kit”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개발자 도구는 서서히 iOS 생태계를 열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겠죠.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과 지금의 애플은 규모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많이 달라졌죠. 기존의 애플의 경쟁상대는 MS, 델 등의 전통적인 제조사였다면 지금은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공룡 IT 서비스 기업들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달라진 리더십이 필요하고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더라도 애플은 지금과 비슷하게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스티브 잡스의 뒤를 잇는 CEO로서 팀 쿡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기도 하죠. 스티브 잡스가 이루어놓은 것들을 받아서 편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라는 스타의 뒤를 잇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스티브 잡스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주들로부터 얼마든지 축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팀 쿡은 스티브 잡스의 후광에 안주하지 않고 그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플은 “공급의 마법사” 팀 쿡 체제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시절에도 아이폰은 많이 팔렸지만 현재 아이폰은 매년 10억 대 이상을 팔고 있습니다. 첨단 부품이 들어가는 스마트폰이 매년 10억대가 팔리고 이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죠. 잘 돋보이지는 않지만 이는 스티브 잡스가 갖추지 못한 팀 쿡의 장점이 여지없이 발휘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애플이 직면하고 있는 비판 중 과거와 비교해 예전만 못하다는 비판은 이젠 거의 영양가가 없어보일 지경입니다. 사실 애플은 과거보다 훨씬 잘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걱정해야할 것은 앞으로의 미래일 것입니다.
과거부터 보였던 현상이지만 애플은 여전히 아이폰 판매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이를 “서비스 영역”으로 대체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아이폰의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죠. 게다가 아이폰은 사실상 매년 한대씩 나오기 때문에 리스크가 상당히 높습니다. 다행히도 매년 아이폰은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잘못해서 작년의 갤럭시 노트 7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애플로서는 상당히 치명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플은 이것을 아이패드의 비중 강화와 아이폰의 다변화로 리스크를 조금 줄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이폰X와 아이폰8이 같이 출시된 올해 같은 경우가 있겠죠. 아이폰X가 시장에 먹히지 않거나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아이폰8을 출시한 것입니다. 이 결정은 리스크를 확실히 줄여주긴 했지만 최근의 아이폰8 판매 추이를 보면 그다지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 애플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은 바로 인공지능 시대의 딜레마입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제 애플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거대 서비스 기업들입니다.
이런 서비스 기업들은 고객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산해내는 귀중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이 두 기업이 인공지능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애플은 위 두 기업과는 달리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 힘을 쓴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워낙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애플이 인공지능에서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애플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했지만,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서는 데이터가 생명이기 때문에 애플이 앞으로 정보 보호와 인공지능 개발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줄타기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