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맥북 에어를 퇴근 후나 주말용 개인 컴퓨터로 써보자고 한 뒤 약 한달 정도 지났습니다. 오늘은 그 결과와 얻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
일단 이렇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다시 짚어보자면, 제 경우 아이패드 프로와 맥북 에어를 둘 다 쓰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프로(11인치)는 M4, 맥북 에어(13인치)는 M2 모델이죠. 둘 다 엄청나게 겹쳐서 항상 충돌하고 있습니다.
다만 두 기기가 용도에는 차이가 좀 있는데, 아이패드 프로는 회사랑 개인 용도 둘 다 사용되고 있지만 맥북 에어는 완벽하게 개인용입니다. 회사 정책상 아이패드는 모바일 기기로 취급되어 업무에 사용할 수 있지만 개인용 맥북은 사용할 수 없거든요.

문제는 주말이나 퇴근 후 아이패드 프로를 집에서 사용하는 중에도 본의 아니게 자꾸 회사일을 본다는 겁니다. 운영체제에서 지원되는 집중모드로 알림 같은 설정은 대충 컨트롤 가능하지만 갑자기 알림이 온다거나, Slack 아이콘에 알림 뱃지가 있다거나 하면 무심코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그러다 집에서 운휴 상태로 있던 맥북 에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맥북 에어는 회사 정책 때문에 아무것도 깔 수 없어서 업무와 개인 영역에서 다목적으로 쓰긴 어려웠지만 그래서 오히려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청정 지역이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퇴근 후 또는 주말에 회사와 분리되기 좋은 환경이었죠. 그래서 아예 용도별로 컴퓨터를 분리하는 물리적 분리를 시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달 동안 거의 퇴근 후 아이패드 프로를 가방에서도 꺼내지 않고 맥북 에어만 주로 사용했습니다.
얻은 것
일단 이렇게 사용하면서 얻게 된 것은 역시 정신적 평화입니다. 개인 맥북은 회사 업무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퇴근 후 개인 작업할 때 좀 더 몰입하는 경험이 가능했습니다. 집중모드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분리가 아니라 아예 물리적으로 기기를 분리하는게 확실했습니다.
또 하나 얻게 된 것은 눈의 편안함(?)입니다. 아이패드 프로가 화면이 훨씬 좋지만 맥북 에어는 아무래도 13인치다보니 물리적 크기 차이가 꽤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패드 프로 쪽은 다크모드에서 OLED 특유의 문제도 있었는데, OLED가 LCD보다 다크모드에서 훨씬 어둡다보니 주변 환경과의 광량 차이로 오는 침침함이 있었는데 맥북 에어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습니다.(아이패드 프로를 라이트 모드로 쓰면 해결될 문제이긴 합니다만..)
또 하나 깨닫게 된 것은 노트북 폼팩터의 범용성이었습니다. 맥북 에어나 아이패드 프로 말고도 저는 데스크탑, 스팀덱, 애플 TV 등 다른 컴퓨터와 기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 기기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특화되어있는 기기들이죠. 그런데 새삼 맥북 에어를 오랫동안 써보니 이 모든 기기들이 하는 역할을 모두 맥북 에어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특화된 기기들에 비하면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맥북 에어 한대로 많은 기기를 대체할 수 있었죠.
이런 범용성은 아이패드 프로는 갖추지 못한 부분입니다. OS의 제한이 가장 크지만 포트 제한, 크기 등에서도 여러가지 제한이 따르죠. 맥북 에어 정도 가격에, 이런 범용성과 가벼운 무게, 배터리 지속 시간, 휴대성을 생각하면 맥북 에어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한계
물론 맥북 에어가 모든 경우에 적합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패드 프로 병에 걸리는 거겠죠.
일단 역시 디스플레이가 가장 아쉬웠습니다. OLED를 쓰다가 LCD로 돌아온게 눈은 뭔가 편하긴 했지만 역시 화질에서는 아쉬웠어요. 맥북 에어 디스플레이가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맥북 에어 디스플레이의 밝기는 아이패드 프로에 비해 너무 어두웠습니다. HDR 지원이나 프로모션 같은 부분도 아쉬운 부분이죠.
또 하나 아쉬운건 폼팩터의 한계였습니다. 역시 키보드를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전통적인 노트북 폼팩터는 범용 컴퓨터로는 괜찮지만 다용도로 사용하기엔 아쉽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노트북 폼팩터, 태블릿 폼팩터를 오갈 수 있고 심지어 걸어다니면서도 쓸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그림도 그릴 수 있죠.
맥북 에어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보니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여행 갈 때 기차나 버스에서 쓰기에 맥북 에어는 너무 크고 거추장스러웠습니다. 특히 작업 공간이 협소할 때는 쓰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폼팩터 상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아이패드 프로가 한 수 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쓴다면?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여러 영역에서 충돌하는 기기 두개 중 하나만을 남기기 위한 테스트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만약 하나만 쓴다면 어떨까요? 결과부터 말하자면 역시 둘 다 필요하다는 결론입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새로 사야하는 입장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맥북 에어가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맥북 에어 하나면 생각보다 여러 기기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이나 자취를 하는 입장에서 하나만 선택한다면 노트북만한 기기가 없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산다면 보조하기 위해 아마 여러 기기가 더 필요해질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에겐 역시 아이패드 프로인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를 이미 개인용, 업무용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없으면 생업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는 상황이거든요. 그리고 아이패드 프로의 휴대성과 다용도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마무리
어쨌든 지금은 서로 충돌하는 기기를 둘 다 쓰고 있는 입장에서 각 기기를 어떻게 해야 좀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결과 결론은 어느정도 나온 것 같습니다.
1) 퇴근이나 주말 후 개인용 메인 컴퓨터 : M2 맥북 에어
2) 업무시 휴대용 컴퓨터, 가벼운 개인 작업용, 여행용 컴퓨터 : 아이패드 프로
결국 제 사용 목적에서 아이패드 프로의 비중을 줄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개인 영역과 회사 업무 간의 물리적인 구분이 필요해지면서 맥북 에어의 용도가 좀 더 확실해졌다는 것은 중요한 성과인 것 같습니다.
결국 둘 다 쓰는게 좋다는 결론이지만 역시 아직도 저는 하나의 컴퓨터로 모든걸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폴더블 맥북이 나오면 해결될 수 있을까요?
덧.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아이패드랑 맥북을 둘 다 들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아이패드는 애초에 컴퓨터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둘 중 하나만 들고 다닙니다.
이 두 기기가 본격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한건 아이패드 프로의 용도가 확장되면서 였던 것 같습니다. 이번 WWDC에서 발표된 iPadOS의 변화로 이런 충돌은 (좋은 의미로) 더 심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