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지금은 세상에 없는 회사인 썬 마이크로시스템즈(현 오라클)에서혁신적인 데스크탑 창관리 시스템이 하나 발표되었습니다.
이름은 “루킹 글래스”. 뒤가 보일 정도로 투명한 유리라는 뜻이죠. 루킹 글래스 프로젝트는 상당히 실험적인 인터페이스였는데, 데스크탑의 모든 것이 GPU 가속을 통해 3D로 렌더링되며, 창의 뒤가 비쳐보이는 투명 인터페이스를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2D에 머물던 컴퓨터의 작업 공간을 3D로 바꿔놓는 혁신적인 인터페이스였습니다.
Dock에서 창을 관리하기도 하면서 모든 창을 옆으로 치워놓을 수도 있었고, 특정한 창은 시선에서 멀리 배치시키거나 어떤 창은 가까이 옮기는게 가능했습니다. 옆으로 치워놓은 창 옆에는 타이틀을 보이도록해서 어떤 작업인지 알 수 있게 해놨죠. 단지 보기 좋은 것 뿐 아니라 실용적인 인터페이스였습니다.
이 인터페이스는 자바 기반이었지만 당시 리눅스와 유닉스의 표준 윈도우 시스템인 X 윈도우와 호환되는 인터페이스로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상용화 되진 못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이런 인터페이스를 렌더링하기엔 일반 PC에서는 너무나도 비용이 높았거든요.
하지만 나름대로 관련 업계와 리눅스 커뮤니티에서는 나름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사건입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컴퓨터의 GUI(Graphic User Interface)는 제록스가 만들어내고, 맥OS, 윈도우 95 등을 거치면서 발전한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2D의 작업 공간에 3D를 결합하면서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데모였죠.
그로부터 20년이 지났고 컴퓨터도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아직 우리의 컴퓨터 작업 공간은 2D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윈도우 95 때 화면과 지금의 윈도우 11의 데스크탑 화면을 비교해보면 솔직히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2D의 평평한 공간에서 복잡하게 창을 나열하고 이리저리 옮기면서 작업합니다. 창이 서로를 가리면 Alt Tab 을 누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도 없죠.
아무래도 이런 작업 방식이 최적의 방식은 아닐겁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진거죠. 제록스의 연구소에서 GUI가 처음 나온 이래로 40년 동안 우리는 마우스와 키보드, 창으로 가득찬 2D 공간의 화면에서 작업하는데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물론 루킹글래스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가능성이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리눅스 데스크탑의 Compiz부터 시작해 윈도우의 Aero 인터페이스, 맥OS 할 것 없이 2D의 평평한 윈도우를 탈피해 데스크탑을 3D로 바꿔놓는 시도들이 있었거든요.
아래는 제가 우분투 14.04를 2013 맥북 에어에서 설치해서 돌렸던 Compiz의 인터페이스 소개입니다. 보면 지금 제가 쓰는 맥북 에어(M2)보다 더 화려해보이네요.
Compiz의 가장 큰 업적이라면 리눅스와 유닉스 시스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가상 데스크탑을 사용자의 직관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데스크탑을 정육면체의 가상 공간으로 만들어서, 가상 공간이 서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전달한거죠. 가상 데스크탑의 개념은 오래되었지만 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한 것은 Compiz 덕분일겁니다. 이후 맥OS나 윈도우 등에서도 가져다 썼죠.
Compiz는 그 외에 푸딩처럼 찰랑 거리는 창을 비롯해 여러가지 효과가 있었지만, 많은 효과들이 실용적이진 못했습니다.
윈도우에서는 윈도우 비스타에 Aero 라는 효과를 도입했었습니다. 윈도우 비스타 시절만해도 데스크탑 꾸미기 광풍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운영체제 회사들이 화려한 눈요기(eye-candy) 기능에 열을 올리던 때입니다.
윈도우 비스타에서 상당한 효과들이 많이 들어갔는데, 루킹 글래스에서도 소개되었던 창 테두리를 투명하게 하는 기능, 그리고 윈도우 키 + Tab으로 창을 화려하게 전환하는 기능(이건 솔직히 그냥 화려하기만 했죠) 다양한 위젯 등, 칙칙하던 윈도우에 본격적으로 3D 데스크탑 인터페이스를 도입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사양에 비해 너무 급진적인 도전이었다는 것이죠. 당시 운영체제 자체가 너무 무거웠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바로 윈도우 7에게 바통을 넘겨주었습니다. 윈도우 7은 비스타나 다를바 없었지만 그때는 컴퓨터들의 사양이 많이 좋아져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구동이 가능했습니다.
맥OS는 다른 운영체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었으나, 역시 눈요기 기능에서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들 눈치채기 쉽지 않지만 데스크탑을 3D로 바꿔놓은 실용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작업 창의 ‘그림자’ 입니다. 컴퓨터 사양이 별로 안좋던 시절만해도 이 그림자 자체도 어느정도 그래픽 가속이 있어야만 렌더링이 가능했습니다.
창에 그림자가 추가된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지만, 창 그림자(Drop Shadow)는 2D 공간의 그냥 떠있는 납작한 데스크탑 공간에 깊이를 부여했습니다. 창과 창 사이에 그림자를 배치함으로서 무질서하게 떠있는 창들이 서로 어떤 순서로 떠 있는지 사용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는거죠.
창 그림자는 맥OS에서 처음 도입된건 아니지만 맥OS는 창 그림자에 엄청나게 신경 썼습니다. 맥OS에서 스크린샷을 찍어보면 창보다 훨씬 크게 찍히는데, 다른 운영체제보다 이 창 그림자 영역이 훨씬 넓어서 그렇습니다. 그래픽 리소스를 상당히 많이 소모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창의 뎁스를 좀 더 명확히 표현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죠.
맥OS의 또 하나의 3D 효과는 바로 레오파드에 처음 도입되었던 Dock의 반사되는 표면입니다. 이 기능은 Dock의 아이콘부터 창에 비치는 부분까지 모두 실제로 3D 렌더링해서 그려냈죠.(반사 부분을 그냥 이미지로 반전 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이 당시 아이폰부터 유행했던 스큐모피즘의 일종인데 잘 보이지도 않고 쓸모 있지도 않지만 그래픽 자원은 많이 먹는 아름다운 기능이었습니다.(이건 최근 맥OS에서는 삭제되었죠)
이렇게 꽤 최근까지도 컴퓨터 운영체제의 GUI는 기존의 2D 데스크탑에 깊이를 더하고, 투명도를 더하고 반사를 더하는 등 컴퓨터 자원을 쓰면서도 작업 공간을 3D화 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컴퓨터를 쓸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도 근본적으로는 윈도우 95의 GUI와 큰 차이를 못 느끼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많은 노력들은 창의 각도 자체를 바꾸진 못했거든요. 여전히 우리의 작업 공간은 모든 창이 사용자를 향해 정면을 향하고 있고, 사용자들은 여전히 겹치는 창과 창 사이의 최적의 공간을 테트리스하듯히 배치해야 했거든요.
루킹글래스의 스크린샷을 다시 보면 불필요한 창은 옆으로 돌려서 메인 작업 공간을 가리지 않도록 만들었던걸 알 수 있습니다. 위의 여러 운영체제에서 시도했던 것들도 현재 데스크탑에서 멀티태스킹 진행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습니다. 바로 창이 서로를 가리는 문제 말이죠.
그러다가 2022년에 애플에서 소박하게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발표되었습니다. “스테이지 매니저”라는 기능이었죠. 스테이지 매니저는 본래 아이패드의 멀티태스킹을 해결하기 위한 애플의 대안이었지만 맥OS 벤츄라에도 도입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맥OS와 아이패드의 창 관리 인터페이스가 동일해짐과 동시에 멀티태스킹에 있어 상당히 급진적인 변화를 겪게 된 겁니다.
스테이지 매니저는 사용자 경험을 강제로 밀어부치기로 유명한 애플 조차 겸손하게 도입하고 있지만 상당히 파격적인 인터페이스입니다. 모든 창을 나열하던 기존의 창 관리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번에 하나의 창에만 집중하는 아이패드처럼 메인에 있는 창만 정면을 보고 있고 나머지 창들은 방해되지 않게 옆으로 작게 줄어들어 비켜 서 있습니다.
이 모습은 루킹 글래스와 상당히 비슷해보이죠. 어쩌면 루킹 글래스 프로젝트의 가장 현대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플은 스테이지 매니저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도입했지만, 그럼에도 사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스테이지 매니저의 낮은 완성도도 문제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작업 방식 자체가 사람들에겐 낯설었거든요. 애플도 스테이지 매니저를 무작정 밀기보다는 선택 사항으로 두면서 기존 작업 방식을 기본으로 두었습니다.
요 스테이지 매니저는 워낙 급진적으로 탄생했다보니 완성도가 좀 낮긴 했지만, 막상 써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창 관리 방식입니다. 아이패드와 맥의 창 관리 방식의 장점만 가져다 놓았거든요. 아이패드처럼 메인 작업 중인 창 하나에 집중하면서도 맥OS처럼 여러 창을 원하는 방식대로 관리할 수 있죠. 무엇보다 창 하나가 다른 창을 완전히 가리지 않아서 창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테트리스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도 쉽게 선택할 수 있구요.(이건 아이패드에서만 한정)
스테이지 매니저를 보면 컴퓨터의 작업공간이 이제야 3차원의 이점을 조금 살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루킹글래스 프로젝트가 발표된 이후 20년만이죠. 물론 아직은 여러모로 완성도가 낮은 느낌이라 많이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 확실히 창이 여러개 있을 때는 효과가 있는만큼 사용자 층을 서서히 늘려가는 느낌입니다.
3차원 작업 공간의 그 다음 단계는 어디일까요? 현실과 자연스럽게 결합되는 완전한 3차원 공간일겁니다. 현재 가장 현실화된 모습이 바로 비전 프로죠. 루킹글래스의 3D 데스크탑과 가장 닮아있지만, 이 창들은 실제로 3차원 공간에 배치됩니다.
하지만 스테이지 매니저조차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비전 프로의 작업 공간을 받아들이기까진 얼마나 걸릴지.. 결국 데스크탑 인터페이스의 혁신은 기술의 발전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잘 받아들일지의 문제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