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트북 답사기 (1)

우린 누구나 물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계에 얽힌 추억이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카메라에 얽힌 추억이 있을 수도 있겠죠. 저 같은 경우에는 전자 기기에 관심이 있고 많이 쓰다보니 주로 추억도 전자기기에 얽혀있는게 많습니다. 전 떠올려보니 유독 그 중에서도 노트북에 얽힌 추억이 많았습니다. 생산 도구라는 노트북이라는 물건의 특성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인생의 변곡점마다 같이했던 노트북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제가 썼던 노트북들과 얽힌 추억들을 되짚어 볼까 합니다.

1. P1510 (2006 ~ 2010)


제가 처음 노트북을 쓰기 시작한건 2006년입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노트북을 쓰고 있으니 11년 정도 써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노트북을 사게 된건 인강 목적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노트북을 골랐던 기준은 바로 “무게”였습니다. 노트북은 무조건 휴대성이 좋아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기준은 사실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그땐 약간 극단적으로 골랐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골랐던 노트북은 바로 후지쯔 p1510입니다. P1510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무려 5년을 썼으니 가장 저와 오래했던 노트북이자 기기였습니다. 당시 후지쯔 라이프북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

이었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물건이었습니다. 무게는 990g 밖에 되지 않았고 무려 터치스크린 방식을 탑재하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 말하자면 2 in 1 노트북이었습니다. 화면은 8.9 인치로 지금의 아이패드보다도 작은 크기이지만 여러가지 형태로 쓸 수 있어 꽤 다재다능한 녀석이었습니다.p1510은 기본적으로는 노트북 형태로 쓸 수 있지만 이렇게 화면을 돌려서 눕혀놓으면 태블릿 PC로 쓸 수 있었습니다. 두께가 심히 두꺼운게 단점이었지만(3.5cm..3.5mm가 아닙니다.) 인강용과 동시에 수업에서는 필기용으로 쓸 수도 있었습니다. 이 노트북을 쓰면서 알게되었던 것이 당시에 에버노트와 원노트였는데요, 필기 목적으로 쓰기엔 에버노트가 좀 더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에버노트는 필기보다는 메모나 여러가지 미디어를 저장하는 용도로 발전했지만 10년전만 해도 필기용 앱이었네요. ㅋㅋ


OS는 기본적으로 윈도 XP 타블렛 에디션이 탑재되어있었습니다. 그 당시 윈도의 타블렛 지원은 보잘 것 없었고 있으나마나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잘 쓰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인텔 CPU가 내뿜는 발열과 길게 잡아 봐야 2시간 반, 짧게는 한시간 반 정도 가는 배터리는 필기용으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강의 시간은 2시간 ~ 3시간 정도 되는데 수업 중간에 배터리가 꺼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전기선이 있는 자리에서 어댑터를 연결해놓고 필기하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발열이 상당해서 필기하다가 손바닥이 저온 화상을 입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당시 노트북을 필기에 이용하려면 일단 휴대가 간편한 것은 물론이고, 저발열에 배터리 효율이 높은 프로세서, 태블릿에 최적화된 운영체제와 적어도 4시간은 유지되는 배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몇년 후에 제가 바랐던 컴퓨터가 아이패드라는 물건으로 실체화된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죠.(…)

개인적으로 p1510을 썼던 시기는 대학 2학년 ~ 3학년 때 고시 준비에 돌입했던 시기였습니다. 전공이 전공이었던지라 저도 남들처럼 CPA 쪽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때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회계학은 저랑 1도 맞지 않는 학문이었습니다. 전공에서 하는 회계 수업은 어느정도 했지만, 시험에서 하는 회계와 세법 등등은 정말 흥미가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P1510은 그 무렵 인강용으로 구매했는데 정작 인강용으로 잘 쓰지 않았습니다. 인강이 느리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p1510을 최적화하고 노는데 더 시간을 썼습니다(…) 여러가지 최적화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최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운영히 관련 커뮤니티에서 Compiz가 적용된 우분투 6.10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분투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이후 가상머신으로 인강을 돌리는 짓을 하면서까지 우분투를 돌렸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우분투에는 p1510 드라이버가 있긴했지만 약간 부족해서 몇가지 스크립트를 직접 만들어(…) 보완하기도 했고 무선랜 드라이버도 제조사 홈페이지에 숨어있는 실험 버전 리눅스 드라이버 소스 코드를 찾아서 컴파일하는 등(…) 온갖 이상한 짓을 하면서 놀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 기간에 방 청소가 재밌는 것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뿐 아니라 우분투 버그 1번, 김어준씨가 기획했던 지식 채널e의 <두명의 해커> 편, GNU 선언문 등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며 우분투 정신이 일종의 사명감처럼 한창 불타올랐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우분투 버그 1번

p1510은 우분투를 설치했던 것 뿐 아니라 책 한권을 쓰는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바로 welcome to ubuntu입니다. 우분투와의 인연을 이어준 p1510으로 우분투 책까지 쓰게될 줄은 미처 몰랐더랬죠.

반면 시험에는 두번이나 낙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안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죠. -_-;; 정신차려보니 시험에는 떨어졌고 졸업은 다가왔습니다. 이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했던 시기가 된 것이죠. 그리고 거짓말처럼 p1510도 책 작업을 마치자마자 팬의 베어링이 나가버리고 액정도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액정 백라이트는 지금 많이 쓰는 LED가 아니라서 수명이 짧았습니다. 액정을 바꾸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노트북을 바꿀 결심을 했습니다.

2. Xnote X300 (2010)


제 기억에는 잊혀졌던 노트북이지만 생각해보니 돌이켜 보니 이런 노트북도 썼었군요. Xnote X300은 사실 제 노트북은 아니고 아버지 노트북이었는데 노트북을 무게 밖에 볼 줄 몰랐던 제가 강력하게 추천해서 샀던 노트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60만원이나 주고 이런 물건을 산게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지만 그 당시 아톰 프로세서의 성능을 과대 평가했던 제 과오입니다.

Xnote X300은 신민아씨가 출연했던 유명한 광고를 통해 알려졌죠. 처음부터 끝까지 무게를 강조한 광고였습니다. 삼성에 비해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는 LG에 대한 브랜드 감정도 괜찮았기 때문에 구매했습니다. 사실 이 제품은 940g이라는 가벼운 무게도 무게지만 일단 팬이 없는 구조였고 두께도 맥북 에어 또는 지금의 맥북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얇았던 꽤 미래적인 노트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장점들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속도 문제.. 이건 심각했습니다. 당시로서도 기본적인 웹브라우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렸으니 말 다했죠. 아톰 프로세서 중에도 상당히 느린 z530을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CPU보다도 심각한건 GPU였는데요, GMA500이라는 프로세서에 통합된 이 그래픽 카드는 정말 발군의 물건이었습니다. 연산 성능을 단순 비교하면 아이폰 3gs에 들어가는 GPU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도 최적화되지 못한 드라이버 때문에 성능을 다 쓰지도 못했습니다. GMA500은 컨셉상 동영상 가속에 최적화된 물건이었죠. 동영상 가속이 아니면 그다지 의미도 없었지만 그 동영상 가속도 기본 윈도우즈 미디어 플레이어를 쓸 때만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뭐 이런 물건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CPU, GPU가 그렇다 해도 가격까지 오면 정말 문제가 많아집니다. 이런 물건이 왜 160만원이었을까요? 이건 당시 똑같은 사양으로 발표되었던 소니의 VAIO P 시리즈의 영향이었습니다.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노트북(…)이라는 컨셉으로 많이 홍보했었던 이 노트북은 가격이 무려 230만원이었습니다. 같은 컨셉으로 좀 더 노트북 스럽게 만든 X300도 이정도 가격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보였습니다.

이 물건은 우분투를 설치하기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일단 인텔에서 인텔 리눅스 드라이버에 GMA500에 대한 지원은 추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별도 드라이버도 얼마안가 지원이 끊겼습니다. 혹시나 해서 당시 인텔에서 만들고 있었던 넷북용 미고(meego) 리눅스를 설치해봤지만 설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_-;

여러가지로 쓸모가 없었던 이 컴퓨터는 결국 방구석 행이 되었습니다. 묵혀두자니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그렇다고 쓸 수도 없었고 내 소유가 아니라 팔 수도 없었던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다른 노트북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그때부터 애플의 마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