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카카오톡의 10년간의 인연

요즘 카카오톡의 업데이트로 이래저래 시끄럽습니다. 이런저런 글들이 많이 올라오긴 하는데 저는 이 사태에 이야기를 얹을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카카오톡이 출시된 이래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카카오톡을 쓴 적이 없어서 이번 업데이트로 인한 영향이 제로이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카카오톡을 안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제가 뭐 특권층이어서 안하는건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에 가깝죠. 이번 기회에 제가 어쩌다 카카오톡을 안쓰게 되었는지를 설명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카카오톡이 처음 출시되었던 2010년은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소개된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 때 아이폰 사용자끼리는 문자를 대체할 수 있는 메신저인 Whatsapp이 인기였죠. 다만 Whatsapp은 0.99 달러의 유료 앱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진입 장벽이 있었고, 그 사이를 카카오톡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습니다. 카카오톡은 완전 무료였거든요. 카카오톡은 빠르게 네이트온의 자리를 대체하며 국민 메신저에 등극했죠.

2009년과 2010년에 저도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썼던 폰은 노키아 5800 Xpress Music 이었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멸종된 심비안 운영체제였죠.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아이폰도 아닌 이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이 깔릴리가 없었습니다.(당시 심비안엔 Whatsapp도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소셜 활동이 트위터여서 트위터를 열심히 했습니다.

2010년 3월에 카카오톡이 처음 출시되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저한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너 카톡해? 왜 전화번호가 안나와.

그러면 전 이렇게 답했죠.

아.. 이게 폰이 이래서. 카카오톡이 안깔려.

그렇게 5800을 2년을 쓰고, 이후 윈도폰 운영체제를 쓰던 노키아 루미아 710 까지 쓰면서 저는 카카오톡 가입자가 빠르게 증가하던 초반 동안 본의 아니게(?) 카카오톡 청정지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참 재밌는건, SMS가 카톡을 대체하기 시작하자, 카톡을 못 쓰는 저한테 오는 연락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겁니다. 제 전화기도 문자나 통화를 할 수 있었을텐데도, 카톡을 안 쓰니까 그냥 연락 자체가 오지 않았어요. 오프라인 지인들과 연락이 자연스럽게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게 불편해서라도 전화기를 바꿨을 텐데 외곬수 정신이 쓸데없이 여기에서 발현되어 일부러 끝까지 노키아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스마트폰 초반 3년 동안 카톡 없이 살았습니다.

노키아가 몰락한 후 2013년에 아이폰5로 갈아타면서 드디어 카톡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되니 ‘이제와서 굳이..’ 싶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이미 사람들이 너도나도 카톡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SMS의 역할을 이미 카톡이 대신하고 있었고 이런저런 부작용도 많이 나오고 있던 시기였거든요. 그동안도 카톡 없이 잘 살았는데 굳이 이제와서? 싶어서 아이폰으로 바꾼 이후로도 카톡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폰으로 바꾼 저를 보면서 왜 카톡을 안쓰는지 다시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저는 더이상 노키아를 써서 못 쓴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이라고 얼버무렸죠. 사람들은 집요하게 물어보다가도 이정도 답변이 나오면 “이상한 놈이군”이라고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가버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지내다가 2020년에 카톡에 가입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사 문제 때문이었죠. 그 당시 제 상사는 카톡으로 업무 시간 외에도 연락을 즐겨하시던 분이었는데 제가 카톡을 안한다는걸 알자마자 너무 쉽게 당황하는거였습니다. 업무 지시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연락을 해야하는데 직원 중 저만 카톡을 안하니 본인의 계획이 무너지게 생겼거든요.

결국 알게모르게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저도 카톡을 안쓰는게 정말 별 다른 이유 없는 “그냥”이었기 때문에 그때 카카오톡에 가입해 설치했습니다.

신기한건, 아까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던 것처럼 카톡을 깔자마자 (평소에는 문자 하나 안하다가)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평소에 문자 하나 안하던 부모님한테도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 상사 뿐 아니라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직장 동료, 가족, 친척 등 온갖 사람들이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 여기가 이런 세상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도망가고 싶었죠. 그때부터 제가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는데 전화번호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게하는 것은 물론이고, 저를 아는 사람이라도 저인걸 알 수 없도록 카카오 프로필을 이상하게 꾸며놓는 공작(?)을 벌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상사가 퇴사하고 회사에 슬랙이 도입되면서 카톡으로 연락하는 문화가 줄었습니다. 슬랙이라는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물건이 생겼으니까요. -_- 어쨌든 덕분에 카톡을 강제로 써야하는 상황은 사라진거죠. 저는 주저없이 날짜를 정하고 그 날 카카오톡을 삭제하고 ID를 완전히 삭제하면서 다시 탈출했습니다. 한 1년 정도는 썼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지금도 제 폰에는 카카오톡이 안깔려있습니다. 다음 시절의 인연이 남아 아직도 다음 지도 아니 카카오 지도를 쓰고는 있지만 그 외에는 카카오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진 않고 있습니다. 카카오톡을 탈퇴하면서 다시 연락도 사라졌어요. 여전히 그들은 문자나 전화로 저랑 연락할 수 있음에도 카카오톡이 사라지자 다시 연락이 끊겼습니다.

카카오톡을 썼다가 안쓰게 되면서 오랫동안 썼던 사용자들은 아무래도 탈퇴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야 원래도 안썼으니 별 다른 영향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속한 네트워크 자체가 끊어지는 일일 수도 있으니까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대체 수단이 있음에도 카톡에서 사라진 사람에게는 연락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카톡에 있는 사람들한테 연락하기에도 바쁘니까요.

그래서 카카오톡이 최근의 업데이트를 수행한 것이기도 할겁니다. 들은 바에만 의하면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획한 제품의 방향으로 보이고, 오히려 이용자의 불편을 가중 시키는 업데이트인게 분명한데도 카카오 측은 실제로 탈퇴하는 사람들은 적을 거라는걸 확신하고 있을 겁니다. 이 네트워크 효과는 쉽게 없앨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아직은 카카오톡의 탈퇴는 나라는 존재가 내가 속한 네트워크에서 지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증거가 오히려 지금의 논란입니다. 다른 서비스였다면 굳이 화내고 욕할게 아니라 안쓰면 그만이에요. 굳이 화를 내고 논란이 지속된다는 것부터가 “싫어도 쓸 수 밖에 없는” 서비스라는 것을 증명할 뿐입니다. 대개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하잖아요. 카톡은 오히려 이렇게 악플이 달리고 논란이 되는 상황에 안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국민 메신저는 계속 바뀌어왔습니다. 무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고 윈도우에 기본으로 설치되어있었던 MSN 메신저도 무너졌고, 한때 국민 메신저였던 네이트온도 무너졌죠. 지금은 상황이 나쁘지 않아도 카카오톡이 “싫어도 쓸 수 밖에 없는” 포지션으로 계속 위치한다면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대안을 찾아 떠나게 될겁니다.

그래서 전 오히려 카카오가 진짜 긴장해야하는건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전환점이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