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핸드폰 요금이 빠져나갔는데 눈을 의심했습니다. 요금이 많이 나와서가 아니라 너무 적게 나와서 말이죠. 아무리 제가 알뜰폰을 쓰고 있다곤 하지만 이번 달 요금은 2,300원 정도 나왔습니다. KTM 모바일에서 출시한 밀리의 서재 요금제(20기가)에 제휴 카드 17,000원 할인을 더하다보니 이정도 금액이 나왔네요.
그러고보니 어제는 애플 쪽 서비스 요금이 빠져 나갔는데, 애플 뮤직 요금제 (13,900원) + iCloud 2TB 요금제(14,000원)가 빠져나갔습니다. 애플 쪽에서 월마다 가져가는 금액만해도 이미 핸드폰 요금을 넘었죠. 그에 더해 넷플릭스(네이버 멤버십 포함), 유튜브 등을 합치면 구독 서비스에 지불하는 금액은 더 올라갈겁니다. 저는 정말 최소한으로 줄인 편인데도 이 정도입니다.
저말고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월마다 지출하는 구독 서비스 요금이 핸드폰 요금을 넘은지 오래일듯 합니다. 그도 그럴게 요즘 웬만한 서비스들은 다 구독 요금제니까요. 여기에 포토샵이나 오피스 같은 생산성 앱, ChatGPT 같은 AI 앱도 구독제로 넘어간지 오래이니 정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구독 요금 때문에 허리가 휠 지경입니다.
핸드폰 요금이 구독 요금제보다 훨씬 저렴해진 지금 상황을 보니 시장의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 분명하게 보이는 느낌입니다. 불과 10년전만해도 통신사가 갑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컨텐츠 기업과 서비스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오피스와 포토샵 같은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기업도 구독제로 넘어갔고, 이젠 게임도 구독 서비스로 넘어가는 추세입니다.
왜 이렇게 기울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결국 새로운 통신 기술의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신사는 5G를 이용하는 킬러 컨텐츠 발굴에 실패했고, 또 커버리지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LTE에 비해 나은 부분을 조금도 찾지 못했죠. 이건 비단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오래된 LTE는 날이 갈수록 저렴해지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빠르고 저렴한 대안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아직까지 LTE를 쓰고 있지만 전혀 부족한지 모르고 쓰고 있습니다.
통신사는 새로운 통신 기술을 지속 발굴하여 수익을 찾아야 했지만 LTE가 시간을 끄는 동안 5G도 성숙기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LTE도 충분했는데 5G 이상의 기술은 굳이? 싶은 상황입니다. 이미 통신 시장은 기술 포화 상태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물론 5G 이상의 기술이 필요없다는건 아닙니다. 응답속도가 빨라야하는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기간계 통신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소비자 시장에서는 더이상 새로운 통신 기술로는 괄목할만한 성장과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맞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통신사들의 마지막 카드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망중립성 흔들기라고 생각합니다. 망중립성이란 통신 사업자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또는 특정 서비스를 불리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의미합니다.
도로가 막 확장되고 통신망에 대한 수요도 높던 시절에는 통신사에게도 망중립성이라는 개념을 요구하는게 가능했습니다. 서비스 기업과 통신사가 경쟁하는 필드가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통신 자체가 돈이 안되니 통신사도 결국 망 내에 서비스를 출시해 경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통신사도 넷플릭스 같은 회사들과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지금은 망중립성은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된지 오래일겁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밀리의 서재 요금제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KT가 자회사인 밀리의 서재의 구독료를 통신망 요금제에 묶어서 판매하는 것도 망중립성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통신사는 쓴 맛 매운 맛 가릴 때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비단 한국의 상황만도 아니라서 앞으로는 통신사도, 서비스 기업도, 소프트웨어 기업도, 게임 회사도, 심지어 하드웨어 기업도 월마다 소비자의 돈을 뺏어가기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이 OTT 플랫폼 서비스를 하고, 네이버가 넷플릭스와 연합하는 등 앞으로의 경쟁은 분야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경쟁이 심화될 때 가장 이득을 보는건 소비자입니다. 구독 서비스 때문에 허리가 휘청이지만 또 이런저런 서비스가 연합하고 제휴하면서 실제로 구독료가 줄어들기도 하니까요. 네이버 구독 상품으로 넷플릭스를 저렴하게 보기도 하고, 핸드폰 요금제에 웨이브나 밀리의 서재 같은 서비스가 포함되기도 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구독 요금제는 제휴와 인수 합병을 통해 점점 통합되는 방식으로 저렴해지는게 트렌드일 것 같습니다. 아마 또 그때되면 몇 개의 기업만 남아 지금의 통신사처럼 독과점이 형성될지도 모를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