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주 여행 마지막 날. 아이폰 날씨 앱에서 예고했던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비가 올 예정이라 어제 빡시게 돌아다녔던 건데 보람이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지만 비가 정말 하루 종일 왔다. 경주는 내일 비가 더 많이 내린다는 듯. 이 날씨에는 문무왕릉까진 절대로 못 갔을 것 같다.
오늘 계획은 박물관 투어.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아예 실내 활동을 마지막 날 일정에 모두 투입하기로 했다. 기차 시간도 저녁 8시라서 넉넉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3일 동안 묵었던 호텔을 체크아웃했다. 이 호텔은 올해 지은 새 호텔이라고 했는데 새 건물 냄새 때문에 힘들 정도로 새것 티가 팍팍나는 호텔이었다. 그런데 첫날 황당하게도 전기가 나가버렸다. 지금까지 여러 곳을 다녀봤지만 호텔 전기가 나간건 처음이라 황당했다. 결국 첫날 체크인했던 방과 체크아웃한 방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이겠지.

오늘은 숙소에 여유롭게 체크아웃 시간까지 있다가 첫 일정을 시작했다. 오늘의 첫 일정이자 유일한 일정은 국립 경주 박물관.
지난 번 유럽 여행 때 루브르, 영국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을 다니면서 오디오 가이드의 덕을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미리 오디오 가이드를 준비했다. 역시 스마트폰이 많이 보급된 나라 답게 유럽과 달리 오디오 가이드도 스마트폰 앱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무려 국립 박물관 연합 앱이었다. 국립 중앙 박물관을 비롯해 모든 국립 박물관 오디오 가이드를 이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오오.. 게다가 “자동전시안내”를 켜면 블루투스를 이용해 전시물 근처에 가면 자동으로 해당하는 오디오 가이드가 나온다고 한다. 루브르나 영국 박물관에서는 보지 못한 최첨단 기술이었다. 루브르에서 가이드용 닌텐도DS를 받아들고 길 찾는데 꽤 고생했기 때문에 더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블루투스는 우려했던대로 전시물이 좁게 배치되어있는 박물관에서는 맞지 않았다. 아직 전시물을 보지도 못했는데 특정 전시관에만 들어가도 알림이 울려대는 통에 해설에 포함되어있는 유물을 찾아다녀야 했다.
간혹 전시물이 근처에 많을 경우 다른 전시물을 보고 있어도 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계속 핸드폰이 울려댔다. 이럴 거면 그냥 번호 입력해서 들을 수 있는 예전 방식(루브르나 영국 박물관 같은)이 더 좋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극혐하는 ‘최첨단처럼 보이기만하는 기술’이었다. 오디오 가이드에 기본 포함된 TTS는 2025년 기준으로는 절망적일 정도였다. 영국 박물관은 뉴진스가 설명해주던데.. 국립 중앙 박물관은 좀 달랐으려나?



국립 경주 박물관은 지난 번 방문 때도 왔어서 이번이 두번쨰였다. 하나 잊고 있던게 있었는데 국립 중앙 박물관과 달리 경주 박물관은 딱 “신라” 그 자체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아우르는 중앙 박물관과 달리 경주의 고대부터 시작해 신라 멸망과 함께 전시가 끝난다.
생각해보면 제주도에 있는 국립 제주 박물관도 제주도의 고대부터 조선시대, 일제시대 전시까지 볼 수 있었는데 왜 경주는 유독 “신라”만 있을까? 당연히 경주니까 신라 이야기가 가장 많이 있을 수 밖에 없긴 하겠지만. 생각해보면 국립 공주 박물관도 백제 이야기만 했던 거 같기도..

어쨌든 신라 멸망과 함께 끝나버리면서 생각보다 일정이 빨리 끝나버렸다(…) 생각해보니 지난 번 방문 때도 똑같은 이유로 당황했던 것 같다. -_- 아직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어딜 간다지.. 굿즈 샵도 아무래도 국립 중앙 박물관에 비해서는 아쉬운 느낌이었다.
박물관 내에 있는 카페(이디야)에서 아쉬운대로 좀 더 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경주 박물관 이디야 한정 특별 상품으로 얼굴 무늬 수막새 마들렌이 있었다. 이건 아이디어 좀 괜찮았던 듯. 심지어 맛도 있었다.
얼굴무늬 수막새 마들렌 외에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게 없어서 아쉬운 경주 박물관이었다. 뭐 물론 천년전의 유물이 달라져야 얼마나 달라지겠냐마는 심지어 제주 박물관이나 공주 박물관에 있었던 미디어 아트 같은 새로운 시도 같은 것도 없었다. 여러모로 아쉽.
점심은 경주고등학교 근처에 있다는 오래된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 원래는 밀면을 먹으려고 했지만 점심을 이미 건너 뛴 상황이라 좀 더 묵직하게 먹고 싶어서 또 중국집에 오고 말았다.(짬뽕 콜렉터)

나름 유명한 집이라고는 하는데 짬뽕 맛은 그냥 평범했다. 간짜장은 간짜장이 맞나 싶을 정도. 그래도 먹다보면 예전 추억이 떠오르는 클래식한 맛이었다. 특히 탕수육은 정말 추억의 맛이었는데 어제 먹었던 총각 짬뽕이랑 비교해보면 여기는 클래식 리그에서 상위 랭크라고 할 수 있을듯. 탕수육이 맛있었고 나머지는 평범했다.
빵을 사고 황남빵과 황리단 길로 갈 예정이었는데 다음 버스가 40분에 온다고 한다. 아.. 오늘은 정말 안걸을 생각이었는데 오늘도 결국 걸었다. 빗길을 거의 2km 가까이 걸은듯.

비가 안왔던 날도 길에 걸어다니는 사람을 못 봤는데 오늘은 정말 우리 밖에 없었다. 이런 날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도 비오는 길 풍경은 이뻤다. 걸어다니는 여행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피곤하다.

경주에 왔다가 안사고 그냥 가면 아쉬운 황남빵도 사고..

황리단길 근처 카페에서 기차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화과자 카페였는데 여기도 분위기가 독특했다. 보통 카페가면 아이스 위주로 먹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여러모로 쌀쌀해서 따뜻한 전통차(대추차, 매실차)를 먹었다.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서 쉬다보니 피곤이 한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집에 가려면 멀었는데(…) 오늘은 원래 실내 활동 위주로 계획을 잡았는데도 박물관 + 빗길 산책까지 꽤 걸어다녔다. 요 근래 여행은 바다 보면서 쉬는 힐링 여행이 대부분이었는데 경주는 3일 동안 계속 걸어다녔던 것 같다. 오랜만에 빡센 여행 일정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경주 여행도 마무리. 박물관이 생각보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14년 전 방문시 못 했던 것을 다 할 수 있어서 좋았던 여행이었다. 2박 3일 동안 뚜벅이 + 시내 버스로만 다녔는데도 알차게 계획대로 다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당분간 경주는 안와도 될듯. =_=
평일에 다시 출근하려면 내일은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쉬어야겠다. 지금 이 글도 돌아가는 기차에서 피곤한 정신을 붙잡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