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2)

오늘은 최근 여행 중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해서 일찌감치 움직였다. 오늘의 목표는 지난 번 경주여행 때 못 봤던 석굴암과 문무왕릉 방문.

이 두 코스는 이번 여행 계획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코스였다. 왜냐면 대중교통(그것도 버스)으로만 갈 계획이었으니까. 둘 다 경주 시내에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 가는 버스는 기본적으로 1시간에 한번씩 있을까 말까였다.

심지어 ChatGPT도 말렸다. 아예 생략하고 대릉원이나 첨성대 같은 경주 시내 코스로 대체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시내는 이미 갔고 내일(토요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미술관으로 갈 생각이었으므로 어떻게든 석굴암과 문무왕릉을 오늘 클리어해야했다.

첫번째는 일단 석굴암부터 방문하기로 했다. 일단 경주 여행의 시작은 불국사지.

불국사 가는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역시 경주의 대표 관광지인가.. 아침부터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싶었는데 99%가 경주월드에서 내렸다. -_- 불국사 오픈런하러 가는건 우리 일행 밖에 없었다.

불국사 도착. 불국사도 역시 14년만. 수학여행으로 왔을 때도 갔었고 불국사는 경주 올 때마다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목표는 일단 석굴암이므로 불국사는 이따 보기로 하고 석굴암으로 먼저 향했다.

석굴암은 걸어서 올라갈 수 있지만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미 어제 경주 시내 돌아다니느라 2만 5천보 정도 걸었던 상태라 등산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ChatGPT가 이야기한 것과 달리 불국사에서 석굴암 가는 버스는 매 시간마다 있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크게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다.

어쨌든 석굴암 도착. 석굴암에는 수학여행 온 것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제도 그렇지만 역시 수학여행의 기본은 아직 경주인가. 나도 학창 시절에 경주로 수학 여행 왔지만 석굴암을 보지 못했다.(보수 공사 중이었다) 14년 전 왔을 때도 시간이 늦어서 결국 못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 경주 여행에서 석굴암은 반드시 봐야 했다.

석굴암은 굴식 돌방에 있는 불상 + 암자가 결합된 형태로 겉에서 보기엔 작은 암자 같은 형태다. 저 입구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내부 촬영은 안된다고 한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눈에 최대한 많이 담고 왔다.(이 와중에 수학여행 온 학생 무리들은 옆에서 할렐루야를 외치고 있었다. 선생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다시 내려와서 불국사 관광. 불국사는 여러번 왔지만 올 때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안정감이 있다. 석가탑, 다보탑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웬지모르게 14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오래된 느낌. 그 자리에 있는게 당연한 것 같아도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마운 것들이다.

극락전 현판 뒤 황금돼지상까지 보고 왔다.
아이폰 인물사진 모드로 예술혼을 불 태운

불국사 방문을 마치고 이제 문무왕릉으로 향했다. 문무왕릉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차원이 다른 곳이었다. 카카오 지도가 알려주는 길로 갔는데 환승해야하는 버스가 3시간 뒤에 오는 버스인걸 모르고 갔다가 낭패를 봤다. 어찌어찌 다시 온 길을 되짚어서 그나마 배차 간격이 맞을만한 버스를 골라서 타야 했다.

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게 카카오 지도의 초정밀 버스 서비스였다. 예전에는 제주도에서만 됐던 것 같은데 부산에서도 유용하게 썼었고 경주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배차 간격이 넓고 부정확한 시간표 대로 움직이는 경주 버스에 현혹되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건 초정밀 버스 서비스의 공이 컸다. 서울도 서비스 되면 좋겠지만 서울은 과부하 때문에 어려우려나.

어찌어찌 버스를 시간 맞춰 타서 한시간 달려 나정 해변에 도착했다.

바다다!

일단 경주에서 바다를 본 것 자체가 신기했다. 일단 계획해놓긴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바다를 볼 줄은 몰랐는데 풍경 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바다까지 온건 좋긴 했는데 사진에서도 보이지만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추웠다. 불과 엊그제만해도 30도 였던 날씨 맞나..

문무왕릉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나정해변으로 온건 이 짬뽕을 먹기 위해서였다. 어쩌다보니 여행지마다 유명한 짬뽕을 먹어보는 것도 뭔가 공식처럼 되가는 것 같다.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짬뽕이라고 해서 굳이 들러서 먹으러 왔다.

짬뽕 맛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었던 짬뽕 중 가장 맛있었다. 차돌 베이스의 짬뽕인데 맛이 깊지만 짜지 않다는게 신기했다. 바닷가 근처라고 일부러 해산물을 많이 넣어서 멋부리지 않고 고기짬뽕으로 승부를 본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탕수육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즘 유행하는 찹쌀 탕수육 중에 가장 이상적인 탕수육이었다. 오는 동안 버스 때문에 헤매느라 워낙 배고파서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먹었던 짬뽕과 탕수육 중에는 상위 랭킹에 들만한 건 분명했다.

이제 점심이었다. 이제 문무왕릉만 보면 원래 여행 계획은 달성이었다. 나정해변에서 문무왕릉까지 가는 버스는 세시간마다 한번씩 있었지만 운좋게도 30분 정도 기다리면 탈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해변에서 40분은 금방 보냈을텐데 너무 추워서 정류장에서 대기해야했다. 그래도 택시를 타거나 다른 버스를 타는 것보다 가장 빠른 길이었다.

나정해변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서(생각보다 금방 갔다) 드디어 문무왕릉에 도착. 문무왕릉은 동해의 용이 되겠다고 했던 문무왕이 묻혀있다고 내려오는 장군암이다. 사실 문무왕릉이라고 하지만 박물관이나 전시물 같은건 없고 표지판과 바위가 전부다.

하지만 어쩐지 감개가 무량해진다. 여기도 지난 경주 여행에서는 너무 멀어서 포기해야했던 코스였기 때문에. 문무왕은 그가 바랐던대로 정말 동해의 용왕이 되었을까.

문무왕릉에는 갈매기도 아니고 까마귀가 많았다. 비둘기도 많았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물고기를 방생하는 곳이 많았다. 아무래도 동해의 용왕이 묻혀 계신 곳이라 영험해서인지 기도나 굿 같은게 많이 열리는 모양이다.(근처에 신당이 많다) 저 물고기들이 방생되어 바다로 살아 돌아가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거치 물살 때문에 해변으로 다시 떠내려와 까마귀와 비둘기들이 밥이되고 있었다.(방생 맞아?)

문무왕릉을 마지막으로 모든 코스를 끝냈다. 이제 돌아가는 것만 해결하면 되는데 다행히도 문무왕릉에서 숙소까지 한방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 버스도 배차 간격이 길어서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면서 기다렸다. 커피 맛은 걍 그랬는데 코코넛 커피는 맛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탑은 감은사지 3층 석탑

시골길을 배경으로 버스를 타며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런 풍경을 즐기면서 숙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뚜벅이 여행의 묘미인듯. 오늘은 대부분 버스타고 움직여서 1만 5천보 밖에 안걸었다.(어제보다 만걸음 덜 걸음)

오늘 여행은 최근 떠났던 여행 중 가장 난코스이자 가장 부지런해야했던 여행이었는데 다행히도 계획대로 모두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아예 계획에서 빼라고 한 코스였는데 이걸 모두 하루에 다 갔다올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배차 간격이 넓은 경주 시내 버스만으로. 오늘 여행의 공은 카카오 지도의 초정밀 버스 서비스와 현장에서 버스 상황에 따라 코스를 수정하면서 간 전략 덕분이었다.

내일은 경주에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실내 관광(박물관, 미술관 등) 코스는 내일로 몰아서 잡았다. 내일 박물관이 마지막 일정이다. 경주는 2박 3일 일정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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