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은 제가 직접 쓰고 있습니다. 당연한거 아니냐 싶으시겠지만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AI의 도움을 아예 안 받는건 아닌데 주로 외국 기사를 번역할 때는 LLM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걸 보고 ‘유기농(organic) 글쓰기’라고 표현하더군요. 유기농이라고 번역하다보니 좀 뜬금없지만 광고가 아닌 검색 엔진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 유입도 organic search라고 하니까 대충 자연적인 글쓰기라고 해석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유기농 글쓰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떤 신념이나 21세기 러다이트 운동 같은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취미 생활입니다. 현대에 와서 자동차 등의 발명으로 신체 활동이 줄어들자 헬스장에서 따로 운동을 하거나 런닝을 하게 된 것처럼 굳이 글을 직접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따로 시간을 내 운동하는 것처럼 글을 쓰는 거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AI에게 대체된지 좀 된 것 같습니다. 주변에 물어봐도 주기적으로 직접 장문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애초에 업무가 아닌 이상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도 드물고, AI가 나타난 이상 이걸 직접하는 사람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굳이 자동차가 있는데 왜 뛰어다녀?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게 되니 처음에는 그저 취미였던 유기농 글쓰기도 어쩐지 고집 아닌 고집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AI의 도움 없이 글 하나를 만들어냈다는 저만의 성취감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에 하나씩은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는거겠죠.
글을 직접 쓰는 것은 AI에게 프롬프트를 주어 쓰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고 과정을 요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없이 그냥 쓰는 글이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이 알아 볼 수 있도록 앞 뒤에 맞게 써야하고,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오타가 없는지, 이상하게 써진 부분은 없는지 탈고를 해야합니다. 단어 하나를 쓰면서도 신중하게 고민하고 퍼즐처럼 문단과 문단 사이의 배치도 신경 써야 합니다.
복잡하고 지루한 과정이지만 매일매일 짧게라도 그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머리와 마음의 근육이 생겨나는 느낌입니다. 저는 운동을 싫어하지만, ‘오운완’하는 분들은 이런 느낌 때문에 계속 운동하시는거겠죠?
덧.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유일한 취미 생활을 기계가 대신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뿐이죠.
덧2. 저는 직장에서는 글을 메신저 외에는 직접 쓰지 않습니다. 커서와 웹툴을 통해 세 개의 LLM 모델을 동시에 굴려가며 일하고 있죠. 어쨌든 그건 일이고, 이쪽은 취미니까요.
덧3. 참고로 이 블로그에 쓰는 이미지도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이 글의 커버 이미지도 워드프레스 무료 사진에서 검색한 이미지) 별다른 이유는 아니고 AI가 생성한 이미지의 ‘쪼’가 싫어서입니다. 근데 이 정도면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으로 오해받을만도 하네요.
덧4. 이 블로그의 모든 글을 AI의 도움 없이 썼다고 했는데, 사실 아니었네요. 이 글은 GPT-4가 90%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