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애플은 13인치 맥북 프로를 없애지 않을까?

맥이 애플 실리콘으로 전환한 이후 벌써 세번째 프로세서 라인업이 나올 예정입니다. “M3” 프로세서죠. 특히 이번 M3 프로세서는 3나노 공정으로 만들어져서 성능과 전력 측면에서 M1과 M2보다 크게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M3를 탑재할 첫 맥 모델은 24인치 아이맥, 13인치 맥북 에어, 13인치 맥북 프로가 포함되어 있다는 루머가 있습니다.

13인치 맥북 프로?

13인치 맥북 프로는 2016년에 처음 나온 디자인을 계속 우려먹고 있는 그 13인치 맥북 프로가 맞습니다. 애플 실리콘 전환 후 M1, M2를 탑재하면서 라인업에서 살아남았고, 이제는 M3 프로세서까지 탑재해서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물론 애플이 오래된 디자인의 제품을 프로세서만 바꿔서 출시하는건 자주하는 짓입니다. 맥북 에어만해도 2010년 모델에서 바뀐 디자인을 무려 2017년까지 우려먹었습니다. 13인치 맥북 프로도 올해까지 우려먹으면 역시 8년 정도 우려먹는 셈입니다.

원래대로라면 13인치 맥북 프로는 14인치 맥북 프로에 대체되었어야 하는 모델입니다. 14인치 맥북 프로는 여러모로 13인치 맥북 프로의 상위 호환이고, 프로세서도 급이 다릅니다. 프로 라인에서 비교적 작은 화면의 모델이라는 포지션에서도 14인치 모델이 더 잘 어울립니다.

13인치 맥북 프로는 디자인도 벌써 오랫동안 울궈 먹었고 프로세서는 맥북 에어와 똑같습니다. 디스플레이도 맥북 에어처럼 한대 밖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모로 봐도 “프로”라고 부르기엔 모자란 이 제품을 애플은 왜 안 없애고 있는걸까요?

가격

일단 당연히 가격적인 이유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맥북 에어 가격은 139만원부터 시작하고, 13인치 맥북 프로의 가격은 179만원, 14인치 맥북 프로의 가격은 279만원입니다. 만약 13인치 맥북 프로가 없다면,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 사이의 간극은 140만원 정도 됩니다. 중간에 M2 맥북 에어가 있긴 하지만, 역시 그래도 라인업에서 가격이 비는 느낌은 어쩔 수 없죠.

팀 쿡의 애플이 과거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 다른 점이라면 촘촘한 라인업인데 거의 모든 화면 크기를 제공하고 있고, 거의 모든 가격대의 제품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출시한 15인치 맥북 에어만해도 그렇죠. 이런 팀 쿡이 가격적인 측면에서 프로와 에어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13인치 맥북 프로를 쉽게 단종할 것 같진 않습니다.

아마 M1 맥북 에어처럼, 후속 제품의 가격이 충분히 저렴해지지 않는 이상 13인치 맥북 프로는 계속 애플 라인업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름 값

13인치 프로의 존재 의의는 저는 사실 이름 값(?)이라고 생각합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우리 옛 속담처럼 그래도 어쨌든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맥북 중 가장 저렴한 모델이니까요. 그것도 14인치 맥북 프로랑 비교하면 100만원이나 차이가 나죠.

“프로”가 되길 꿈꾸는 예비 프로들에게는 맥북 프로에 입문하기에 13인치 맥북 프로만한게 없습니다. 물론 맥북 에어가 훨씬 장점이 많지만, 그래도 고성능을 요구하는 작업에 맥북 에어가 어울리지 않는건 사실이니까요. “프로”로서 어쩐지 맥북 에어는 좀 그렇고, 14인치 맥북 프로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13인치 맥북 프로는 적합한 선택지일겁니다.

물론 프로세서가 똑같고, 디자인은 오래되었고 유의미한 차이는 팬의 유무 밖에 없지만, 그래도 “프로”라는 이름이 주는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제 생각엔 애플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고객

13인치 맥북 프로는 의외로 비즈니스 고객에게 매력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느낀 부분입니다.

회사에서 맥북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이 있었는데 처음엔 선택지가 M1 맥북 에어와 13인치 맥북 프로(M2) 였습니다. 사무직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하진 않다보니 맥북 라인업 중 가장 저렴한 두 개 모델 중 하나를 지급하겠다는 선택지가 내려온거죠.

저는 맥북 에어를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1 맥북 에어를 선택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둘 다 오래된 디자인을 사용하는 노트북이지만 적어도 13인치 맥북 프로 쪽은 프로세서가 최신이었습니다. 전 결국 13인치 맥북 프로를 선택했습니다.(물론 나중에 번복되고 14인치 맥북 프로가 지급되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비즈니스 환경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은 디자인이 오래된 경우가 많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지만 파나소닉의 레츠노트만해도 그렇죠.(이건 좀 너무 심합니다만) 디자인이나 스타일보다는 비용이나 신뢰성이 좀 더 중요한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비즈니스 노트북 제품군에서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주는 노트북’으로서 13인치 맥북 프로는 생각보다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상대적으로 가볍고(1.4kg), 최신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고 배터리도 오래갑니다. 디자인도 맥북 중엔 오래됐지만 여전히 세련된 디자인이죠.

회사 입장에서는 맥북 중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죠. 어쩌면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매력적인 대안일지도.

터치바에 대한 미련(?)

마지막은 제 뇌피셜인데, 애플에 있는 직원 중 누군가가 터치바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서 13인치 맥북 프로를 계속 살려두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터치바는 첫 등장했을 때만해도 애플이 야심차게 만든 새로운 기술이었습니다. 물리키를 터치 인터페이스로 점차 대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숨어있었죠.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기능키가 바뀐다는 매력적인 장점도 있었구요. 한가지 빼곤 완벽했는데,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였죠.

워낙 욕을 많이 먹고 인기도 없어서 결국 애플 실리콘 탑재 이후 새로 나온 프로 모델에서는 터치바가 빠지고 물리키로 돌아갔습니다. 현재 터치바가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이 바로 13인치 맥북 프로입니다.

13인치 맥북 프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어쩌면, 터치바를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을 최후의 끝까지 상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미련이 남아 터치바의 부활을 꿈꾸며(?) 만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한 모델 때문에 맥OS에서 터치바를 계속 유지하고 개발해야하는 번거로운 짓을 할 이유가 없죠.

어쨌든 터치바를 좋아하는 소수의 사용자에게는 13인치 맥북 프로가 이젠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마무리

이유야 어쨌든 13인치 맥북 프로가 라인업에 존재하는 한 이번 M3 기반의 모델도 많이 팔릴겁니다. 심지어 애플의 키노트에서 보면 “세상에서 두번째로 인기있는 노트북”이라고 표현했었어요.(첫번째는 맥북 에어) 프로세서만 업데이트해도 잘 팔리는 모델이니 굳이 가격을 올려가며 디자인을 업데이트해야할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13인치 맥북 프로가 추천할만한 모델이냐?

전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13인치 모델에서 맥북 에어가 훨씬 얇고 가볍고, 프로세서는 똑같으며 리프레시된 디자인이나 웹캠, 스피커 등 장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싸죠.

물론 맥북 에어는 “프로”가 요구하는 고성능 작업에 맞지 않습니다. 게임만 해도 쉽게 쓰로틀링에 걸릴 정도로 고성능을 오랫동안 유지하는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맥북 프로 14인치 모델인데, 기본형의 가격만 비교해보면 100만원의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맥북 프로 14인치 기본형은 맥북 프로 13인치보다 용량과 램이 더 높기 때문에 동일 사양으로 비교해보면 맥북 프로 13인치의 가격이 233만원이 되어 약 40만원 정도의 차이 밖에 안납니다. 조금 더 무리를 해서라도 14인치를 선택하는게 맞죠.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13인치 맥북 프로가 더 적합한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비즈니스 노트북의 케이스도 그렇고, 고성능 유지가 필요하지만 14인치 맥북 프로만큼의 성능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그런 경우에는 13인치 맥북 프로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도 있을겁니다.

(14인치 가격이 더 싸지면 좋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