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제거하는 “용기”있는 결정을 한 아이폰7 발표 이후 애플은 이어폰 단자의 대안으로 두가지 솔루션을 제시했습니다. 하나가 라이트닝 이어팟이고 하나가 바로 무선 이어폰 에어팟입니다. 저는 애플이 이어폰 단자를 채택한다면 하나는 자체 규격을 가진 무선으로, 하나는 USB-C 규격의 이어폰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만 맞았습니다. 번들 유선 이어팟은 라이트닝 단자를 채택했고 에어팟은 블루투스를 자체 커스터마이징한 무선 이어폰 형태로 출시되었죠.
그 중 에어팟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관심이 가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보았고 관심있게 보았지만 제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이어는 길에서 소음 차단으로 인한 위험이나 귀에 주는 압박감이 별로라 선호하지 않는데 대부분의 블루투스 이어폰은 인이어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에어팟은 블루투스 이어폰 중 유일하게 오픈형 이어폰이라는 점만으로도 저한테는 구매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완전한 무선(Codeless) 형태라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10월말에 출시된다던 에어팟은 기약없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였고.. 결국 긴 기다림 끝에 12월말, 구매 페이지가 열리자마자 바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최근은 배송에 6주까지 걸릴 정도로 공급량이 부족한 느낌이던데 저는 다행히도 주문 후 2주만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에어팟의 박스는 다른 애플 악세사리와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다른 악세사리에는 없는 라이트닝 케이블이 기본 포함되어있습니다. 라이트닝 케이블만해도 꽤 비싸기 때문에(…) 이런 구성품에 감지덕지하는 제가 싫네요.
케이스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치실통처럼 생겼습니다. 이 케이스는 사용하지 않을 때 에어팟을 보관하는 목적이자, 보관하면서 충전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에어팟은 충전 케이스로 충전을 하기 때문에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중에도 케이스만 따로 충전할 수도 있습니다.
자석 장인 애플은 이 케이스에 몇가지 자석을 숨겨놓았는데요, 그 중 하나는 바로 충전 케이스의 뚜껑입니다. 뚜껑에는 별도의 잠금 장치 없이 자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뚜껑을 닫을 때는 자력으로 딸칵하고 닫히는데 이 느낌이 꽤 좋습니다. 공연히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하는데, 플라스틱 뚜껑이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또 하나의 자석은 이어팟을 넣는 안쪽에 있습니다. 이 자석은 에어팟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역할을 합니다. 에어팟을 케이스에 넣을 때 안쪽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을 주며 안착되는데 이 느낌이 안정감 있습니다.
논란이 많은 에어팟의 유닛입니다. 에어팟의 유닛은 이어팟에서 선만 자른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콩나물이니 샤워기이니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의 결함은 잘 모르겠습니다. 거의 모든 이어폰들이 갖추고 있는 아이콘적인 디자인에 줄만 자른 디자인을 갖추면서 저는 오히려 제품의 성격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오히려 다른 제품이 갖추지 못한 절대적인 기능도 갖출 수 있었죠.
많이들 이어팟에서 줄만 자른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어팟과 비교해보면 줄기(?) 부분이 좀 더 두껍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 혹평을 하는 부분도 이 부분입니다. 소위 담배를 귀에 꽂은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실제로 꽂아보면 그렇게까지 튀지는 않습니다.(개인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저 줄기 부분에는 배터리와 빔 포밍 마이크라는 새로운 마이크가 들어가 있습니다. 배터리 부분을 늘려서 에어팟은 타 제품보다 월등히 긴 5시간 연속 사용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빔포밍 마이크가 달려있어서 외부 소음과 사용자의 목소리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에어팟 사용자와 통화해보면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통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에어팟을 사용해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요, 일단 전원 버튼이 없습니다. 귀에 접촉 센서가 있어서 귀에 꽂는 순간 켜지고 자동으로 연결됩니다. 이어폰 한쪽을 빼면 음악이 자동으로 일시정지되고, 양쪽을 모두 귀에서 빼면 음악이 정지하고 이어폰이 꺼집니다. 이런 사용 방식은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무선 이어폰을 쓰고 있다는 인식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이건 최초로 에어팟을 연결할 때도 느낄 수 있는데요, 아이폰 근처에서 에어팟 충전 케이스를 열기만해도 최초 연결 설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최초 연결한 기기와 동일한 애플 아이디를 사용하는 모든 기기에는 에어팟이 자동으로 인식됩니다. 이런 편의성과 자연스러운 사용 흐름은 애플 펜슬에서도 보이는데요, 애플 펜슬도 별도의 전원 버튼 없이 화면에 대기만해도 자동으로 켜지고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꺼지죠. 다른 제조사에서는 보이지 않는 애플 제품만이 갖고 있는 특성인듯 합니다.
일반적인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보면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가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연결의 불편함이고, 또 하나는 음질입니다. 블루투스는 무선이라는 특성상 연결하는 기기간에 인증을 거치는 페어링(Pairing)이라는 과정을 필수로 진행해야 합니다. 이 페어링 과정은 일반적으로 1:1로 연결하고 기기마다 진행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기기가 늘어날 수록 불편함이 증가합니다. 또한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연결 대수도 제한되어있어 연결을 해제하고 다시 연결해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애플은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 연결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연결 과정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충전기의 케이스를 여는 것만으로도 페어링이 완료되고 이후 같은 애플 아이디를 사용하는 다른 기기들에는 이 페어링 과정 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연결 과정에 있어서 에어팟은 정말 큰 개선을 이룬 것 같습니다.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음질은 문제라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나 동영상을 볼 때 사용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음질은 많은 개선 노력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황금귀들에게는 부족하지만 블루투스 버전을 높이면서 APT-X든, AAC든 음질 코덱을 변경하기도 했고, 이어폰 유닛 자체에 많은 투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스테레오는 많은 개선을 했지만 전화에 사용하는 모노 이어폰에서는 거의 개선이 없었습니다.
에어팟의 음질은 이어팟과 동일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이어팟의 음질은 번들 이어폰 중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고 이정도의 음질을 무선 이어폰에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측정한 수치는 이어팟과 동일한 음질을 보여주는데 제가 듣기로는 이어팟보다는 저음이 좀 더 강조되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어팟과 동일합니다. 저는 이어팟의 음질에 불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음질에는 만족합니다.
다만, 저는 에어팟의 통화 음질에 약간 실망을 했는데요, 저는 에어팟이 블루투스 통화의 문제들을 많이 해결해줬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에어팟의 통화 음질은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의 HD 오디오 수준입니다. 이 부분은 통화할 때보다도 시리를 부를 때 확 체감됩니다.
에어팟에는 이어팟에는 있지만 하나 없는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조작부입니다. 에어팟에서 음악 조작이 별도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에어팟 한쪽을 두번 두드려서 시리를 불러 명령을 통해 음악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를 통한 조작은 영화 HER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HER를 보면 주인공 테오도르가 OS이자 AI인 사만다(Samantha)와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사만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설치되어있지만 의외로 테오도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사만다와 대화하지 않습니다. 꼭 화면으로 봐야하는 컨텐츠가 있거나 특정 작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만다와는 모두 음성을 사용하여 상호작용을 합니다.(심지어 테오도르의 컴퓨터를 보면 키보드를 비롯한 입력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에어팟의 조작 방법은 이런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 생각에 애플은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에어팟에 음악 조작부를 구현할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애플은 그렇게 하지 않고 조작을 음성으로 “강제”했습니다. 시리를 이용하게 함으로서 사용자는 무선 이어폰으로 기존의 조작보다 한층 심화된 사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의 이어폰 리모컨으로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2집 앨범을 재생해줘” 같은 복잡한 명령을 내릴 수 없었죠. 하지만 음성을 사용하면 이게 가능해집니다. 애플이 에어팟으로 꿈꾸는 미래의 그림은 바로 이런 것일듯합니다.
하지만 시리를 이용한 음악 조작 기능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일단 복잡한 명령을 내릴 때는 확실히 시리가 유리하지만, 다음곡, 재생 중지, 볼륨 올리기 등 예전에는 버튼 하나로 가능했던 조작을 시리로 하자니 기본적으로 너무 느립니다. 어떤 명령을 내려도 네트워크 연결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이 연결되어있지 않으면 음악 조작도 할 수 없죠.
한국 환경에서 특정해서 볼 때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의 대중 교통 환경에서 시리를 쓰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주변 소음도 시끄럽고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이죠. 게다가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음성에 대한 인식률도 많이 떨어져서 거의 있으나 마나한 상태가 됩니다.
애플은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또 하나의 조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로 애플워치이죠.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워치를 이용해 주머니에 있는 아이폰을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어폰의 리모트 컨르롤에 대한 니즈가 많이 사라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음악을 컨트롤 할 때는 시리보다는 손목에 차고 있는 페블 워치를 더 많이 이용합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통한 조작은 기본적으로 한손으로 조작하는게 안되기 때문에 기존에 비해 그리 편한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에어팟의 조작 방법은 기존 이어팟을 쓰던 시절에 비해 많이 불편합니다. 제가 느낀 에어팟의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또 하나 에어팟의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연결 방식입니다. 기존의 블루투스 이어폰은 멀티 포인트 페어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기기를 하나의 블루투스 이어폰이 동시에 연결하는 기술인데요, 두개의 기기에 연결되어있어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다가 아이폰으로 전화가 오면 별도의 전환 과정 없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기술입니다.
에어팟은 당연히 애플의 모든 기기와 이 멀티포인트 연결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에어팟은 모든 기기와 1:1로만 연결이 됩니다. 기기간의 연결을 전환할 때는 전환할 때마다 연결 소스를 바꿔줘야만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결을 하고나면 다른 기기와는 연결이 끊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이야기했던 시나리오처럼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다가 아이폰으로 전화가 와서 바로 받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합니다. 유선 이어폰을 아이패드에서 뽑아서 아이폰으로 연결하는 것처럼 아이폰에서 입력 소스를 바꿔주는 작업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이 부분은 유선 이어폰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블루투스 이어폰으로서는 좀 의아한 부분입니다. 충분히 동시 연결이 가능한데 왜 동시 연결을 지원하지 않을까.. 물론 멀티 포인트 페어링은 두대 이상의 기기를 동시에 연결하지 못하고 별도의 연결을 끊어주는 과정이 없으면 다른 기기를 연결하지 못하는 등의 몇가지 불편한 점이 있긴 합니다. 아마 이런 불편한 과정 때문에 에어팟은 멀티 포인트 페어링을 지원하지 않는게 아닐까 싶지만.. 아무튼 아쉬운 부분입니다.
출시 초기후 몇몇 매체에서 나왔던 우려처럼 귀에 끼고 있는 동안 분실의 위험은 적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에어팟을 끼고 마라톤까지 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귀에 끼고 있는 동안은 떨어질 위험이 없이 안정적으로 붙어있습니다. 오히려 분실 위험이 있다면 에어팟이 들어있는 케이스채로 분실할 위험이 더 커보입니다.
몇가지 아쉽고 의외의 면이 있기도 했지만 에어팟은 최근에 접해본 신제품 중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제품입니다. 오히려 최근에 질렀던 아이폰7 플러스보다 더 만족도나 활용도가 높은 것 같습니다. 몇몇 매체에서는 애플이 발표한 최근 신제품 중 가장 혁신적이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죠. 물론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가격이나 디자인이 논란이 되긴 하지만, 저는 이 정도의 편의성과 Codeless 이어폰의 평균 가격대를 생각하면 에어팟의 가격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에 대해서 실망을 많이 했던 분들이나, 애플 제품을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구매하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특히나 저처럼 오픈형 블루투스 이어폰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반드시 구매하셔야 하는 제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에어팟 하나로 인해 인생에서 사소하지만 상당히 번거로웠던 많은 부분이 해결된 느낌조차 들었습니다. 만약 에어팟을 사용해보신다면 엉킨 이어폰 줄을 풀기 위해 씨름했던 과거의 모든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다는 자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